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다 생각까지 절반으로 줄인다면

한겨레 2021. 6. 27.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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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고진하목사의 불편당 일기]불편당 일기 24: 토끼풀

잡초요리전문기 권포근 작가가 만든 토끼풀꽃 튀김. 사진 고진하 목사시인.

여름철에 접어들면서 우리 집 마당은 풀들의 낙원이다. 단오가 지나고 나자 풀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하지만 함부로 베어내지 못하고 있다. 너무 쇤 봄풀들만 대충 낫으로 베어주고 새로 난 여름 풀들은 그냥 자라게 둔다. 제 철에 나는 여름풀들을 또 뜯어먹어야 하니까.

물론 풀들의 쓸모가 먹거리에만 있는 건 아니다. 풀로 뒤덮인 마당은 우리에게 청량한 산소를 제공해 줄 뿐 아니라 그 푸른 빛으로 마음의 평화와 안식도 선물해 준다. 풀들은 우리 식구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약초이기도 하다. 꽃이 피면 들풀들은 즐거운 놀이재료가 되기도 한다. 아내는 꽃들이 피는 철마다 수돗가 돌확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 위에 각종 꽃잎들을 띄워놓고 꽃놀이를 즐기고, 또 자기만의 독특한 착상으로 각종 꽃을 얼려 얼음꽃그릇을 만들어 귀한 손님들의 식탁에 음식을 담아 올려 기쁨을 주기도 한다.

얼마 전엔 서울에 사는 조카가 쌍둥이 딸들을 데리고 놀러 왔다. 아파트의 메마르고 답답한 생활에 지친 조카는 들풀로 무성한 마당을 보더니 탄성을 질렀다. 들풀들로 차린 점심을 먹고 난 조카는 쌍둥이 딸들을 데리고 마당으로 나가면서 물었다.

“외삼촌, 마당에 토끼풀이 많던데, 좀 뜯어도 될까요?”

“토끼풀로 뭘 하려구?”

“우리 애들에게 멋진 추억 만들어주고 싶어서요.”

본래 강원도 오지 출신인 조카는 마당가에 지천으로 피어난 토끼풀 꽃을 뜯기 시작했다. 무얼 하나 지켜보았더니, 두어 줌 토끼풀 꽃을 뜯은 조카는 그걸로 꽃반지도 만들고 꽃팔찌도 만들었다. 퍽 오랜만에 만들어보는 것일 텐데도 솜씨가 제법 능숙하다. 꽃반지와 꽃팔찌가 완성되자 딸들의 약지손가락과 손목에 묶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딸들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 꽃반지와 꽃팔찌는 엄마의 사랑이야!”

초등생인 자매는 처음엔 좀 낯설어 어리둥절한 표정이더니, 자기 엄마의 고백을 듣고 나서 꽃반지와 꽃팔찌를 찬 팔로 엄마를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엄마, 우리도 많이많이 사랑해!”

조카가 딸들과 함께 꽃놀이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흔흔해졌다. 조카는 나와 내 아내 팔목에도 토끼풀 꽃팔찌를 묶어 주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한 기쁨을 맛본 우리는 토끼풀밭에 나란히 앉아 손목을 흔들며 꽃놀이 기념사진도 찍었다.

토끼풀밭에서 한참을 놀던 조카와 딸들이 떠난 후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꽃놀이는 왜 우리의 기분을 고양시키는 걸까. 어떤 식물학자가 내가 가진 의문을 해소해준다.

토끼풀꽃반지와 토끼풀꽃팔찌. 사진 고진하 목사 시인

“식물은 인간의 기분, 집중력, 학습, 심신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우리의 DNA 속에는 식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메시지가 아로새겨져 있는 듯하다.”(스테파도 만쿠소, <매혹하는 식물의 뇌>)

토끼풀은 사람만 아니라 벌들에게도 큰 인기를 끈다. 꿀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도 토끼풀이 등장한다. 어느 날 벌들이 제우스 신에게 독이 있는 풀들이 너무 많아 좋은 꿀이 있는 꽃을 찾기 힘드니 쉽게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제우스는 커다란 붓으로 흰 물감을 묻혀 어떤 꽃에 동그란 표시를 해 주었는데 그 꽃이 바로 토끼풀(클로바)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토끼풀 꽃을 보면 하얀 동그라미처럼 보인다.

