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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언니’에게 농촌은 스타트업 무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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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호 09면

[SPECIAL REPORT]
청년귀농의 진화

이선화 기획팀장이 영광 죽신마을에서 수확한 보리를 들고 있다. [사진 대산농촌재단]

이선화 기획팀장이 영광 죽신마을에서 수확한 보리를 들고 있다. [사진 대산농촌재단]

“미대를 졸업하고, 10년간 도시에서 가구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디자이너 특성상 업무도 많고, 밤샘 근무도 잦았죠. 그 덕분에 관리자급까지 초고속 승진했지만, 문득 ‘통장 잔고는 행복한데, 내 마음은 과연 행복한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내 열정을 불태우고 싶었어요. 마침 부모님이 계신 영광에 일손이 필요했고, 1년간의 귀촌 준비를 거쳐 농사와 영농법인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귀농 5년 차인 이선화(38) 지내들영농조합법인 기획팀장은 전남 영광군 군남면 죽신마을에 활기를 되찾아준 ‘일등공신’이다. 0원이었던 마을의 온라인 매출을 5년 만에 6억원대로 성장시켰고, 지난해에는 행정안전부 주관 최우수 마을기업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낮에는 영광 특산품인 보리를 재배하고, 밤에는 제품 디자인과 판매에 열중하며 농촌을 스타트업 무대 삼아 종횡무진한 결과다.

5년이 지난 지금 ‘귀농 1세대’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이씨지만, 사실 귀농 초기 적응은 절대 쉽지 않았다. 영광으로 돌아온 이씨를 반긴 건 ‘회사 잘려서 내려왔냐’, ‘결혼에 실패했냐’, ‘대학 보냈더니 부모님 등골 빼 먹으러 왔냐’는 식의 소문들이었다. 이씨는 “가족 없이도 귀농한 타지의 청년들이 꿋꿋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빨리 성과를 내 편견을 깨겠다는 다짐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이씨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자 가족들이 연이어 귀촌을 선택했고, 마을 곳곳에 청년 귀농인이 늘어났다. “저 집 자슥은 왜 내려왔디야?”라던 어르신들도 “잘 왔다, 잘 왔다”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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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의 심리적 장벽이 무너지자 어르신들의 주머니도 덩달아 채워졌다. 이씨는 1인 가구를 타겟팅한 소포장, 도시인들을 위한 보리차와 미숫가루, 명절에 유용한 선물세트 등 기존 농민들이 생각해내지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로 온라인 몰을 확장했다. 이씨는 “처음에는 어르신들이 ‘누가 그걸 사 먹냐?’ 라고들 하셨지만 수익이 늘어나고, 성과가 보이자 이제는 ‘선화가 한다면 뭐든지 적극적으로 지원해줄게’라고들 하세요. 핸드폰에 매달리는 저를 이해 못 하던 분들도 이제는 다 이해하시고요. 청년들의 정보력과 아이디어 덕분에 마을 전체가 젊어진 셈”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그의 발 빠른 대처는 빛을 발했다. 대형 식자재 납품, 가공사들과의 계약이 해지돼 마을 어르신들의 판로가 막혔지만, 온라인으로 빠르게 수익을 다각화한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운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다”며 “온라인 몰이 아니었다면 매출이 반 토막 이상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청년들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가공품 개발이나 기획 상품 판매, 라이브 커머스 덕분에 매출을 방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보리 언니’라는 별명으로 청년 귀농인 간의 네트워킹에도 앞장선다. 농지와 관련된 법적 규제가 생기면 전국의 청년 농부들과 머리를 맞대 고민하고, 각지의 상황을 공유하며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식이다. 이씨는 딸기농장을 예로 들며 “딸기는 유통기한이 짧아 온라인 판매가 어렵다. 대신 가족 단위의 체험객을 모집해 딸기 따기 체험, 딸기 디저트 만들기 등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체험시설로 운영해 제2의 소득을 창출하는 것이 요즘 인기”라고 소개했다. 기존의 농촌에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지만, 청년 농부들의 기발한 마케팅 덕분에 부가가치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씨는 지금껏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로서의 새 출발을 준비 중이다. 귀농 후 농촌에서 받은 사랑을 또 다른 방법으로 보답하기 위해서다. “농촌에서는 40세까지 청년이라고 부르거든요. 남은 2년 동안 청년으로서 농산물 유통, 마을 일자리 창출 등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설령 실패하더라도, 돌아가면 다시 품어주실 어르신들이 있으니 든든합니다.”

이씨는 귀농·귀촌을 꿈꾸는 청년들에게도 조언을 남겼다. “농업이 우리의 미래고, 지속 가능한 산업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귀농을 한다면, 과감하게 반대하고 싶어요. 저 또한 돈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귀농했거든요.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최소 5년 동안 수익이 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면 귀농을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재배 작물 엄선, 농지 구입 땐 주민들 의견 구해야

〈청년귀농 준비 7가지 꿀팁〉
‘억대 연봉 농부’에 혹해 귀농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늘어났지만 결국 적응에 실패해 역귀농을 선택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귀농·귀촌 지원센터와 함께 성공적인 청년 귀농을 위한 7가지 팁을 소개한다.

귀농 정보 수집하기
귀농을 꿈꾼다면 먼저 ‘귀농귀촌종합센터’ 방문을 추천한다. 이곳에서는 1:1 귀농 상담, 컨설팅부터 귀농 선배와의 만남 등 귀농에 필요한 정보를 무료로 제공한다. 특히, 귀농 청년들을 위한 영농정착지원금 신청은 필수 절차이니 잊지 말자.

가족들과 충분한 의논하기
무작정 농촌에 내려가 농사를 배우겠다는 계획은 금물. 부모님의 지원이 필요하거나, 향후 결혼·출산 등 미래 계획을 세우기 전인 청년이라면 반드시 가족과 상의하는 것이 좋다.

재배할 작물 선택하기
농업인의 수익은 재배 작물이 결정한다. 재배 시기, 수확 주기, 예상 수익을 고려해 자신에게 적합한 작물을 선택해야 한다. 농작물 선택이 어렵다면 각 지역의 특산품을 공략하거나 자신이 가장 자주 먹는 농작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영농 기술 익히기
농사도 기술이기에 사전 지식이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청년농부사관학교를 비롯해 각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귀농귀촌 교육을 이수하면 영농에 필요한 기술을 무료로 익힐 수 있다.

정착지 물색하기
회사는 이직할 수 있지만, 농촌은 한번 정착하면 4~50년을 거주해야 한다. 그렇기에 정착지를 정하기 전 여러 농촌을 둘러본 후 자신에게 맞는 정착지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귀농인의 집’을 저렴한 비용에 제공하고 있으니 다양한 농촌을 경험한 후 정착지를 결정하자.

농지 선택하기
후계농이 아니라면 가장 공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같은 지역이라도 유독 자연재해가 잦거나, 농사가 어려운 땅이 있기 마련. 농지 가격이 저렴하거나 접근성이 좋다는 이유로 무작정 구입하기보다는 주변 농민들의 의견을 구해 농지를 선택하자.

영농계획 수립하기
도시의 직장인은 월급을 받지만, 농업인은 재배한 농작물이 판매되어야만 수익이 생긴다. 작물 재배 전부터 판매처를 확보하는 등 탄탄한 사업계획이 필요한 이유다. 청년 귀농·귀촌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청년농업인연합회 등에 조언을 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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