암호화폐, 기관 유입·인플레에 '대세 상승론' 여전

노승욱 2021. 11. 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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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물 ETF·리플 소송·CBDC가 변수

최고가를 경신한 암호화폐가 다시 출렁이는 모습이다. ‘1비트코인 10만달러’를 외치며 시장을 달구던 대세론도 당장은 빛이 바랬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최근 암호화폐 시세 급락이 ‘대세 하락의 신호탄’보다는 ‘단기 조정’에 가깝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미국 연기금 등 기관 유입으로 변동성이 줄어든 데다, 비트코인 선물 ETF, 과세 등 암호화폐의 제도권 편입이 속속 진행되며 투자 열기가 지속되리라는 판단에서다.

▶글로벌 기관 52% ‘비트코인 투자’

▷시세 변동 줄고 제도권 편입 가능성↑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소방관 구호·퇴직급여 펀드는 최근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2500만달러(약 295억원)어치를 사들였다. 또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경찰 퇴직기금과 공무원 퇴직기금도 암호화폐 관련 펀드에 5000만달러(약 59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피델리티디지털에셋이 최근 발표한 ‘2021년 기관투자자 디지털자산 보고서’에서는 세계 기관투자자 1100곳을 설문한 결과 52%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투자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관투자자 유입은 암호화폐의 최대 약점으로 꼽혀온 ‘과도한 시세 변동성’을 줄이고 제도권 편입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제 비트코인의 24시간 변동성을 보여주는 ‘비트멕스 일일 비트코인 변동성 지수(BVOL24H)’를 보면, 지난 8~10월 3개월간 지수가 5 이상인 날은 총 13일에 불과했다. 올해 초 비트코인 가격이 과열됐던 2~4월에 지수가 5 이상인 날이 31일이었음을 감안하면 변동성이 3분의 1가량 줄어든 셈이다. BVOL24H는 1분마다 비트코인 시세를 측정해 백분율 변화를 계산한 것으로 높을수록 변동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중국의 암호화폐 채굴 규제도 더 이상 시장에 공포감을 주지 못한다. 최근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비트코인 채굴지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케임브리지대 대안금융센터(CCAF)의 ‘비트코인 채굴 지도’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미국의 비트코인 월평균 해시레이트 점유율은 35.4%로 단일 국가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해시레이트는 가상화폐 업계에서 채굴 능력 측정에 쓰이는 지표로, 가상화폐 채굴 작업이 이뤄지는 속도를 뜻한다. 실제 중국 정부가 암호화폐 채굴을 도태 산업에 포함하기로 결정한 소식이 전해진 지난 10월 22일에도 업비트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전일보다 오히려 0.4% 상승하며 ‘아랑곳 않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인플레이션 열기도 암호화폐 가치를 밀어 올리는 동인이다.

“미국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어빙 피셔의 ‘화폐수량이론’에 따르면 주식, 부동산 등의 자산 가격은 화폐의 수량에 따라 결정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각국이 화폐를 과도하게 발행해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고, 주식과 부동산도 가격이 크게 올랐다. 비트코인은 부동산과 주식의 대체 투자처로 인정받고 있어 가격은 지속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물론 정부 규제는 불안 요소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규제와 과세를 통해 암호화폐를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투자자에게 좋은 소식이라 할 수 있다.”

보라비트거래소를 운영하는 강대구 뱅코 대표의 생각이다.

암호화폐 시장이 일부 ‘대형 코인’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블록체인 전문기업 메이커다오의 남두완 한국지사장은 “시장이 과열되면서 너무 많은 암호화폐가 등장했다. 이에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제외한 알트코인 가치는 희석될 것이다. 내년부터 초기 투자자 물량이 풀리는 암호화폐도 많아 전반적으로 알트코인에는 힘든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변수는

▷현물 ETF, 리플 소송, CBDC…‘주목’

암호화폐를 둘러싼 불안 요인이 하나둘 완화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남은 과제가 많다.

