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올드무비㊺] 미안하다, 사랑한다 '리틀 걸' 샤샤

홍종선 2021. 6. 1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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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걸'의 주인공 샤샤 ⓒ이하 '다음' 영화정보

몇 살쯤 세상이 사람을 여자와 남자로 나누고 있다는 걸 알았을까. 그로부터 얼마 후 그 가운데 여자임을 알았을까. 언제쯤 여자와 남자라는 단순한 구분 외에 여러 가지 성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을까. 그로부터 얼마 후 다양한 정체성을 인정했을까.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에 자연히 순응했던 것인지, 사회적으로 각인되고 키워진 것인지, 주체적으로 정체성을 인지했던 것인지 솔직히 확언하지 못하겠다. 인형 놀이를 여자만 하는 것도 아니고 꾸미고 가꾸는 걸 여자만 좋아하는 것도 아닌 요즘 세태에 비춰 보면, 반백 년 전 스스로 여자라고 여겼던 근거들이 미약하기 짝이 없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에 와 돌아보면, 생물학적 성과 골목이나 학교 문화에서 확인된 사회적 성이 다르지 않아서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없어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그저 여자아이였고 여자로 살았다. 당시 고민이었다면, 남아선호사상의 잔재가 큰 문화에서 여자여서 억울한 일들이 종종 있었고 그러함에도 남자가 아니라 여자여서 좋다고 생각되는 지점들을 여자 친구와 나누며 즐거워했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 여자의 몸으로 '변신'하기를 바랐던 샤샤 ⓒ

그런데 만일. 태어나기를 남자로 태어났는데 스스로는 여자로 느낀다면, 아니 내가 여자인 것은 분명한데 말도 안 되게 남자의 몸으로 태어난 상황이라면, 그 아이의 절망은 얼마나 클까. 일곱 살 샤샤가 그러한 경우다. 경우, 확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샤샤는 영화 ‘리틀 걸’(감독 세바스찬 리프쉬츠, 2020)의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꾸며낸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다. 다큐멘터리영화의 주인공, 실존 인물이다. 프랑스인이다.


샤샤는 이미 세 살부터 자신이 다른 성의 몸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 몸의 성기가 싫었고, 장차 자신의 몸에 아기를 품을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


“커서 여자가 될래요.”


아무리 허황한 꿈도 격려해 줘야 하는 게 엄마지만,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 여자가 되겠다는 자식에게 엄마는 솔직하게 답했다. 아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야. 이다음에 크면, 어른이 되면 몸과 마음의 불일치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어린 마음에 혼자 믿고 스스로 달랬을 샤샤가 맞닥뜨린 첫 번째 절벽이었다.


폭력적 교육…여자로 대우하는 게 정당하다는 전문가 의견이 전달된 뒤에도 홀로 왕자 역할을 해야 하는 샤샤 ⓒ

엄마는 샤샤의 마음과 의지를 인정했고, 집에서만큼은 여자아이로 살게 했다. 문제가 생긴 시점은 초등학교 입학, 가정을 떠나 사회로 발을 내디딘 순간이다. 교장을 위시해 학교 선생님들은 서류상에 적힌 대로 남자아이로 등교하길 바라고, 샤샤는 여자이고 싶은 것도 아니고 여자일 때 편한 것도 아니고 여자인 건데 이를 받아 들여주지 않는다.


그렇게 남자아이로 학교에 다니길 2년, 3학년 진급을 앞두고 샤샤의 어머니는 마음이 바쁘다. 더 이상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 눈치 보며 전학 가고 싶지도 않고, 새 학년부터는 여자로서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다. 학교는 정식 서류, 공신력 있는 전문가 의견을 요구한다.


엄마는 갖은 노력 끝에 파리의 아동심리 전문가, 특별히 성 정체성에 관련된 전문가를 샤샤와 만나러 간다. 의사는 샤샤 같은 경우를 ‘성불쾌감’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생물학적 성에 대해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끼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의사는 샤샤를 여자로 대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소견을 서류로 작성한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가 있다 ⓒ

첫 번째 상담은 의도와 다르게 엄마를 위한 시간이 됐다. 엄마는 샤샤가 배 속에 있을 때 딸을 원했고 그것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것인가 자책하곤 했는데, 의사는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엄마는 샤샤가 원하는 대로 치마를 입혀 키우고 딸로 대한 게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궁금해했는데, 의사는 한쪽 성을 강압적으로 강요한 것보다 나은 선택이었다고 격려한다.


