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발목 잡힌 미국 백신 접종률 [김우재의 플라이룸 (14)]

2021. 10. 1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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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물량의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한 나라는 미국이다. 델타 변이로 인한 돌파감염이 확산되자 미국 정부는 부스터샷(추가접종)까지 고려하며 더 많은 백신 물량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줄지 않는 이유는 변이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다. 미국의 백신 접종률은 70%대에서 멈췄다. 엄청난 물량으로 속도전을 벌였지만,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한국에 역전됐을 정도다. 원인은 분명하다. 미국인 4명 중 1명이 완강하게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엉클 샘’ 복장을 한 남성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 반대 시위에 참가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욕 |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실시된 퓨리서치의 조사에 의하면, 정치성향이 백신 거부의 한 축이다. 공화당 지지자의 접종률은 60%, 민주당은 86%로 확연히 갈린다. 교육 수준은 또 다른 축이다.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에서도 대학원 이상은 97%, 고졸 이하는 77%의 접종률을 보인다. 아시아계의 접종률이 조금 높다는 점을 제외하면 인종 간의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 의료보험 가입 여부도 백신 접종률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공화당 지지자이면서 의료보험이 없는 경우 겨우 43%의 접종률을 보인다.

전광훈, 인터콥, 큐어넌

가장 흥미로운 차이는 종교를 축으로 나타난다. 개신교, 가톨릭 그리고 무종교인의 세 그룹을 비교했을 때 개신교인의 접종률은 66%, 가톨릭 82%, 무종교인 75%로 개신교인의 접종률이 확연히 낮다. 개신교 교파 중 복음주의에 속한 백인의 경우 57%로 가장 낮고, 무종교인 중 자신을 무신론자로 밝힌 이들의 경우 90%의 높은 접종률을 나타냈다. 무종교인으로 묶인 그룹 중 종교를 밝히지 않은 이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무종교인은 백신에 대한 견해에서 백인복음주의자의 양극단에 위치한다. 각 카운티의 백인복음주의자 비율과 백신 접종률은 뚜렷한 반비례 관계를 보인다. 즉 백신 부유국 미국의 접종률 정체는 백인복음주의자들 때문이다.

전광훈은 1983년 사랑제일교회를 세우고 목사로 활동했으나 2019년 7월, 소속 교단이었던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대신) 총회로부터 면직 및 제명을 당했다. 이에 그는 스스로 새 교단을 차려 목사를 자임하고 있으나, 사실상 국민혁명당이라는 극우정당의 대표로 활동하는 정치인에 가깝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까지 당했던 그는 한국 개신교계의 골칫덩어리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까지 역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최바울 선교사는 인터콥 선교회의 대표다. 인터콥은 1993년 설립된 소위 미전도종족 평신도전문 전방개척 선교단체다. 미전도종족이란 아직 개신교가 전파되지 않은 지역에 사는 이들을 뜻한다. 이들은 중국에서 중동을 거쳐 예루살렘까지 개신교 복음을 전파하면 예수가 다시 재림한다는 음모론을 신봉한다. 이들의 소위 땅밟기 운동은 유명한데, 개신교 국가가 아닌 곳의 종교사원에서 땅밟기를 하며 찬송가를 불러 몇차례 외교문제를 촉발하기도 했다. 최바울은 팬데믹 이후 설교에서 백신은 빌 게이츠에 의해 인류의 DNA를 조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백신을 맞으면 노예가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최바울의 설교에 등장하는 음모론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시작된 음모론 집단 큐어넌의 주장을 닮았다. 큐어넌은 스스로 미국 고위 정보국 직원이라 주장하는 인물이 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퍼뜨린 글들에서 시작된 유사종교로, 현재 거대한 세계관으로 진화해 미국은 물론 유럽과 남미의 백신 반대론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있다. 그들은 파충류 외계인이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딥스테이트라는 비밀결사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고 믿는 광신자들이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 큐어넌의 음모론은 한국의 극우기독교 세력 사이에서도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다.

물론 한국 개신교의 복음주의 세력은 미국 백인복음주의자 세력처럼 거대하지 않다. 그래서 누군가는 전광훈과 최바울을 미국 복음주의세력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할지 모른다. 한국은 종교적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종교갈등이 거의 없는 나라에 속한다. 아마도 오랜 시간 외부 종교를 받아들이고 이들 모두를 중층적으로 흡수해온 독특한 문화 덕분일 것이다. 한줌조차 되지 않는 한국 개신교 복음주의 세력이 한국사회의 상식을 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선 이야기가 좀 다르다.

팬데믹이라는 갈림길에 선 종교

전광훈과 인터콥은 팬데믹 상황에서 긴밀히 교류하고 있다. 인터콥을 ‘심각한 이단성이 있는 불건전한 단체’로 규정한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측은 최근 71회 총회에서 전광훈을 ‘이단성 있는 이단 옹호자’로 규정하고, 인터콥과의 교류 금지를 명령했다. 하지만 현직 서울시장 오세훈처럼 유력한 정치인들조차 전광훈의 집회에 참여한 상황에서 충분한 광신도를 확보한 전광훈이 백신 반대집회를 멈출 것 같지는 않다.

델타 변이가 위협적인 이유는 그 전파력과 돌파감염 때문이다. 즉 백신 접종률이 100%가 되기 전까지 방역은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정부가 K방역을 자랑하던 그 시기에 한국사회를 혼란으로 이끈 단체는 신천지라는 사이비종교였다. 신천지발 대유행을 겨우 지나던 찰나 전광훈의 사랑제일교회발 대유행이 일어났고, 그 몇달 뒤엔 인터콥의 선교행사에서 수백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즉 엄청난 전파력을 지닌 변이바이러스가 창궐하는 팬데믹 상황에서는 한줌도 안 되는 종교의 광신자들이 사회 전체를 뒤흔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국사회의 평범한 시민이 보여주는 상식은 놀라울 정도다. 그나마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이 이만큼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통해 생존능력을 터득한 시민의 상식 덕택일 것이다. 그리고 정치와 종교는 이 평범한 시민의 삶을 지켜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종교와 과학’이라는 글에서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는 과학과 같은 정신으로 변화에 직면할 때까지 예전의 힘을 되찾지 못할 것입니다.”

화이트헤드가 말한 과학의 정신이란 변화에 맞춰 진화하는 과학의 속성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종교가 배우지 못한다면, 팬데믹이 끝난 이후 사람들은 종교를 버릴 것이다. 사회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롭기만 한 종교를 유지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종교는 갈림길에 서 있다.

퓨리서치의 설문조사에서 가장 놀라운 결과는 미국인 중 26%만이 저개발국 국민 대부분이 백신을 접종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신교에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예수의 개혁적 면모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하지만 개신교 국가 미국은 사마리아인을 버렸다. 처참한 일이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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