유럽 원산의 귀화식물인 토끼풀은 우리나라 어디서나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그 꽃의 생태가 좀 특이하다. 토끼풀 꽃은 작은 꽃송이들이 모여 한 송이 꽃을 이룬다. 그 작은 꽃들은 아래서부터 위로 순서대로 핀다. 그러므로 한 송이 꽃 속에는 앞으로 필 꽃과 피어 있는 꽃, 그리고 진 뒤에도 떨어지지 않는 꽃이 뒤섞여 있다. 이런 꽃 피우기의 습성은 토끼풀 나름의 생존 전략이다.

토끼풀이 이처럼 순서에 따라 꽃을 피워가는 것은 오랜 기간 벌들을 불러모으기 위함이다. 각 꽃송이의 수명은 짧지만 앞으로 필 꽃망울은 물론 시든 꽃송이까지 한군데 모여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마치 하나의 꽃이 계속해서 피어 있는 듯이 보인다. 토끼풀은 이런 술책을 써서 꿀벌들을 불러 모으는데, 그 생존의 지혜가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토끼풀은 거름이 부족한 척박한 땅에도 잘 자란다. 콩과식물인 토끼풀은 식물 생장에 필요한 질소를 스스로 공급해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토끼풀의 뿌리에 공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는 질소를 고정해 식물의 생장과 건강을 돕는데, 토끼풀이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질소는 그 일부에 불과하다. 토끼풀이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남은 질소는 토양에 그대로 남아 있어 다른 식물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 이처럼 다른 식물도 자랄 수 있는 옥토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 꽃말이 ‘행운’인지도 모른다.

행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네 잎 토끼풀에 관한 이야기는 모르는 이가 없으리라. 본래 토끼풀은 세 잎이지만, 간혹 네 잎 짜리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 네 잎 토끼풀을 찾으면 행운을 얻는다고 해서 아이들과 학교 뒷동산에 올라가 토끼풀 군락에서 그걸 찾기 위해 몇 시간을 헤맨 기억도 아련하다. 이와 관련된 오래된 전설도 있다. 성(聖) 패트릭이라는 아일랜드의 주교는 세 잎 토끼풀을 이용해 삼위일체를 설명했다. 즉 토끼풀의 세 잎을 믿음, 소망, 사랑의 삼위일체에 비유하고, 한 잎이 더 많은 토끼풀의 네 번째 잎을 행운이라고 했다고 하여,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면 행운을 얻게 된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게 된 것이다. 하여간 패트릭 주교가 죽은 후 그가 사망한 날인 3월 17일이 되면 아일랜드인들은 토끼풀의 색인 초록색 옷을 입는다고 한다.

그런데 네 잎의 토끼풀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 생장점이 상처를 입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 경험으로 보더라도 네 잎 토끼풀은 길가나 운동장과 같이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에 많이 난다. 그러니까 행복의 심벌은 평온한 꽃밭 속에는 없다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진정한 행복은 길가나 운동장의 토끼풀처럼 짓밟히며 자란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 가족이 토끼풀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강한 생명력 때문이다. 몇 해 동안 마당에서 자라는 토끼풀을 관찰해보았는데, 달팽이나 메뚜기 같은 해충도 토끼풀을 갉아먹지 않았다. 번식력도 대단해 제초제를 뿌리면(난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다. 이웃집 사람이 마당에 잔디를 키우려고 제초제 뿌리는 걸 보았다.) 죽은 듯 하다가도 약간의 비가 내리면 곧 되살아나곤 했다.

흔한 들풀의 약성에 주목하던 우리는 토끼풀에 관한 오래된 자료를 뒤적여 보았는데, 토끼풀은 무엇보다 염증 치료에 탁월한 효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몇 해 전 딸이 체증으로 자주 고생했는데, 병원 치료를 받아도 잘 낫지 않았다. 아내는 들풀로 딸의 속병을 치료해 보겠다며 어린 토끼풀을 뜯어 샐러드를 요리해 딸에게 먹였다. 물론 처음엔 토끼나 먹는 풀을 내가 왜 먹느냐고 께름칙하게 여겼지만, 엄마의 설득에 넘어가 토끼풀 샐러드를 먹고 나더니 속이 아주 편안해졌다며 신기해했다. 그 후 몇 번을 더 먹고는 묵은 체증이 씻은 듯이 나아버렸다.

