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지형 기자 = 고등교육 재정지원 확대를 놓고 대학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중이지만 '정원 감축'에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교육부가 전국을 권역별로 나눠 정원 관리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대학마다 입장이 상이해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3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대학 총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원 감축과 관련해 대학 총장마다 각기 다른 요구를 내놨다. 정원 감축은 등록금 수입 감소와 직결된 사항으로 민감한 문제다.
대교협은 지난 4일부터 24일까지 회원교에 '대학위기 극복방안' 설문을 진행했다. 규제 개선이 필요한 사항과 함께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 정원 감축 방안에 관해서도 의견과 개선점을 물었다.
교육부는 지난 5월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로 신입생·재학생 유지충원율 하위 30~50% 대학에는 정원 감축을 차등 권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재정지원이 중단될 수 있다.
한 대학에서는 설문에서 수도권 대학 정원 감축을 주장했다. "지방대와 동일 비율로 수도권 대학 정원감축 비율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쏠림 완화를 위해 정원 감축에 소극적인 수도권 대학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도권 대학은 연구중심대학으로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됐다. 학부정원을 감축해 석·박사 정원을 확대하고 과도하게 늘려왔던 정원외 선발 인원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랐다.
또 다른 대학에서는 "지방대학은 신입생 모집 어려움이 가중된 상황"이라며 "충원율을 기준으로 감축한다면 결국 지방대 정원이 추가 감축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정책 수정이 필요하다"고 설문에 답했다.
지방대 사이에 수도권 대학을 향한 불만은 이전부터 있었다. 지방대가 신입생 모집 미달을 해소하기 위해 정원을 줄여오고 있지만 수도권 대학은 정원을 유지하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전국 대학 미충원 인원은 4만586만명이다. 비수도권에만 3만458명(75%)이 집중돼 수도권과 지방 대학 간 격차가 큰 상태다.
지난 1일 대교협 하계 대학총장세미나 '대학정책 종합토론'에서도 한 지방대 총장은 "열악한 환경에 있는 지방 사립대 지원을 강화하고 명문대 지원을 제한하는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반면 수도권 대학 정원 감축이 지방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진단도 있다. 수도권 집중화는 대학서열화와 '인서울 대학' 선호 현상에서 비롯돼 수도권 대학 정원을 줄여도 소위 지방대 '낙수효과'는 없다는 것이다.
대신 이 대학은 자체 집계 결과를 토대로 대학 규모별로 정원 감축 수준을 정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지방대 중에서도 대규모 대학은 정원 감축이 미미한 수준이며 중·소규모 대학에 집중돼 있다고 밝혔다.
대교협이 결의문을 통해 고등교육 재정확충을 정부에 요구하며 "학령인구 감소와 사회변화에 대응해 대학 간 공유와 동반성장을 위한 고등교육 생태계 구축에 합심한다"고 했지만 대학 간 갈등 소지도 작지 않은 셈이다.
일부 대학은 유지충원율 점검을 권역별로 나누는 것이 아닌 비슷한 규모 지역을 묶어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남권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인구와 도시 인프라 차이가 수도권과 지방 사이만큼 크다는 이유에서다.
설문에서는 수도권도 서울과 경기·인천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응답도 있었다. 이 대학은 "서울과 경기·인천을 한 권역으로 묶으면 유지충원율 평가 시에 경기·인천 지역 대학만 정원을 감축하는 현상이 불거진다"고 밝혔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 인사는 "대학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제각기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전반적인 고등교육 재정지원 자체를 확대해 전체 파이를 늘릴 것을 요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인철 대교협 회장(한국외대 총장)은 올해 6950억원 수준인 대학혁신지원사업비를 내년 2조원으로 늘릴 것을 교육부에 요구했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대학이 스스로 혁신을 통해 교육역량을 키우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교육부는 올해 하반기 중으로 적정 규모화를 포함한 대학별 자율혁신계획과 유지충원율 점검 관련 구체 사항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서로 다른 대학별 요구를 모두 반영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보면 지방대를 지원하고 육성해야 하는 부분도 필요하다"며 "고등교육에서도 대학별로 서로 상생하는 정원 감축안이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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