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해연의 길목들 [인터뷰]

이다원 기자 2021. 7. 2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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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배우 길해연, 사진제공|티빙


‘배우 길해연’이 있기까진 수많은 길목들을 마주해와야만 했다. 크고 작은 갈림길 사이에서 그는 ‘연기’ 하나를 바라보고 꿋꿋하게 걸어왔다.

“배우로서 사랑받는 것에 집착한 적은 없어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오래 할 수 있었나봐요. 연극만 오래하면 힘들지 않냐고들 묻는데, 돈 없으면 글을 쓰거나 연극 관련 일로 벌면서 해온 터라 딱히 큰 갈등도 없었어요. 제가 연기를 좋아서 하는 게 중요한 거니, 즐거우면 그만이었어요. 목표도 없어요. 그저 제 삶의 여정 속에서 쫓아가는 것 뿐이죠.”

단 하나 중요한 게 있다면 ‘호기심’이다.

“안전한 것보다는 불완전한 일에 더 덤비는 것 같아요. 관심을 안 주는 순간 배우로서 존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걸 목표로 삼진 않았죠. 호기심을 자극하고 ‘재밌겠는데’란 생각만 들면 바로 행하는 편이에요. 후회하지 않아요. 세상엔 헛된 짓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주 쓰잘데기 없는 경험도 배우로선 피와 살이 되니까요. 덕분에 대중이 고맙게도 절 알아봐준 것 같고요.”

길해연은 최근 ‘스포츠경향’과 인터뷰에서 영화 ‘미드나이트’ OCN ‘보이스4’ JTBC ‘로스쿨’ ‘괴물’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등 여러 작품에서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비결과 연기에 대한 애정 등을 공개했다.


■“배우는 운명, 선택했으니 버텼어요”

동덕여대 국어국문학과 출신으로 원래는 작가를 꿈꾸는 문학도였다. 우연히 마주한 희곡에 반해 연극에 빠져들게 됐다고. 무대에 서게 된 건 또 하나의 비화가 숨어있었다.

“23살이었던 1986년 극단 ‘작은 신화’를 만났어요. 당시 초대 대표였던 제 친구가 저보고 연기를 하라고 했는데, 연습하고 집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그 친구를 잃었죠. ‘연극이 내 길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그 친구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올렸죠. 그때부터였어요. 연극을 왜 해야하는지에 의심 한 번 없이 지금까지 오게 됐죠. 이상한 연극을 할 때에도 제가 선택한 거라 버티고 버텼어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연기’라고도 했다. ‘천의 얼굴’을 지닌 그만의 비결이기도 했다.

“제가 연기할 인물을 대본으로 처음 본 순간부터 ‘진짜 어딘가에 사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왜?’라는 질문을 마구 던지죠. 그 안에 날 동화시키면 내 안의 못된 얼굴이나 푼수끼, 경거망동하는 행동까지 평소 안 쓰려고 노력했던 것들이 슬슬 나와요. 그렇게 얼굴이 변하고요. 그 시간만큼은 저도 제 다른 얼굴을 즐기는 것 같아요.”

‘미드나이트’에서 청각장애를 지닌 ‘경미 엄마’로 분할 때에도 비슷했다. 대사 하나 없이 수어만으로 러닝타임을 빼곡하게 채운다.

“수어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경미 엄마’는 전문적으로 수어를 배운 사람이 아니라서 실제 수어를 쓸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려고 했어요. 그리고 ‘감정을 누르고 오래 견딘 사람’이라 마음을 그렇게 먹으려고도 했죠. 그러다 보니 언어적 표현이 없는 연기가 답답하진 않았어요.”


■“후배 연극인 장학금 기탁? 더 많이 하고파요”

극단 시절부터 치자면 연기와 자그만치 35년간 연애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갈망하는 건 ‘연기 잘한다’는 평이다.

“제가 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극단 모토가 ‘지금 여기 우리, 변화하는’인데 그게 제 삶의 가치관이기도 해요. 또 좋은 작품도 만나고 싶죠. 소모되거나 기능적이지 않은 역이라면 그 규모는 상관없어요. 가능성 있는 작품을 모두의 힘을 합쳐 만들어내는 그 순간 느끼는 희열은 장난이 아니거든요.”

그 목마름으로 한발 한발 내디딘 그였기에, 후배 연극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 싶단다. 지난 2월 ‘2021 길해연 장학금 사업’을 통해 후배 연극인들과 그 자녀들을 위한 ‘길해연 장학금’을 쾌척한 바 있다.

“연극인 복지재단 이사장 직을 맡았는데 무료명예직이에요. 연극인 자녀들에게 작더라도 선물을 주고 싶더라고요.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보태려고 장학금을 냈죠. 여유가 된다면 더 많이 주고 싶은데, 아직 저도 가난해서 쉽지가 않네요. 하하.”

아직도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 배우다. 그에게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냐고 물었다.

“하고 싶은 건 정말 많아요. 대본 안에서 운명과 싸우는 사람의 감정들, 혹은 더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만나고 싶죠. 그러면서도 아직은 제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 연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세월이 가면서 제가 더 깨닫기를 바라고도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의 ‘길해연’이 나올 수 있겠죠?”

이다원 기자 eda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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