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 조폭에 얻어맞고 쫓겨나"..쓰레기장에 사람이 산다

양윤우 기자, 김성진 기자 2021. 10. 1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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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재활용쓰레기장에 형성된 판자촌. 판자촌에 30여년 살았다는 한 거주민의 집 /사진제공= 양윤우 기자


"작년에 그 쓰레기장을 자원순환센터로 바꾸려 했어요. 그분들만 없었다면 그 땅은 어떻게든 활용했죠."(종로구청 관계자)

쓰레기더미 속에 사람이 산다. 한둘이 아니다. 매일 쏟아지는 쓰레기 속 7가구가 모여 판자촌을 이뤘다. 마을을 이룬 지 30여년이 다 됐다. 서울 종로구의 창신역에서 200m 떨어진 '통일동산' 아래 재활용 쓰레기장의 풍경이다.

판자촌 거주민들은 30여년 전 인근 한성여자중학교 옆에 살았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자 별다른 살 곳 없이 이곳으로 밀려났다. 쫓겨난 이곳에서도 거주민들은 이주 압박을 받는다. 서울시는 지난해 재활용 쓰레기 선별·처리까지 하는 자원순환센터를 지으려 했다. 계획은 무산됐다. 하지만 거주민들은 불안하다. 이곳에 30여년 산 김모씨(74)는 "이 동네가 또 개발되면 그때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머니투데이 취재진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판자촌을 직접 찾았다. 창신동에 위치한 1500여 세대의 아파트 단지를 등지고 10분쯤 언덕을 올라가니 아파트 틈바구니에 숨겨진 쓰레기장이 나타났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은은하던 곰팡내가 이내 코를 찔렀다. 쓰레기가 매일 쏟아지고 고장난 TV 등이 쌓여 산을 이룬 곳을 지나면 일곱 가구가 사는 판자촌에 도착한다.

마을에 들어서자 집 천장에 조잡하게 덮은 푸른 방수포부터 눈에 들어왔다. 창문에는 한기를 막으려는 듯 지푸라기를 꼬아 만든 거적이 덧대져 있었다. 이곳에 13년 살았다는 최모씨(73)는 "이곳에 살던 모친이 10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홀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쓰레기 더미에 숨어든 판자촌 거주민들..."30년 전 쫓겨나 이곳에 정착"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재활용 쓰레기장에 일곱 가구가 쓰레기촌을 이뤄 살고 있다. 노란원 두개 위치에 쓰레기촌이 있다./사진=네이버 지도 캡쳐.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재활용 쓰레기장은 일곱 가구가 일명 '쓰레기촌'을 이뤄서 산다. 상하수도 시설도 없어서 일곱 가구는 재활용 쓰레기장 근처의 화장실을 공유한다. 일곱 가구 중 셋은 기초생활수급을 받는다. 식사를 해결하기도 막막하다. 각자 집 밖에 텃밭을 꾸려 배추 등을 심었다. 한 텃밭 위에 설치된 고장난 CCTV(폐쇄회로TV)가 눈에 들어왔다. 텃밭 주인 최씨는 "배추 도둑이 많아 쓰레기장에서 주운 고장 난 CCTV를 걸어놨다"고 말했다.

이곳에 마을을 이룬 지 30여 년이 됐다. 원래 이들은 창신3동 S아파트 자리에 판자촌을 이뤄 살고 있었다. 1987년 2월쯤 S아파트를 지을 때 이들은 200만원 보상금을 받고 쫓겨났다. 달리 살 곳은 없었다. 이곳에 30년 살았다는 김모씨(74)는 "당시 종로구청이 '통일동산(쓰레기촌 뒷산)에 잠깐 집을 짓고 살라고 했다'"며 "떠나기 싫었지만 용역 조직 폭력배들이 몰려와 얻어맞고 쫓겨났다"고 회상했다. 쫓겨난 이들 중에는 국가유공자도 있다.

서울 종로구 창신역에서 200m 떨어진 재활용 쓰레기장을 지나면 일곱 가구가 30여년 살아온 판자촌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은 판자촌에 진입하기 전 재활용 쓰레기장의 모습./사진=양윤우 기자


하지만 쫓겨나온 통일동산도 보금자리는 아니었다. 2000년 통일동산 부지의 절반이 재활용 쓰레기를 쌓는 적환장으로 바뀌었다. 주거 환경은 더 열악해졌다. 적환장이 24시간 가동되다보니 주민들은 매 순간 트럭이 쓰레기를 쏟아붓는 소음 속에 산다. 지난해 여름에는 비가 쏟아져 최씨가 사는 집의 천장이 무너졌다. 급한대로 쓰레기장에서 판자를 주어와 덧댔다. 난방 장치도 없다보니 한겨울에는 연탄을 때야 한다.

쓰레기촌이 가파른 언덕 위에 있어 시내를 오가기도 어렵다. 2008년 2월쯤 쓰레기촌에 불이 났는데 대형 119 소방차가 언덕을 오르지 못해 화재 진압이 어려웠다. 거동이 불편한 거주민들은 병원에 가기도 번거롭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은 창신역까지 200m 남짓한 거리를 한 발짝씩 1시간에 걸쳐 내려간다. 최씨도 지난 13일 수술한 무릎을 붙잡고 병원에 가던 중 넘어져 얼굴에 피멍이 들었다.
법적으로 국유지 '무단점거'...국토사용 '변상금' 쌓여간다
사진= 30년 차 거주자인 고령의 여성 A씨가 경사진 언덕을 내려간다 /사진= 양윤우 기자

쓰레기촌이 위치한 재활용 쓰레기장은 법적으로 국유지에 해당한다. 이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국유재산법에 따라 거주민들에 국토사용 변상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일부 거주민은 변상금을 내지 않고 있다. 최씨(73)는 지난해 810만원 납부독촉을 받았고 다른 거주민 김씨(74)도 2016년부터 5년 동안 2000여만원을 내지 않았다.

구청이 쓰레기촌을 철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구청 관계자는 "거주민들이 장기 거주했다보니 그들의 집이 현행법상 사유재산으로 간주된다"며 "집을 철거하려면 법에 따른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거주민을 이주시키려는 노력도 성과가 없었다. 동사무소 관계자는 "과거 한 거주민이 임대주택의 입주자로 선정된 적이 있다"며 "그런데 스스로 입주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거주민은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나"라며 "이곳은 내 고향"이라 말했다.

결국 해당 토지의 소유주인 정부가 땅을 활용할 수 없는 셈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이곳에 재활용쓰레기를 선별·처리하는 자원순환센터로 만들려 했다"며 "시정에 공백이 생기며 계획은 무산됐지만 예전부터 이 토지는 활용 계획이 꾸준히 세워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쓰레기촌 거주민들을 장기적 관점에서 이주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유지에 사람이 살게 허용한다면 국유지를 무단 점유하는 사례가 전국적으로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주거 복지 예산을 늘려 임대 아파트를 더 짓고 쓰레기촌 거주민이 잠시나마 살 보호소를 마련하는 게 현실적인 해법"이라 설명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쓰레기촌 거주민 최모씨(73)가 그늘에 앉아 쉬고 있다./사진=양윤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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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우 기자 moneysheep@mt.co.kr,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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