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야홍’에서 ‘불쾌한 홍짜기’까지…홍준표 돌풍 진원지는

정용인 기자

대선정국, 주목되는 인터넷커뮤니티의 변화

9월 9일 서울 금천구 즐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국민 시그널 공개면접에 참가한 홍준표 후보가 스튜디오로 들어서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9월 9일 서울 금천구 즐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국민 시그널 공개면접에 참가한 홍준표 후보가 스튜디오로 들어서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엊그제인가 엠엘비파크에도 게시물이 올라왔다. ‘불페너’도 그런 글을 올렸다. ‘김웅 입장문을 읽어봤는데 말은 바뀐 게 없더라’라고 썼다.”

9월 8일 고발사주 의혹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해명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다. 계속되는 그의 말이다.

“…커뮤니티에서도 그 정도 확인을 하고 있다. 과연 제가 오락가락했는지 확인해주시길 바란다.”

김 의원이 언급한 ‘불페너’는 이 인터넷커뮤니티 자유게시판, 불펜(Bullpen) 사용자를 말한다.

이 커뮤니티는 원래 메이저리그 등 해외야구가 주관심사지만 불펜 하단의 ‘최다추천, 최고조회, 최다리플’ 등 그날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글들을 보면 정치시사 이슈가 꽤 된다.

기자가 접속한 9월 9일 최다추천 1위 글은 “(속보) 민주당 또 신작 뜸ㄷㄷ.jpg”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내용을 보면 ‘의정대상 받은 서울시의원 ‘성추행’ 제명’이라는 꼭지명의 채널A 보도 캡처다. 달린 댓글을 보면 조롱이 한가득이다. ‘이참에 더불어만진당으로 바꿔라. 그게 더 친숙하다’, ‘남페미당의 실체’, “역시 또 더불어추행당 ㄷㄷ”

댓글 중 민주당을 옹호하는 댓글은 눈에 띄지 않는다. 과거는 그렇지 않았다.

인터넷커뮤니티에 올라온 정치권 성추행 논란 관련 글에는 길게는 10년 전 정형근 전 의원의 묵주발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색누리당’ 사건리스트를 정리한 댓글이 달리곤 했다. 지금도 친여성향 커뮤니티는 여전하다.

그런데 엠엘비파크 불펜게시판은 달라졌다. 정반대가 됐다. 기자가 접촉한 엠엘비파크 사용자들은 “커뮤니티 내의 반민주당 정서의 기원은 길게는 2012년 안철수 출마 때부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반민주당을 넘어 혐오수준까지 올라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 엠엘비파크 불펜 ‘우향우’ 동인은

지난 2009년 기자는 ‘온라인커뮤니티 저항의 본거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취미나 정보공유를 위해 만들어진 인터넷커뮤니티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을 거치면서 정치적 의사표현과 숙의토론의 장으로 변화된 현실을 추적한 기사다. 기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장강명 작가는 <댓글부대>라는 소설의 무대로 온라인커뮤니티를 다루기도 했다.

기사에서는 당시 엠엘비파크 회원들의 인터뷰와 함께, 회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경향신문에 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광고도 게재했다. 그랬던 엠엘비파크는 왜 변했을까.

김웅 의원의 불펜 언급은 다시 엠엘비파크 회원들 사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역시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다.

“100개의 글이 있다면 그중 99개는 김웅 의원을 비판하는 글이었는데 자기를 옹호하는 한사람의 글만 눈에 들어왔던 모양.” 한 회원의 촌평이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9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지난해 총선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 검사로부터 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을 넘겨받았다는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가진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9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지난해 총선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 검사로부터 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을 넘겨받았다는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가진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한마디로 말하면 대깨윤이죠.” SNS에서 일간 윤석열 배포방을 운영하는 정국진씨의 말이다.

2017년 대선 때 일부 문재인 지지자들이 들고 나온 팻말에 적혀 있던 대깨문(머리가 깨져도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다)이라는 표현은 당사자들은 자긍심에서 사용한 말이지만 바깥에서는 멸칭으로 사용된다.

‘대깨문’에서 파생돼 최근 만들어진 말이 대깨윤·대깨준이다. ‘머리가 깨져도,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윤석열·이준석을 무조건 지지한다’는 뜻이다. 정씨의 전언에 따르면 엠엘비파크(엠팍)는 대표적인 대깨윤 입장이며, 펨코(fm코리아) 사용자들은 대깨준 입장이다. 둘의 입장을 가르는 차이는? 세대다.

