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성에 대한 연민에서만 일관적인, 마구잡이 서바이벌 ‘오징어게임’

칼럼니스트 위근우

자가당착에 빠진 악당의 사연을 또 들어줄 필요가 있을까

456억원의 상금을 놓고 벌이는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그린 <오징어게임>이 한국 드라마 최초 미국 넷플릭스에서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밖에 홍콩, 말레이시아, 카타르,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태국 등에서도 1위에 랭크됐다. 넷플릭스 제공

456억원의 상금을 놓고 벌이는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그린 <오징어게임>이 한국 드라마 최초 미국 넷플릭스에서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밖에 홍콩, 말레이시아, 카타르,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태국 등에서도 1위에 랭크됐다. 넷플릭스 제공

※본 기사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대한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로 글을 시작해야겠다. 지난 9월17일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 마지막 화에서, 게임 참가자인 줄 알았지만 실은 흑막이었던 오일남(오영수)은 게임 우승자 성기훈(이정재)에게 자신이 그런 일을 벌인 이유가 삶의 권태 때문이었다며 “뭘 하면 좀 재밌을까” 고민했다고 말한다. 이에 성기훈은 “재미로 그런 짓을 시켰다고?”라며 분노한다. 하지만 일남이 주최하고 고안했던 게임을 모두 지켜본 시청자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질문이 튀어나온다. 그 돈과 권력으로 재밌자고 고안한 게 고작 그거라고? 가령 첫 게임이었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떠올려보자. 이 게임의 진정한 묘미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문구 속도를 조절하며(보통 느릿느릿 하다가 마지막 순간 1.5배속) 상대를 속이는 술래의 능력과 술래에게 잡혀 죽 늘어선 참가자들을 살리는 과정에서의 협업, 그 와중에 모두 살리느냐 일부만 살리느냐 고민해야 하는 딜레마에 있다. 하지만 <오징어게임> 속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그저 움직이는 걸 술래에게 들킨 참가자가 총에 맞고 죽어나가는 단순한 서바이벌일 뿐이다.

456억원의 상금을 놓고 벌이는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그린 <오징어게임>이 한국 드라마 최초 미국 넷플릭스에서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밖에 홍콩, 말레이시아, 카타르,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태국 등에서도 1위에 랭크됐다. 넷플릭스 제공

456억원의 상금을 놓고 벌이는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그린 <오징어게임>이 한국 드라마 최초 미국 넷플릭스에서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밖에 홍콩, 말레이시아, 카타르,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태국 등에서도 1위에 랭크됐다. 넷플릭스 제공

원래 게임이 지니고 있던 재미의 디테일은 모두 제거한 채 그저 잔인함을 통해 자극만을 강조하고선 재미 운운하는 일남은 그래서 이 게임의 실제 설계자인 황동혁 감독의 페르소나처럼 보인다. 재미도 없는 게임을 재밌다고 우기면서, 죽어가는 와중에 인간에 대한 믿음과 불신에 대한 개똥철학, 아내와 아들과 살던 옛날 골목 풍경에 대한 회한, 게임이 억지로 진행된 건 아니라는 당위 등을 구구절절 늘어놓는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일남이 하는 모든 말은 재미에서 실패한 게임 설계자가 가져다 붙인 사후적 변명에 가깝다. 그리고 그 변명은 모두 <오징어게임>이라는 작품 자체로 소급한다. 아주 간단한 옛날 아이들 놀이를 목숨을 걸고 한다는, 대단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아이디어를 9부작 시리즈로 확장하느라 이런저런 이유를 덕지덕지 가져다 붙인 결과물, 그게 <오징어게임>이다.

사실 <오징어게임>은 한 호흡의 칼럼보다는 차라리 ‘<오징어게임>이 별로인 99가지 이유’ 같은 리스티클 형식으로 풀어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작품이다. 단점들조차 유기적이지 않고 산발적이기 때문이다. ‘평등한 세상’이란 제목의 에피소드에서 게임의 지휘자인 검은 가면의 프론트맨은 참가자 병기(유성주)와 내통하던 진행요원을 죽이며 “이 게임 안에선 모두가 평등해. 참가자들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지. 바깥세상에서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려 온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라고 말한다. 헛소리다. 이것은 정확히 이준석식 공정 경쟁 담론의 또 다른 버전일 뿐이다. 승자독식의 게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놓고서 마치 이것이 평등하고 원초적인 세계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기만적이지만, 당장 완력을 비롯해 다수 게임에서 유리한 재능은 불공평하게 배분되어 있으며 게임 설계 자체가 대부분 참가자의 운에 맡겨져 있다. 운은 얼핏 공평하게 배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기훈을 비롯해 막대한 빚을 지고 이 미친 게임에 참가하게 된 이들 다수는 운이 없어 여기까지 몰린 사람들이다.

