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또다시 '종전선언' 꺼내든 문 대통령..미국 측 반응은?

김양순 2021. 9. 2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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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76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유엔총회에서 또다시 '종전 선언'을 꺼내들었습니다.
현지시간 9월 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섭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번에는 중국까지 포함해서 4자로 당사자 국가가 늘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참전국이 전쟁 종료를 선언해야 한다며 중국을 당사자 국가로 거론한 것은 현실성을 고려한 제안입니다.

그러나 "종전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며 한반도 비핵화의 출발점으로 '종전 선언'을 놓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종전 선언 먼저 꺼내든 故 노무현 대통령

1953년 7월 27일 한국 전쟁의 휴전을 선언하며 판문점에서 유엔군과 공산군 대표가 정전협정에 서명합니다. 이후 한반도는 근 70년 동안 정전 체제가 계속되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 전쟁을 벌이고 있지 않지만 국제법상으로는 6·25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법률에서도 전쟁을 매듭짓고, 한국 현대사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다음 장으로 나아가자는 것이 '종전선언'입니다.

2007년 APEC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조지 부시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종전선언이라는 말을 처음 꺼낸 것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9월 7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종전선언'이라는 단어를 꺼냅니다.

당시 통역 문제로 논란이 이는 바람에 부시 대통령과의 '종전선언' 논의는 적절한 대화로 연결되지 못한 채 마무리되긴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해오고, 목표로 삼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당시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종전 선언이 남북미 관계에서 하나의 장을 닫고 새로운 장을 여는 주춧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부시 대통령이 받아들인 종전선언의 의미는 당시 미국에서 먼저 제안했던 한반도 평화협정에 가까웠습니다.

2007년에도 미국의 입장은 같았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평화협정에 사인할 지는 김정일에 달렸다"며 북핵 폐기가 우선이라는 점을 명확히 드러냈고, 노무현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먼저 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라는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입장은 확고했고, 당시 워싱턴포스트 등이 이를 외교 해프닝으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0년 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던 종전선언이 다시금 무게감을 가지게 된 것은 2018년입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연내 종전 선언,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설치, 이산가족 상봉 등을 천명한 바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정전 상태를 종식하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해야 한다며 연내 종전 선언에 합의한다고 밝혔습니다. 두 정상은 당시,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전환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가동하며 남북미 3자 혹은 남북미중 4자 회담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유엔총회에서도 "앞으로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치들이 관련국 사이에서 실행되고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2019년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정전을 끝내고 완전한 종전을 이뤄야 한다"고 했습니다. 2020년에는 "종전 선언이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 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며 올해를 포함하면 4년째 연속 '종전선언'을 화두로 제시했습니다.

2019년 6월 판문점.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회동


■ 미국이 받아들이는 '종전선언'은?

2007년 조지 부시 대통령 당시 미 국무부의 반응은 "종전선언이라는 게 왜 필요한데?"였다고 합니다. 실체적으로 미군이 계속 주둔할 것이고, 한미 군사 합의는 지속되고, 휴전선은 그대로 그어져있는데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겁니다. 지금도 공화당을 중심으로 이 기류는 다르지 않습니다.

미 공화당의 김 영 의원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의회에서 정치적인 수사로 종전선언 법안을 통과시키고 이를 외교적으로 비준한다 한들, 한반도의 상황이 뭐가 달라지느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한반도가 실체적으로 전쟁을 치르지 않은 지 70년 가까이 되었고, 전쟁을 종료한다는 의미는 평화체제로 가는 한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맞다" 면서도 "종전선언을 미 의회가 통과시킨다고 북한 사람들의 인권이 나아지거나, 북한이 살기 좋아지거나, 비핵화를 추구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종전선언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지 납득하기 어렵다"고도 했습니다.

당장 주한미군을 파견해 놓은 미 국방부는 종전선언 주장에 난감한 표정입니다.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이 9월 22일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우리의 목표는 항구적인 한반도의 비핵화"라면서도 "논의에 열려 있다"고 답변했는데 아차 하는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외교적으로 관여하겠다, 대화에 열려있다"는 통상적인 내용을 읊다가 "종전선언 논의에 열려있다"고 말을 덧댔기 때문입니다.

미 국방부에서 생각하는 '종전'은 말 그대로 전투에 대비해 있는 미군의 철수를 의미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마지막 병력 한 명 까지 철군시킨 뒤 한 말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 종료를 선언한다"였습니다. 더구나 종전선언의 논의 자체가 국방부 소관이 아닙니다. 국방부 대변인이 순간적으로 한 답변에 힘을 실어서는 곤란한 이윱니다.

■미국은 '관심 없다'는 게 현실

그나마 미 국무부는 부시 대통령 때 한바탕 소동을 겪었고,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남북미의 화해 무드를 경험하면서 종전선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습니다.

한국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종전선언이 사실은 실체가 당장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정치적 수사 내지는 상징적 발걸음이라는 점은 이해합니다. 꽃을 꽃이라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듯, 국제사회에서 남한과 북한의 전쟁이 종식됐음을 선언하는 것이 앞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여는 여러 문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 국무부는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한 문이 여러 개 있는데 그 중에 꼭 종전선언을 택할 이유는 없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보수성향의 싱크탱크인 미 국익연구소의 해리 카지아니스 선임 국장은 KBS 인터뷰에 "슬프지만 미국과 북한 모두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아무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아프가니스탄 사태 이후 바이든 정부는 북한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끔 관리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이어 "만에 하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에 와서 남북미가 공동으로 종전선언을 한다면 가능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정치적으로 이득이 없는 일을 미국이 왜 하겠는가" 라고 반문했습니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방부의 북한 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냈던 미국 평화연구소 프랭크 엄 선임 연구원은 "종전선언의 의미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실체적, 법률적 구속력이 전혀 없는 정치적 선언이라 하더라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상징성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지금 미국도, 북한도 그에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한국이 원하는 종전선언이 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정치적으로 '전쟁이 종식되었다'를 선언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북한이 그걸 왜 받아들이겠냐고도 했습니다. 2007년, 2018년 당시의 북한이 아니라는 겁니다.

북한은 이미 상당 수준의 핵개발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코로나19로 폐쇄적인 상황을 유지하고 있지만 베트남 등과 화상 회의에 참여하는 등 예전만큼 완전히 고립된 상태가 아닌 만큼, 종전선언이 더 이상 북한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이 최근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고,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등 긴장을 끌어올리는 국면에서는 종전선언을 논의하는 모양새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김양순 기자 (ysoo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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