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알바천국 수준 현장실습 업체"..교육부 규제 완화 1년만에 사업장 규모 '뚝'

이유진 2021. 10. 1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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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서울지부 주최로 여수에서 현장실습 중 사망한 홍정운군을 추모하는 촛물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6일 전남 여수의 한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숨진 고 홍정운(18)군이 다닌 특성화고는 수산·해양 기술전문인 양성을 목표로 한다. 교육부 지침에 의하면 이 학교는 현장실습 업체 선정 때 학교의 교육 과정상 인력양성 목표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이 개발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일용직이나 단순 아르바이트 등에서의 실습은 엄격히 제한한다. 하지만 홍군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김아무개(18)군은 13일 <한겨레>에 교육부의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군은 “다른 반 친구들을 보면 (구인·구직 사이트인) ‘알바천국’에 가도 바로 구할 수 있을 만한 직장을 알아서 찾아서 학교에 얘기하면 학교는 취업률을 올리고 싶으니 아무 데나 막 보내고 있다”며 “취업 상담 교사가 카페에서 실습할 사람 있냐고 해서 손을 들고 이틀 뒤에 바로 현장실습을 나갔다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홍군이 산업안전보건법이 현장실습생에게 허용하지 않는 잠수 작업에 투입돼 숨진 사고 이후 현장실습 제도가 교육 취지와 맞지 않게 운영되면서 학생들이 ‘저임금 단순 노동’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교육부가 2019년 1월부터 기업 선정 기준을 완화한 ‘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방안’을 발표한 지 1년 만에 학생들이 투입되는 현장실습 업체의 질이 크게 하락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있다.

13일 <한겨레>가 민주노총 전북노동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말 내놓은 ‘직업계고 현장실습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확인해 보니, 2018년 281곳이던 전북도의 현장실습 업체는 교육부의 규제 완화 이후인 2019년 314곳으로 늘고 참여학생 수도 500여명에서 620명으로 늘었다. 반면, 실습 업체들의 규모를 확인해 볼 수 있는 평균 재직자 수는 2018년 153.5명에서 2019년 73.6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더욱이 교육청 승인을 받은 ‘선도기업’에 견줘 학교 심의만 거치면 되는 ‘참여기업’의 평균 사업체 규모는 5분의 1 정도로 더욱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습 업체들의 평균임금 수준 역시 하락했다. 2018년엔 각각 연 3815만원, 연 2620만원이던 재직자와 신규입사자의 평균임금은 2019년 연 3564만원, 연 2477만원으로 낮아졌다.

도종환 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업체의 질이 낮아지면서 현장실습 도중 학교로 돌아오는 학생의 비율도 2019년 7.7%에서 지난해 9%로 높아졌다. 전북도의 현장실습 현황 연구를 진행한 강문식 연구위원은 “아예 기업 정보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영세한 일부 업체들은 분석에서 빠졌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욱 열악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이처럼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지만, 학교는 여전히 학생 보호보다 취업률 높이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날 <한겨레>에 제공한 자료를 보면, 1년 이상 학교와 기업을 오가며 현장실습을 하는 인천의 한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는 최근 학생들에게 교육 자료를 뿌리며 “실습 기간 중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해당 기업에서 채용하지 않을 수 있음을 주지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도제학교 학생들은 현장실습 기간에 ‘기간제 근로자’ 신분으로 일하다가 학교 평가 및 기업의 외부평가를 거쳐 졸업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 외부평가 통과율(취업률)이 40% 정도여서 현장실습생들은 더욱 ‘을’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데, 학교도 학생들에게 노동자로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설명해주지 않은 채 무조건 노력만을 강요한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설명을 보면, 올해 기준 2100여곳의 도제기업에서 6500여명의 학생들이 일하고 있는데, 교육부는 2018년부터 도제기업의 경우 별도 심사 없이 자동으로 현장실습 ‘선도기업’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이 도제학교의 한 3학년 학생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말은 실습이고 교육이지만, 배운다기보다는 잡일을 시키는 등 일반 아르바이트하고 똑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도 “이런 곳이라도 없어져 버리면 취업에 발 디딜 곳 자체가 없어진다는 게 너무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연구위원은 “현장실습 제도를 이용한 고졸 취업률 제고 정책이 취업의 질을 악화시키는 ‘제로섬 게임’이 되고 있다”며 “현장실습 제도 자체를 취업 정책과 연계시키지 말아야 하는데 당장 근본적인 개선이 어렵다면, 실습업체에 대한 관리를 일선학교에만 맡길 게 아니라 교육부와 노동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유진 김지은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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