“fm코리아는 30대까지가 주류이고 20대가 몰려 있다. 반면 엠팍은 오랫동안 인터넷커뮤니티를 해온 40대가 상대적으로 많다. 과거에는 펨코의 정치적 성향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최근래에 확 올라왔다.”

그가 말하는 최근래의 일이란 지난 4·7 재보궐선거와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다. 이른바 ‘이대남 현상’의 거점이 펨코가 됐다는 것이다. 펨코 역시 정반대의 바람이 분 것은 최근의 일이다.

“2017년과 2018년만 하더라도 펨코에는 문재인 지지자들이 더 많았다. 현 정부의 실적이 누적되면서 점점 더 변해갔고, 엠팍이나 펨코 그리고 대부분의 남초 커뮤니티들이 반페미 정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준석 현상이 일어나면서 대동단결했다.”

■‘대깨준’이냐 ‘대깨윤’이냐… 변수는 세대

그가 보기에 최근 펨코의 질주는 ‘위태위태’하다.

“오세훈에 이어 이준석을 밀었더니 됐다는 데서 정치적 효능감이 한없이 고무됐다. 대깨윤·대깨준 논쟁이 촉발된 것은 페미니즘을 두고 진중권과 이준석이 벌인 논쟁을 두고서다. 여기에 윤석열 후보와 당대표의 갈등, MZ세대 관련 발언에서 대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급부상한 것이 홍준표다.”

‘무야홍(무조건 야당은 홍준표)’은 펨코를 근거지로 상대적으로 젊은 20대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구호다.

‘불쾌한 홍짜기’, ‘홍산가리’와 같은 신조어도 펨코발이다. ‘불쾌한 홍짜기’는 로봇에 대한 인간감정 변화 곡선이론인 ‘불쾌한 골짜기’를 원용한 것인데, 홍준표 의원의 ‘쎈 발언’에 처음에는 불쾌함을 느끼던 사람들이 골짜기를 지나면 급호감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홍산가리도 극약 청산가리를 변형시킨 별명이다. 여야 후보들을 향한 홍 후보의 공격이 선을 넘었더라도 결과적으로 촌철살인의 일침이지 않냐는 것이다. 과거 별명인 ‘홍카콜라’의 진화다.

“펨코가 보기에 엠팍 사용자들은 아재들이다. 이대남, MZ세대에게 젠더갈등은 큰 문제인데, 이들(엠팍 사용자)에게는 그렇게 절박하고 반드시 때려잡아야 하는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준석에 대해 일체감을 덜 느끼는 것이다. 엠팍에게 중요한 것은 정권교체인데, 누가 정권교체를 가장 잘할 수 있느냐가 기준이다. 엠팍이 윤석열을 지지하는 것은 그가 여권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내놓는 정책이나 여권 지지자들이 제기하는 장모문제 등 네거티브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들에게 윤석열은 정권교체의 도구다.”

김웅 의원이 ‘대깨윤’ 성향을 보이는 엠팍게시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이번 고발사주 의혹 논란 직전까지 그가 윤석열과 반대편, 유승민 캠프의 대변인을 맡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엠팍 변화의 계기가 없진 않다. 2019년 8월부터 촉발된 조국대전도 큰 전환점이었지만 지난해 4월 한 누리꾼이 집요한 추적 끝에 밝혀낸 여론조작단의 실체가 결정적 계기였다고 엠팍 사용자들은 입을 모은다.

지금도 남아 있는 5회에 걸친 ‘좌담조작단의 실체’ 게시물은 IP와 휴대폰 기종, 게시물 말머리를 바꿔가며 치밀하게 물밑에서 작업하는 여론조작 작업의 실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 여론조작단의 주체는? 민주당·대통령 지지자들이었다.

“놀라운 것은 여론조작 작업이 언제부터였는지를 추적해보면 드루킹을 넘어 엠팍이 개설된 거의 초창기 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간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민주당 지지성향이지만 지금은 달라졌다는 엠팍 사용자 ㄱ씨의 말이다.

“흔히 댓글공작은 보수의 전유물로 생각해왔던 나 자신이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게 과거엔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을 하나하나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다.”

