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증인의 회고 "앞으로 최동원 같은 투수는 없을 것"

배우근 2021. 11. 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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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렬,최동원,김시진. KBO리그 최고의 투수들이 스포츠서울 1987년 신간호를 위해 함께 모였다. 앳된 표정의 선동열이 셋 중에 막내다. 스포츠서울DB
14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2017 KBO리그 롯데와 KIA의 경기에 앞서 故 최동원 6주기 추모행사의 일환으로 롯데 선수단이 최동원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2017. 9. 14.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배우근기자] 철완(鐵腕)의 투혼과 열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1984최동원’이 오는 11일 개봉한다. ‘11’은 최동원이 경남고 시절부터 달았던 등번호다. 쭉 뻗은 길처럼 돌아가지 않고 정면승부하는 그의 인생철학을 품고 있다.

마운드에서 투구하던 최동원을 오랜기간 지켜본 야구원로 박용진은 “앞으로 이런 투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박 원로는 프로야구 2군 감독(삼성.LG.한화)과 경기감독관, 그리고 야구해설로 한 시대를 풍미한 야구인이다.

최동원이 특유의 커브를 던지고 있다. 스포츠서울DB
박 원로는 최동원 다큐의 하이라이트인 1984년 한국시리즈(KS)를 해설자로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중계했다. 1984년 가을잔치의 목격자이자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박 원로는 “그 해 한국시리즈를 해설했는데 마지막 7차전(잠실·10/9)은 또렷하게 기억한다”라고 했다. 수많은 야구경기를 체험하고 해설했지만 ‘무쇠팔’ 최동원이 KS 4승을 거둔 순간은 그 어느때보다 특별했다는 것.

박 원로는 7차전을 회상하며 “사실 삼성이 그 경기를 잡고 우승할거라고 봤다. 내심 삼성이 승리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삼성은 야구단에 투자했지만 롯데는 투자 안하는 구단이었다”라고 운을 뗐다.

삼성 우승을 예상한 또다른 이유는, 아무리 철완이라도 최동원의 몸상태가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금테안경은 7차전 마운드에서도 여전히 빛났지만 최동원의 구위는 확실히 힘이 빠진 상태였다.

롯데 최동원. 스포츠서울DB
박 원로는 “7차전에 등판한 것 자체가 말이 안됐다. 구위가 떨어졌고 그래서 삼성 타선이 리드했다. 최동원은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라고 회상했다.

최동원의 그해 KS등판 일정은 가혹했다. 분업화가 정착한 현대야구에선 상상하기 힘든 릴레이 투구였다. 최동원은 KS 1차전(9/30)에 등판해 9이닝 무실점 완봉승을 거뒀고, 3차전(10/3)에선 9이닝 2실점 승리를 챙겼다. 그리고 5차전(10/6)엔 8이닝 3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타선불발로 패전투수가 됐다.

그리고 벼랑끝에 몰린 6차전(10/7)에서 5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며 시리즈를 3:3 동률로 맞춘다. 전날 선발투수가 다음날 또 등판해 팀을 위기에서 구해낸 것이었다. 그리고 최동원은 운명의 7차전(10/9) 마운드에도 선발 출전한다.

강병철 당시 롯데 감독은 “동원아, 우짜노 여까지 왔는데…”라고 했고, 최동원은 “알겠심더, 마 함 해보입시더”라는 유명한 대화를 남겼다.

롯데 유두열. 스포츠서울DB
박 원로는 1984년 KS 7차전에 대해 “유두열의 의외의 한 방이 안나왔다면 최동원의 7차전 4실점 완투승은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하며 “최동원이 투혼으로 시리즈를 끝까지 끌고 왔고 마지막엔 타자가 해냈다”라고 정리했다.

7차전에서 유두열은 삼성 김일융을 상대로 8회 역전 스리런을 때려냈고, 최동원(9이닝4실점)은 마지막까지 마운드를 지키며 우승 마침표를 찍었다.

