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소연 "'펜트' 대본 100번 이하 안 읽은 적 없어"

김진석 기자 2021. 8. 3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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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소름끼치는 악녀지만 타당성 있는 연기가 더해지자 누구든 납득할 대상이 됐다.

배우 김소연이 '펜트하우스'에서 보여준 천서진은 단순히 악녀가 아니라 왜 악행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는지 서사가 깊었다. 그저 소리치고 때려 부수기만 했다면 모두의 공감은 사지 못 했다. 용서 못 받을 악행을 저지르고도 매번 소름끼치는 연기가 뒤따르니 모두가 천서진을 응원했다. 그 결과 57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최우수연기상을 가져갔다. 악역 캐릭터로 수상하게 된 건 2010년 '선덕여왕' 고현정 이후 11년만이다.

어느덧 데뷔 27년차 김소연, 백상예술대상 후보에 오른 것은 두 번째나 참석은 처음, 수상도 처음이다. 본인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이뤄 아직도 꿈만 같다는 그의 인터뷰는 천서진과 전혀 다른 사람이다.

김소연
-'펜트하우스' 종영까지 2주 정도 남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한창 바쁘다가 이제서야 조금 한가해졌다. 촬영이 몇 차례 남지 않았다."

-'펜트하우스' 시작이 궁금하다.
"언젠가부터 막연하게 김순옥 작가님이 쓴 드라마의 악역을 해보고 싶었다. 어느 날 남편과 쇼핑몰에 갔다. 주차를 하고 올라가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드라마를 같이 하자는 제안이었다. 대본 처음 읽었을 때는 내가 기대했던 악역과 조금 달랐다. 천서진의 한계가 느껴졌다. 고민이 생겼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의견이 많이 반영됐나.
"작가님이 미팅이라도 해보자고 해 도산공원 카페에서 주동민 감독님과 김순옥 작가님을 만났다. 얘기를 하다보니 빠져들었다. 천서진의 서사적인 부분에 내 의견을 많이 전달했다. 천서진의 서사를 그려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두 사람이 굉장히 열린 마음으로 들어줬다. 처음 보는 건데 너무 따뜻하더라.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함께 하겠다고 전화를 했다."

-천서진은 단순한 악역은 아니다.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길 의도했나.
"천서진이 왜 이렇게 악인이 됐는지 그만의 서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다."

-시즌을 통틀어 최고의 장면으로 피아노 신이 꼽힌다.
"그 장면에 비하인드가 있다. 사실 수개월간 연습한 곡이 있는데 저작권 때문에 촬영 전 다른 곡으로 바뀌었다. 근데 바뀐 곡이 더 좋더라. 하늘과 우주가 날 돕는구나 생각했다. 감독님은 미안해 했다. 장문의 문자로 '소현 씨가 얼마나 연습 많이 했는지 잘 아는데 못 살려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근데 방송을 보니까 정말로 이전보다 더 좋았다."

-피아노신 못지 않은 화제의 장면이 병원 복도신이다.
"피아노 신을 다 찍은 후였다. 감독님이 '소연씨, 이건 소연씨한테 그냥 맡길게요'라고 말하더라.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마음 속 무언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고 감사했다. 감독님이 나를 믿어줬기 때문에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 '이 신은 배우한테 맡길게요'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가진 이상의 것을 꺼낼 수 있었다."

-유독 감독님에게 고마움이 커 보인다.
"너무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서 그런지 감독님을 무서워하고 현장을 두려워했다. 스스로도 소통하는 것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며 성격도 소심하다. 그러다 나이를 한두살 먹으면서 감독님들과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주동민 감독님과 유독 소통이 잘됐다. 디렉팅도 세세하게 주문하기보단 나한테 자신감을 항상 주려고 노력해줬다. 지난 10회 엔딩에서도 원래는 천서진이 울컥하는 장면이 아니었는데 커트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감독님이 그 부분을 결국 방송으로 내보냈고 시청자들도 많은 감정을 느낀 것 같다. 말을 길게 했지만 감독님은 나에게 너무나 감사한 분이다."

