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생활2', 이런 판타지라면 눈감아줘야

아이즈 ize 글 이현주(칼럼니스트) 입력 2021. 6. 2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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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이현주(칼럼니스트)


슬프거나 감동적이거나. 메디컬 드라마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매우 견고하다. 양쪽 모두 섣불리 디뎠다가 빠지면 속절없이 눈물을 쏟게 만드는 감정이기에 웬만하면 보지 않으려고 한다. 세상에서 내가 싫어하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추운 것이고 두 번째는 아픈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따뜻한 곳에서 노년을 보내고 싶고, 나는 물론이고, 가족, 지인, 누구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인생을 축약하면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의학과 과학이 이렇게 발달한 요즘에도 그 네 글자 중 ‘병’을 빼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병원은 멀리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봐야 하는 밉상 친구 같다. 특히 나처럼 어린아이가 있고, 연로한 부모님을 둔 경우 더 자주 드나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네 일상에서 중요한 공간이기에, 드라마의 단골 배경이 되는 거겠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사건과 사연은 또 병원 구석구석에서 날마다 얼마나 생겨나겠는가.

 

서두가 긴 이유는 피하고 피하다 결국 굴복하고만 드라마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지난주 시작한 tvN의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극본 이우정, 연출 신원호) 앞서 이야기한 견고한 선입견 때문에 시즌 1이 시작할 당시 이 드라마엔 관심조차 안 가지려 했다. 그런데 우연히 보게 됐고, 결국 본방사수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재방송까지 챙겨 보고, 음원을 다운받아 흥얼거리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시즌 1이 끝났을 때 얼마나 서운했던지.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앞으로 메디컬 드라마 안 본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구나 다짐하며 시즌 2를 내내 기다려왔던 것이다.


 

다행히 내게도 변명할 거리가 있는 것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메디컬’이라 쓰고 ‘라이프’라 읽는, 우리네 평범한 삶의 이야기라고 기획 의도에 명백히 적혀 있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메디컬 드라마가 아니란 얘기. 그렇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병원이 배경일 뿐,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 사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의 매력이 바로 거기에 있다. 사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판타지다. 나를 비롯한 시청자는 모두 알고 있다. 세상에 그런 우정은, 그런 의사들은 흔치 않다는 것을.


인생의 단계마다 우린 친구를 만난다. 초·중·고 시절을 지나 대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살아가는 과정의 어느 한 시절을 공유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 기간이 길수록 관계와 애정도 깊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그것이 꼭 함께 쌓은 시간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 삶에 미욱한 시기를 지나 어느덧 원숙해졌다고 느끼는 순간까지 함께했다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의지도 그만큼 견고할 수밖에 없다. 예전의 나를,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는 친구처럼 편한 상대가 또 있을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감정을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이속을 따져 만나지 않아도 되는…. 그런데 친구는 현실에 결코 많지 않기에, 드라마에 등장하는 친구들이 많이 부럽고, 마냥 좋아 보이는 것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다섯 명의 주인공은 각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의사들이지만, 일상에선 우리네처럼 평범하고 뭔가 부족함도 지닌 보통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마치 아이돌 그룹처럼 저마다 개성이 강해 누구나 마음에 드는 멤버 한 명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원체 꽃미남을 좋아하는 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유독 내 마음을 끄는 주인공은 산부인과 조교수 양석형이다. 아이 셋을 낳으며 산부인과를 가장 많이 들락거렸기에 유독 감정이입이 잘 되어서일까. 무심한 듯 보이지만 누구보다 환자의 마음을 세심하게 (표나지 않게 하는 것도 참 기술) 헤아리는 모습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은둔형 외톨이인 그에게 꿋꿋하게 들이대는 레지던트 추민하는 또 어찌나 귀여운지. 시즌 2 1화에서 전 부인이 등장해 추민하를 긴장시켰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추민하 편이다. 전형적인 악역이 없는 이 드라마에서 부디 전부인 윤신혜가 둘 사이 걸림돌이 되지 않길 바라며.


 

비둘기(?) 익순과 준완 커플은 언제 익준에게 들통날지, 송화는 익준의 마음을 언제쯤 받아줄지, 정원과 겨울은 얼마나 예쁜 사랑을 키워갈지 등등이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서 기대되는 부분이다. 더불어 정원 어머니와 주종수 율재재단 이사장의 우정을 지켜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 병원을 구성하는 의사와 간호사, 어떤 조연도 섣불리 소모되지 않고 성의껏 그려지는 것 또한 이 드라마에 온기를 더한다. 그런 가운데 또 얼마나 다양한 환자들의 사연이 또 내 눈물샘을 자극할까.

 

판타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믿고 싶다. 구구즈 같은 우정이 가능하다고. 많지 않아도 인생에서 끝까지 내 편을 들어줄 친구 몇 명쯤은 있다고. 그리고 세상엔 분명 주인공들 같은 의사들이 많을 것이라고. (그건 확실하다.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내 아들의 담당 의사는 늘 예약 환자가 그 과에서 가장 많지만, 항상 친절하고 성심으로 대해 주신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만난 의사들은 대부분 최고였다. 그분들께 감사를!)

 

매번 드라마가 끝나면 세상이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함정, 마음이 쓸데없이 촉촉해지는 것이 단점이지만 이런 따뜻한 판타지 하나쯤은 눈감아줘야 하지 않을까 하며, 야박하게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이 드라마를 또 기다려본다.


이현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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