이때 박 원로가 해설하던 잠실 중계석 바로 아래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이 관전하고 있었다. 이날 이 회장은 삼성이 중반까지 4-1로 앞서자 귀빈석에 입장했다. 구단주가 갈 때마다 팀이 지는 징크스 탓에 머뭇거렸지만, 3점차가 벌어지자 안심하고 입장한 것. 그러나 이 회장의 징크스는 이날도 결국 깨지지 않았다.

박 원로는 “이 회장이 와 있었는데 유두열의 역전 결승 3점 홈런이 나오고 롯데가 승리하자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다”라며 당시 분위기를 기억했다.

박용진 해설위원(왼쪽)
박 원로가 1984년 KS와 함께 기억하는 빅매치가 있다. 1987년 최동원과 선동열의 ‘연장혈투’ 맞대결이다. 두 레전드의 대결은 지난 2011년 ‘페펙트게임’이란 타이틀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들은 연장 15회 완투 2-2 무승부 신화를 KBO리그 역사에 남겼다. 이날 최동원은 209개, 선동열은 232개를 던졌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할 투구수다. 박 원로는 이 경기도 마이크를 잡고 중계했다. 박 원로는 두 명의 걸출한 투수를 다음과 같이 하나씩 비교했다. 먼저 최동원이다.

1984 프로야구 최우수 선수(MVP) 롯데 최동원. 스포츠서울DB
“최동원 하면 타자들이 두려워했다. ‘오늘은 칠수 있을까’했고 타석에서 생각부터 지고 들어갔다. 그만큼 최동원의 빠른 공과 드롭성 브레이킹볼은 던지고자 하는 곳에 팍팍 꽂혔다. 타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최동원의 폼은 다이나믹한데 전형적인 오버핸드 피칭이다. 그래서 상대타자들은 하늘에서 공이 뚝 떨어진다고 했다. 요즘은 그런 투수가 없다. 커쇼가 공중에서 커브를 떨어뜨리는데 조금 힘을 빼고 던진다. 최동원은 높은데서 공을 때리는데도 커브에 스피드가 있었다. 독특한 커브였고 지금껏 이런 투수는 못봤다. 빠른공에 낙차큰 커브, 거기에다 몸쪽 바깥쪽 제구도 자유자재였다”

한국최고의 투수의 자리를 놓고 격돌한 야구선수 선동열과 최동원. 스포츠서울DB
선동열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진다.

“최동원이 힘을 많이 들여 공을 던지는 투구폼이라면 선동열은 그렇게 다리를 높이 올리지 않았다. 정통파 오버핸드도 아니었다. 대신 익스텐션이 길었다. 마치 고무줄을 당겨서 몸이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선동열은 무겁고 빠른 공에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던졌다. 그 슬라이더가 타자 몸쪽으로 쑤시고 들어가면 타자들이 감당을 못했다”

최동원과 선동열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그럼에도 최고 투수를 한 명 꼽으라면 누구를 선택할까.

박 원로는 잠시 고민한 뒤 ‘최동원’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두 투수 모두 철인이다. 던지면서 힘이 빠지는 모습이 없었다. 당대 최고 투수들이고 역사적 평가는 아직 진행중”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굳이 둘 중에 뽑는다면 정통파로 타자와 정면승부한 최동원이다. 앞으로도 보기드문 유형의 파이터다. 투구폼도 힘이 많이 소요되는 스타일인데 유지했다. 체력도 엄청난거다. 그 이면엔 끝없는 노력이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선동열과 최동원. 스포츠서울DB
최동원의 7차전 승부, 그리고 최동원과 선동열의 15회 연장승부. 이 경기는 박 원로의 해설자 인생에서도 눈부신 장면이다. 박 원로는 “내가 한 해설중에 가장 잘했다. 경기자체가 박진감이 넘쳤다. 최고 투수들이 마운드에서 자존심 싸움을 펼치니 해설도 잘 할 수밖에 없었다. 해설 하면서도 앞으로 이런 경기는 보기 어려울거 같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싶었는데 지금까지도 안나오고 있다”라며 빙그레 웃었다.
당대 최고의 투수인 선동렬, 최동원, 김시진. 이들이 스포츠서울 1987년 신간호를 위해 함께 모여 재미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선동렬, 최동원, 김시진. 스포츠서울DB
선동렬, 최동원, 김시진. 스포츠서울DB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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