아무 존재감 없던 유리 공장 노동자가 다섯 번째 게임인 유리 다리 건너기에서 빛의 반사를 통해 강화 유리를 구별하는 재능을 보이자 평등한 싸움 운운하던 프론트맨은 조명을 꺼서 그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프론트맨이 말하는 공평은 약자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이러한 자가당착으로부터 이 서바이벌 세계의 모순을 비판하기란 어렵지 않으며 또한 의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주제에만 집중하기엔, 이미 이 게임에선 어이없는 편법이 대놓고 등장한다. 밖에서 몰래 라이터를 반입한 한미녀(김주령)는 달고나 뽑기 게임에서 바늘을 불에 달궈 쉽게 통과한다. 뽑기 모양을 맞추지 못하고 달고나를 쪼개면 바로바로 옆의 진행요원 총에 맞고 죽어나가는 세계에서 미녀는 미끄럼틀 밑에 숨어 잘도 이런 짓을 한다. 모두가 평등한 싸움을 하도록 통제된 세계라는 게 실제론 어떻게 모순적인지 비판하자니, 그들의 통제란 이토록 선택적으로만 전능하다. 그러니 이 작품은 동의할 수 없는 세계관으로 설계되었다기보다는 마구잡이로 설계되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456억원의 상금을 놓고 벌이는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그린 <오징어게임>이 한국 드라마 최초 미국 넷플릭스에서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밖에 홍콩, 말레이시아, 카타르,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태국 등에서도 1위에 랭크됐다. 넷플릭스 제공

456억원의 상금을 놓고 벌이는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그린 <오징어게임>이 한국 드라마 최초 미국 넷플릭스에서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밖에 홍콩, 말레이시아, 카타르,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태국 등에서도 1위에 랭크됐다. 넷플릭스 제공

그럼에도 이 세계에서 어느 정도 일관되게 유지되는 것이 있다면 한국 중년 남성에 대한 연민의 정서다. 일남이 설계한 작품 속 게임은 종종 단순함보다는 중년의 추억에 방점이 찍힌다. 구슬치기 게임이 진행된 옛 골목은 일남이 살던 골목을 재현해놓은 것이며, 기훈의 동네 후배이자 서울대 경영학과 수석입학 출신 조상우(박해수)가 설탕물에 대한 강새벽(정호연)의 힌트로부터 달고나를 떠올린 것은 경영학이 아닌 과거 운동장 풍경에 대한 기억 덕이다. 거의 100% 운으로 최종전까지 살아남은 기훈이 처음으로 주인공다운 당당함을 보여주는 건 마지막 오징어게임에서 중간의 다리를 가로지르는 ‘암행어사’를 성공하고 그 명칭을 굳이 입 밖으로까지 내놓을 때다. 사채에 쫓겨 벼랑 끝에 몰렸던 중년 남성이 화려하게 귀환할 수 있는 무대로서의 옛날 게임. 그에 반해 공기놀이나 고무줄놀이처럼 중년 여성에게 좀 더 익숙할 게임은 참가자들의 대화에서만 언급될 뿐 여성 캐릭터에게 과거에의 추억은 별다른 어드밴티지로 작동하지 않는다.

주요 여성 캐릭터 삼인방 중 중년인 미녀는 섹스를 재화 삼아 깡패 장덕수(허성태)와 거래하고, 나머지 둘인 새벽과 지영(이유미)은 옛날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청년으로 설정해 서사 안에서 도구적으로 활용한 건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작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뒤 게임 중 뜬금없이 불우한 과거사를 고백하다 자신을 한 팀으로 맺어줘 고맙다며 새벽을 위해 죽어주는 지영 캐릭터의 납작한 프로필은 해당 에피소드의 비극미를 위해 대충 끼워 넣은 서사적 톱니바퀴 수준이다. 배우 정호연의 열연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새벽은, 그럼에도 최종전을 앞두고 상우의 타락과 기훈의 각성을 위한 수단으로서 죽음을 맞이한다.