물론 모든 친문성향 사용자들이 ‘전향’한 것은 아니다. 조국대전 국면 등에서 여전히 강한 친문성향을 보이는 다른 커뮤니티, 클리앙·보배드림·딴지게시판 등으로 넘어갔다. 더 엄밀히 말하면 과거에는 활발하게 게시판에 참여하던 친문성향 누리꾼들이 엠팍에 발길을 끊은 것이다.

2010년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개설될 때까지 DC인사이드의 일부 갤러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터넷커뮤니티 성향은 진보-민주당 지지였다. 일베가 개설된 이후에도 이 구도는 오랫동안 유지됐고, 현재도 엠팍과 펨코를 제외한 나머지 대형 인터넷커뮤니티 성향은 대체로 진보에 기울어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국면에 접어들면서 진보커뮤니티 사이에서도 입장차가 벌어지고 있다.

오늘의유머, 딴지, 클리앙, 보배드림 등에 몰려 있는 사용자들은 대다수가 친이재명 성향인 반면, 루리웹, 젠틀제인, 82쿡을 비롯한 여초커뮤니티 대다수는 이낙연 후보에 기울어 있다. 입장을 갈리는 기준에 젠더문제에 대한 시각도 일정 역할을 하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준석(오른쪽) 국민의힘 대표와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비공개 회동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준석(오른쪽) 국민의힘 대표와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비공개 회동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준석에 이어 홍준표를 MZ세대가 밀고 있다는 것은 엄청 큰 사건이 이제 막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커뮤니티가 여론 형성에서 핵심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아직도 기존 제도나 레거시 미디어에서는 잘 모르거나 무시한다는 점이다.”

이번 정부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을 역임한 강정수 박사의 말이다. 전국단위의 무작위 전화 여론조사로는 여론변화의 진원지와 방향·추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부동산 여론 정책에 대해서는 집을 가진 사람과 안 가진 사람을 평균합산해 찬반을 내선 안 된다. 언론중재법에 찬성하냐 반대하냐 1000명 샘플링 전화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찬반 경향이 어느 층에서 두드러지는지를 파악해 그루핑해 일정한 시간추이를 두고 입장변화를 추적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의 경우 온라인에서는 버즈량이 30~40대가 압도했다. 딴지·클리앙게시판에서 강력한 찬반의견이 오갔고 나머지에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해 메시지가 중도층에는 도달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송경재 상지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는 “확실히 ‘무야홍’이 여론 흐름을 바꾸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음과 네이버뉴스에서 무야홍을 검색하면 8월 20일부터 최근 20일간 각각 160건, 200건 매체뉴스가 나오는데, 이건 거의 모든 언론사가 다뤘다는 것이며 결코 작은 이슈가 아니라는 뜻이다. 2030이 주사용자 층인 인터넷커뮤니티의 영향력은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변화가 불편한 진보’가 놓치고 있는 것들

그는 “커뮤니티의 성격이 바뀌는 경우는 과거에도 꽤 있었고, 일종의 진지전이 벌어지는 것이 여러 커뮤니티에서 목격되고 있다”며 “인터넷커뮤니티가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던 민주당이나 민주당 지지자들로서는 최근의 상황에 당혹감 내지는 격세지감을 느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바뀌게 된 이유가 뭔가라는 문제에 대한 계기 내지는 기원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한다”라며 “사실 워마드·메갈리아의 기원도 DC인사이드에 개설된 메르스갤러리에서 ‘우연한 잉여력’이 젠더로 문제의식이 바뀌게 된 경우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변화를 바라보는 데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저 커뮤니티의 성격이 달라진 것이) 일베 세력의 침투나 공작의 결과로 쉽게 단정짓는 태도”라고 덧붙였다.

“어떤 사안이든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일 수는 없고, 사회 저변에은 다양한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에 해당한다. 문제는 다른 생각을 압도하거나 정복하지 못하는 것을 불편하고 이상한 현상으로 보는 태도다. 실상은 그게 실질적인 민주주의다. 자신에게 불편한 사상이 공존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이나 레거시 미디어가 가져야 할 태도다.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 ‘누구의 돈을 받아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와 거리가 먼 자세다.”

하헌기 더불어민주당 청년대변인은 “실제로 20~30대 상당수는 친디지털적이라 인터넷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세상을 보고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과잉대표된 자극적인 몇 사례만 들어 일부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진보도 과거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대의할 것은 대의하고 걸러낼 것은 걸러내 새롭게 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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