김소연
-'펜트하우스' 준비 기간부터 하면 2년여다. 체력적으로 힘들텐데.
"날 버티게 해주는 건 깡이 아닐까 싶다.(웃음). '진짜사나이' 때는 체력이 안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더 체력 안배를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감기라도 걸릴까봐 노심초사 했고 건강식품도 많이 챙겨 먹었다."

-지독한 연습벌레라고 들었다.
"20년 전 쯤 아버지가 김희애 선배님의 인터뷰를 준 적이 있다. 신문에 난 기사인데 형광펜으로 색칠까지해 주셨다. 아버지는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도 한 번의 연기를 위해 100번을 연습한다'고 말씀했고 그 말을 이번에 실천으로 옮겼다. '펜트하우스'하면서 한 번도 대본을 100번 이하로 읽은 적이 없다. 누군가에겐 오글거릴 수 있는 말이겠지만 그 부분만큼은 당당하다. 평상시에 나는 나약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좋은 연기를 위해서는 연습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김연아 선수 인터뷰도 본 적이 있다. 김연아 선수도 처음에 동작들을 볼 때는 '내가 어떻게 저걸 할 수 있을까' 겁을 낸다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는 김연아 선수의 완벽한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은 저 어려운 동작을 어떻게 저리 쉽게 해내지'라며 감탄한다. 나훈아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연습만이 날 특별하게 한다'라고 말하는 인터뷰를 봤다. 본인의 곡을 얼마나 많이 불렀겠나. 근데 아직도 연습만이 살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거기서 또 한번 충격을 먹었다."

-이번 연기의 만족도는.
"부족함이 너무 많다. '천재들은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멘탈이 약한 편이라서 소심하고 연기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요즘 신인들의 대담함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다. 난 아직 부족하다."

-과거 슬럼프도 있었다.
"1997년 영화 '체인지'를 끝내놓고 분명 좋은 일이 있었다. 근데 내가 그걸 이어가지 못 했다. 작품이 하나 잘되면 그 다음 작품은 편하게 하려고 했다. 과거의 내 모습을 깨닫게 되니 잘나가는 배우들을 보면 질투보다는 반성을 많이 했다. 예전에는 또래 배우들에 비해 뒤처진다고 생각했다. 이제서야 내 미흡함을 발견했고 과거에 나는 부족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속작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할텐데.
"다음 작품에 대한 생각 자체를 아직은 하지 않는다. 회사 대표님과도 '일단 '펜트하우스' 다 끝나고 말하자'고 한다. 촬영이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김소연

-골프에 대한 관심이 남편 덕분에 3% 생겼던데. 관심이 더 생겼나.
"1% 더 늘어난 수준이다. 남편 연습할 때 따라가 뒤에서 나는 대본 연습을 한다. 그물망이 쳐있는 골프장에 가면 시야가 확 트여 기분이 좋다. 포켓볼을 좋아한다. 촬영 끝나면 포켓볼하면서 쉬고 싶다. 많이 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소질있다고 해주더라."

-아직도 '진짜 착한 거 맞냐'는 소리를 듣기도 하나.
"예전에는 그런 말 정말 많이 들었다. '진짜 착한거 맞아요'라는 질문이 많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안 보일까 고민이 많았다. 어느 순간부터 '에이.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살게 됐다. 스스로 착하다고는 생각 안 한다. 주변에서 좋게 봐줄 때도 있느데 그럴 때마다 난 너무 어색하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지금에 해답이 있다. '펜트하우스'가 해답을 알려줬다. 드라마를 처음 시작할 때 기대감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하다보니 좋은 날이 왔다. '아,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면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라는 마음이 생겼다. 이게 나의 해답이다."

김진석·박상우 엔터뉴스팀 기자 kim.jinseok1@jtbc.co.kr(콘텐트비즈니스본부)
사진=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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