아주 간단한 아이들 놀이를 목숨 걸고 한다는 아이디어에
이런저런 이유를 덕지덕지 가져다 붙인 결과물
주인공 기훈을 포장하는데 얼마나 많은 프로필이 동원됐나
악당의 전능함은 장르적 허용으로 넘어가는 게 낫지
개연성을 부여하려다 보면 창작자의 허술함만 드러날 뿐이다


그에 반해 주인공 기훈을 괜찮은 인물로 포장하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프로필이 부여됐는지 앞서의 여성 캐릭터들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다. 딸 생일에 치킨이라도 사주라며 노모(김영옥)가 준 용돈뿐 아니라 노모의 카드까지 털어 경마에 걸던 개차반이지만, 그에겐 쌍용차 노조 복직 투쟁의 알레고리가 분명한 드래곤모터스 복직 투쟁의 아픈 기억이 있고, 이혼한 아내(강말금)에게 양육비 한 푼 주지 않는 무책임한 생부지만 딸에 대한 진심은 패밀리 레스토랑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포장마차 떡볶이의 정감 있는 맛으로 증명하는 따뜻한 아빠다. 꼴 보기 싫던 인간 안의 존엄성이란 건 분명 주인공으로서 매력적인 요소지만, 작품은 기훈의 무책임함을 직시하며 그 안의 인간성을 살피기보단 쉬지 않고 그를 위해 사후적인 변명거리를 던져준다. 아이 낳을 때 그 자리에도 없던 인간이 무슨 아빠 노릇이냐는 전처의 분노에 대해, 투쟁하던 동료가 쓰러져서 어쩔 수 없다고 기훈이 답할 때, 피치 못할 사정은 오로지 기훈의 몫이 된다. 첫 화부터 기훈을 위한 변명으로 점철되던 이야기는 타락한 상우가 마지막 게임에서 “형(기훈)하고 이러고 놀다보면 꼭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렀는데”라며 회한에 빠지다 스스로 목에 칼을 꽂고 “우리 엄마”를 수없이 되뇌는 장면을 통해 험진 세상에서 망가져왔지만 가슴속엔 자식과 엄마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잃은 적 없는 한국 중년 남성 판타지를 완성한다. 마지막 에피소드 제목이 아내를 때리지만 마음으론 따뜻하게 아낀다던 김첨지 이야기를 그린 현진건의 동명 소설을 모티브로 한 ‘운수 좋은 날’인 건 어떤 무의식의 발현처럼도 보인다.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노골적으로 다음 시즌을 암시한 <오징어게임>의 시즌 2가 조금도 궁금하지 않은 건 그래서다. 이병헌이란 거물급 배우를 캐스팅한 프론트맨의 과거와 그가 오징어게임의 지휘관이 된 이유도 궁금하지 않다. 그는 앞서 인용한 대사에서 불평등에 시달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겠다는 대의를 말했지만, 정작 그가 직접 지휘한 게임은 딱히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자가당착에 빠진 중년 남성 악당의 사연을 우리가 또 들어줄 필요가 있을까. 이미 시즌 1 마지막 화에서 일남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어주지 않았나. 어떻게 해외 V.I.P.까지 참여하는 거대한 서바이벌 게임이 존재하고 가능할 수 있는지 그 구조도 궁금하지 않다. 작품 막바지에 기훈이 출국 중이란 것까지 알고 그의 재참여를 만류할 정도로 전능하지만, 또한 기훈이 충분히 인식 가능한 범위에서 오징어게임 참가자 영입을 벌일 정도로 그 전능함은 선택적으로 허술하다. 악당의 전능함은 장르적 허용으로 넘어가는 게 낫지, 거기에 개연성을 부여하려다 보면 창작자의 허술함만 드러날 뿐이다. 오징어게임 우승자가 되어 각성한 기훈이 어떻게 이 거대한 조직과 싸워나갈지도 궁금하지 않다. 그가 우승한 건 90%의 운과 일남의 호의 덕이지 소시민의 평범한 위대함 때문이 아니며, 그가 주인공으로서 상징하는 건 한 줌의 인류애가 아닌 한국 중년 남성의 자기연민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의 흥행을 기록한 이 작품의 다음 시즌이 제작될 확률은 첫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의 생존 확률보다도 높을 것이다. 그걸 부정할 이유는 없다. 작품 속 게임이 증명하듯, 승리란 꼭 능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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