우선 비트코인 선물 ETF를 승인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향후 현물 ETF도 승인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된다. 그간 비트코인 ETF에 완고했던 SEC가 입장을 선회했다는 점에서 현물 ETF 승인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그러나 선물과 달리 현물은 암호화폐 변동성에 바로 연동된다는 점에서 시세 조작 문제 등 투자자 보호 이슈로 승인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찮다.

규제 당국과 암호화폐 진영 간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는 리플과 SEC 간 소송 결과도 주목해야 한다.

SEC는 지난해 12월 리플을 ‘미등록 증권 판매’ 혐의로 기소했다. 리플은 SEC에 이의를 제기, 양쪽은 1년 가까이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다. 법원이 리플 손을 들어주거나 양쪽이 적정선에서 합의할 경우 암호화폐가 제도권에서 합법성과 안정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해석돼 투자자에게는 호재가 될 수 있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브라이언 암스트롱 최고경영자는 지난 10월 26일 트위터를 통해 “SEC와 리플 간의 소송이 생각보다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SEC는 암호화폐 산업을 공격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밝혔다.

암호화폐 대항마로 각국 정부가 추진 중인 CBDC(중앙은행이 발행한 공식 디지털화폐)도 관건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해 65개국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CBDC 도입을 진행 또는 준비 중인 중앙은행은 전체의 약 86%에 달했다. 이 중 ‘개념 조사’ 단계를 넘어 ‘실험(개념 증명)’ 중인 나라는 60%(39곳), ‘개발(파일럿 테스트)’ 중인 나라는 14%(9곳)였다. CBDC는 법정통화로서 실물 화폐와 동일한 교환 비율이 적용되고 공신력이 있다는 점에서 민간 암호화폐 단점을 보완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CBDC는 암호화폐가 떠오른 배경인 탈중앙화와 전면 배치된다는 점에서 단점도 적잖다는 지적이다.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경영대학원 교수는 “CBDC가 상용화돼도 소비자 입장에서 크게 편리해질 것은 없다. 오히려 모든 거래가 다 추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현금을 대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시중의 포스 시스템과 결제 호환이 되는지도 중요하다. 은행 간 지급 결제 시스템에서 B2B 거래에 활용될 수는 있겠지만, 소매 금융 시장에서 대중화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암호화폐의 무분별한 상장, 상폐로 인한 ‘스캠(SCAM·신용 사기)’ 문제, 내년부터 시작되는 암호화폐 과세 이슈 등 남은 과제가 많다. 이에 대해 정부는 규제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조세 회피 가능성 등 부작용 우려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월 6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현행 상장과 상장폐지 방식에 대해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는 정책 변화를 예의 주시하고, 정부는 정책의 사각지대를 보완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남두완 지사장은 “국내 투자자라면 암호화폐 소득 과세에 신경 써야 한다. 단, 바이낸스 등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는 투자자가 많은데 이들에게 어떻게 세금을 매길지가 아직 불확실한 상태다”라고 지적했다. 이병욱 교수는 “정부가 가상자산에 해당하는 암호화폐를 열거식으로 지정하다 보니 NFT(대체불가토큰)는 포함이 안 됐다. NFT도 사실상 암호화폐인데 과세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물론 거래소 간 계좌 추적이 어려운 점 등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상 과세는 불가피하다. 특금법은 이제 시작이니 하나씩 보완해가면 된다”고 말했다.

엘살바도르 등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지정한 나라와의 과세 문제도 새롭게 대두된다.

“엘살바도르는 남미의 작은 나라지만 엄연히 우리나라의 교역국이다. 그런데 비트코인이 엘살바도르의 법정화폐로 지위가 격상되며 비트코인을 단순한 가상자산에서 ‘외환’으로 다뤄야 하는 이슈가 발생했다. 금융당국에는 ‘교역국의 외환인 비트코인에 과세를 할 수 있는가’가 화두로 던져졌다. 비트코인 법정화폐를 추진하는 나라가 더 늘어난다면 과세에 대한 방법도 변해야 할 것이다.”

강대구 대표의 생각이다.

[노승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2호 (2021.11.03~2021.11.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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