토끼풀의 잎에는 글루코시드, 포르모네틴 쿠에르세틴 등이 함유되어 있어 지혈과 각종 염증에 효능이 있으며, 특히 손톱 밑이 곪는 생인손 앓이에 탁월한 효험을 지니고 있다. 토끼풀 꽃에는 트로폴린, 탄닌, 정유 등이 있어 폐결핵이나 천식, 황달을 치료하고, 이뇨작용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몸에 열이 날 때 해열제로도 쓸 수 있다고 한다. 치과가 흔치 않은 옛날엔 치통으로 고생하는 일이 흔했는데, 잎을 잘근잘근 씹어서 아픈 치아로 물고 통증을 다스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잡초요리전문가 권포근 작가가 만든 얼음꽃그릇. 사진 고진하 목사 시인

토끼풀의 이런 효능을 알고 난 후 우리 집에서는 토끼풀로 여러 가지 요리를 해 먹는다. 먼저 잎으로 하는 요리. 어린 토끼풀 잎을 뜯어서 삶아 된장이나 고추장, 간장으로 무쳐서 요리하면 되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샐러드나 겉절이 요리를 해도 된다. 요리하기 전에 주의할 점은 샐러드나 겉절이는 데치지 않고 날 것으로 하기 때문에 식초 물에 5분 정도 담가서 소독한 후에 요리하는 것이 좋다.

꽃으로 하는 요리. 채취한 토끼풀 꽃을 깨끗이 씻어 부침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겨내면 된다. 토끼풀 꽃튀김은 향이 일품이며 사찰에서 많이 해먹는 요리인 아카시아꽃 튀김 못잖게 맛도 좋다. 한 번 맛 들이면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을 정도로 자꾸만 손이 간다.

하지만 난 아무리 맛난 음식이라도 과식은 삼가려 애쓴다. 과식을 하면 온종일 정신이 몽롱해지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나는 소식을 실천하며 살려고 한다. 그러나 “건강을 위해서만 하는 소식은 반쪽이고, 우리의 생각의 반을 더는 것까지 연결되어야만 진정한 소식이다.”(대안 스님, 『식탁 위의 명상』) 스님의 이 문장을 읽고 난 무릎을 쳤다. 실제로 소식을 해보면 머리가 맑아져서 쓸데없는 생각에 덜 끄달리게 되더라.

음식을 채우는 그릇[위]을 비우면 건강한 정신이 우리 몸 그릇에 깃든다. 가볍게 먹으면 몸과 마음도 가벼워지고, 지나친 식탐을 자제할 수 있으면 다른 욕망에 대한 자제력도 배가된다.

야생초 요리와 관련해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향미를 높이기 위하여 사용되는 아미노산계 조미료인 MSG 같은 인공조미료를 쓰지 말고 꼭 필요한 양념만으로 요리하라는 것이다. 야생초 요리를 오래도록 먹어온 경험으로 말하면, 전통적인 기본양념인 된장, 간장, 고추장만으로도 맛있고 건강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 오늘날 요리문화의 지나친 발달은 우리의 건강마저 위협하는 탐식으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가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에 현혹되는 건 우리의 삶이 혀의 지배 아래 산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토끼풀만 아니라 숱한 잡초와 사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졸시 <잡초비빔밥>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련다.

흔한 것이 귀하다.

그대들이 잡초라 깔보는 풀들을 뜯어

오늘도 풋풋한 자연의 성찬을 즐겼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은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숱한 맛집을 순례하듯 찾아다니지만,

나는 논밭두렁이나 길가에 핀

흔하디흔한 풀들을 뜯어

거룩한 한 끼 식사를 해결했느니.

신이 값없는 선물로 준

풀들을 뜯어 밥에 비벼 꼭꼭 씹어 먹었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이

개망초 민들레 질경이 돌미나리 쇠비름

토끼풀 돌콩 왕고들빼기 우슬초 비름나물 등

그 흔한 맛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너무 흔해서 사람들 발에 마구 짓밟힌

초록의 혼들, 하지만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나니,

그렇게 흔들리는 풋풋한 것들을 내 몸에 모시며

나 또한 싱싱한 초록으로 지구 위에 나부끼나니.

글 고진하 목사 시인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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