첫 번째 상담은 필자와 같은 못난 관객에게도 변곡점을 만들어 준다. 솔직히 말하건데, 영화가 시작된 후 샤샤의 외모와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쩜 너무 예쁘게 생겼네, 아이고 하는 행동이며 손짓 몸짓이 천생 여자네 생각하면서도 ‘어린 샤샤가 잘못 느낀 거라면?’이라는 생각을 의식의 저 밑바닥에서 1%도 하지 않았다고 장담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첫 번째 상담에서 목격한 샤샤의 ‘눈물’, 참고 참다 눈과 입술이 ‘ㅅ’자로 무너지며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바로 믿었다. 샤샤는 여자구나!


당연히, 너무 예뻐서가 아니다. 내가 도둑이 아닌데 도둑으로 몰릴 때의 억울함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나는 진실로 여자인데 이 당연한 것을 증명해야 하는 삶을 짧다고 해도 평생 살아온 아이의 깊은 상처가 보였다. 샤샤는 약자였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드러낼 수 없어 감추고, 할 말을 삼키고 삼킬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였다. 저 가냘픈 꼬마가 사회적 약자로서 살아온 시간이 짐작되고도 남아 가슴이 답답했다.


당당하게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샤샤, 가족과 즐거운 한 때 ⓒ

샤샤는 첫 번째 상담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자신에 대해 말해도 되는 기회와 권리가,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보였다. 엄마가 곁에서, 단지 ‘밀었다’ ‘화장실’과 같은 에둘러 점잖게 표현한 말들로 샤샤가 겪은 일을 언급했을 뿐인데, 참았던 눈물이 솟아나 흘렀다.


시간이 흐른 뒤 이뤄진 두 번째 상담에서 샤샤는 “친구가 한 명 생겼다”며 한층 밝아진 표정을 보였지만, 그사이 있었던 슬픈 사건들은 말하지 않았다. 의사가 발급해준 서류 덕분에 여자로 3학년을 다니게 된 뒤 이뤄진 세 번째 상담에서 샤샤는 정말이지 밝은 모습을 보였다. 얘기할 만한 일이 있었느냐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샤샤는 있지만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늘 자신을 위해 싸우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샤샤이기에, 그럼 따로 얘기하겠느냐고 해도 샤샤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발레 수업에서 있었던, 의사의 표현을 빌자면 고발해 마땅한 폭력을 엄마가 대신 전하자 샤샤는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았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려는, 그들마저도 이해하려고 애쓰거나 용인하려는 어린 소녀의 태도가 눈물샘을 터뜨렸다. 즐겁고 기쁜 일은 말하되 상처는 입에 담을 엄두도 못 내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성 소수자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절감했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이들조차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못하는 샤샤가 너무 안쓰러워 우리의 옹졸함을 사과하고 싶었다. 세상의 수많은 ‘샤샤’들에게도 함께.


샤샤가 마음 편히 여자일 수 있는 세상이 더욱 넓어지기를… ⓒ

영화 ‘리틀 걸’은 다큐멘터리영화인데 마치 극영화처럼 느껴진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이 소재인데다 애잔한 사연에 대한 줌 인과 아웃을 적절히 해낸 세바스찬 리프쉬츠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 덕분이다.


샤샤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하지 않고를 떠나 영화를 보노라면 두 가지는 확실하게 느껴진다. 세상 그 누구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을 때, 나는 맞서 싸울 힘이 없거나 자신이 없을 때 나를 위해 싸워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고 행복인가. 샤샤에게는 엄마를 위시해 아빠, 언니, 오빠, 남동생이 있다. 새로 손잡아주는 의사 선생님, 친구, 이웃…조금씩 마음을 여는 이들이 늘고 있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에 부딪힌다 한들, 어린 샤샤 앞에 놓인 가시밭길만 할까. 샤샤는 ‘당연히’(당연히 남자, 당연히 여자)가 폭력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샤샤보다 나이도 많다. 샤샤도 포기하지 않고 헤쳐 나가는데 우리도 힘을 내야 한다. 연약해 보이지만 부서지지 않는, 사랑스러운 샤샤가 살아갈 세상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는 우리이기를.

데일리안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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