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수당 줬대" 유튜브 가짜뉴스 믿는 엄빠..자식들의 반격

백희연 입력 2021. 10. 17. 09:00 수정 2021. 10. 1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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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제75화>
부모님 영상 '알고리즘' 관리하는 그들
스마트폰의 '유튜브' 앱 화면. 유튜브 등으로 영상을 보는 중장년층이 늘면서 자녀 세대와 '가짜뉴스'를 두고 갈등을 겪는 일이 늘고 있다. AFP=연합뉴스

"코로나 백신 맞으면 전자파가 나와서 치매 걸린대. 너도 맞지 마라."
"누가 그래? 그거 가짜뉴스야! 제발 그만 봐!"
"가짜뉴스 아니야~의사인 유튜버가 그러던데? 그리고 엄마 친구들 카톡방에서도 다 이 얘기해."

"다른 사람들은 다 명절수당 받는다는데, 우리는 못 받나 보다. 말세야, 말세."
"아빠, 명절수당이라는 거 처음 들어봐. 그런 거 가짜뉴스에요."
"무슨 소리! 다 쉬쉬하면서 받는다더라. 너는 똑똑한 애가 그런 것도 못 챙기고. 쯧쯧."

A씨(28)가 최근 어머니, 아버지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의 일부입니다. 그는 하루가 멀다고 유튜브 발(發) '가짜뉴스'를 두고 입씨름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기만 고민하는 게 아니었단 걸 알게 되죠.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을 통해 가짜뉴스가 많이 퍼지고 있다. 중앙포토


부모와 잦은 갈등, 원인은 자주 보는 영상?


주변 친구들 모두 비슷한 속앓이를 했다고 하는데요. 정치·경제 영상을 둘러싼 갈등은 기본인 데다, 건강·생활 관련 콘텐트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야기를 나누면 '가짜뉴스였냐'며 민망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럴 리 없다. 네가 잘 몰라서 하는 얘기"라며 되레 큰소리치는 부모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머니, 아버지와 소통이 단절된 것 같아 괴로워하던 A씨에게 한 친구가 비법을 전수해줍니다. 바로 가짜뉴스 진원지인 유튜브 채널을 조용히 없애버리는 거죠. 그날 저녁, A씨는 "휴대폰이 고장 나서 잠깐 쓰겠다"며 어머니 휴대폰을 슬쩍 방으로 가져와 작업에 착수합니다.

1단계. 의심스러운 영상 채널에 들어가서 '채널 추천 안 함' 버튼을 누른다.
2단계. 유튜브 설정에 들어가 다음 영상 자동재생 기능을 끈다.
3단계. 문제없어 보이는 영상 채널(여행·육아·음식·동물 등)을 최대한 많이 구독하고, 영상을 계속 재생한다.

일주일 뒤, A씨는 이 방법을 알려준 친구에게 "엄마가 검증 안 된 '카더라' 이야기를 덜 한다"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죠.
※A씨는 밀실팀이 취재한 여러 명의 사례를 하나로 묶어 재구성했습니다.


자녀가 최후 방법으로 선택하는 '중년가드'


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유되고 있는 '중년가드' 방법. 인터넷 캡쳐.
A씨의 고통은 극히 일부 젊은 층의 일이 아닙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주 올라오는 고민거리이기도 합니다. 극단적 정치 성향을 보이거나 '카더라 통신'을 맹신하는 나이 지긋한 어머니, 아버지 뒤엔 자주 보는 영상 플랫폼이 있다고 믿는 건데요.

이는 유튜브·카카오톡 등 소셜 미디어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중장년층이 늘어나는 상황과 연결됩니다. 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이 지난 1월 한 달간 유튜브 이용자 4041만명을 분석한 결과, 50대 이상이 약 4명 중 1명꼴이었습니다.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많았죠. 또한 40~60대 절반가량은 유튜브로 정보를 검색한다는 디지털 미디어렙 나스미디어의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일을 겪은 전모(19)씨는 "어느 날인가부터 아빠가 내 기준에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하고 '이것 좀 보라'며 유튜브 링크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상을 보니 각종 음모론이 가득하더라"면서 "이런 걸 아빠가 믿고 나한테 얘기한다는 게 너무 화가 났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런 부모와 갈등을 겪는 이를 위한 자녀 세대만의 해결책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10~30대들이 직접 부모의 유튜브 영상 알고리즘을 흐트러뜨리고 새로 설정하는 '실버가드'나 '중년가드'에 나서는 건데요. 어린아이들이 연령대에 맞지 않는 유해 영상을 못 보게 제한하는 이른바 '키즈가드' 기능에 빗댄 표현입니다.

온라인 세상에선 '중년가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정치 대신 아기나 동물이 나오는 영상으로 구독 채널을 바꾸고, 영상을 무한 반복한다는 경험담이 종종 올라옵니다.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이른바 '사이버렉카'(이슈가 생기면 빠르게 짜깁기한 영상을 만들어 자극적인 내용으로 조회 수를 올리는 사람들을 낮춰 지칭하는 말)에 대응하는 나름의 대책이죠.

여기엔 부모 세대의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를 읽고 쓰는 능력)를 바라보는 자녀 세대의 우려와 반감이 나타난 측면도 있습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는 디지털 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나 상징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공감과 소통이 우선돼야 가족 간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바라보는 시각차로 부모, 자녀 세대가 갈등 겪는 일이 적지 않다. 중앙포토


결국 세대 간 소통 문제, 수긍하는 부모도 많아


"에이 설마~이렇게까지 한다고?" 물론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강경한 태도를 가진 부모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자녀들도 할 말은 있습니다.

이모(31)씨는 "대화 시도를 여러 번 안 해봤겠냐"고 반문합니다. 꼭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아 몰래 유튜브 채널을 바꾸는 '최후의 방법'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거죠. 그는 "내가 설정을 바꿔놨다는 걸 부모님이 알면 화가 나실 수도 있지만, 서로 계속 싸워서 멀어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 세대는 민주적 소통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장유유서와 연공서열을 가치로 뒀던 기성세대와 민주적 소통이 당연한 젊은 세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모든 어머니, 아버지가 다 그런 건 아니죠. 자녀의 조언을 기분 좋게 수긍하는 부모도 많습니다. 두 명의 자녀를 둔 김양숙(58)씨는 "아이들이 어렸을 땐 내가 통제하고 가르쳐주는 역할이었는데, 이젠 반대로 아이들이 내게 가짜뉴스를 구분하라고 얘기해준다"면서 "나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해 대체로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해요.

이런 방식이 누군가에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쪽에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전씨의 말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영상) 볼 권리를 침해한다는 댓글이 달리긴 하더라고요. 하지만 우리 세대보다 온라인에 덜 익숙한 부모님을 위해 가짜뉴스와 거짓 정보를 막아주는 것도 자녀로서 해야 하는 일 아닐까요?"
스스로 유튜브 '중년가드'에 나서는 한편 주변 사람들과 방법까지 공유하는 자녀들. 부모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잘못된' 통제일까요? 아니면 부모를 걱정하는 '순수한' 마음일까요? 여러분은 어느 쪽이라고 보시나요.

「 밀실은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밀도있는 밀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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