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냄새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냄새는 호흡과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장편소설 《향수》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에게 냄새는 피할 수 없는 존재다. 살기 위해 숨을 쉬려면 냄새를 맡아야 한다. 눈이야 감으면 그만이지만 숨을 참고 살 수는 없다.
그래픽=이정희 기자
그래픽=이정희 기자
우리는 눈으로 많은 정보를 얻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코로 받아들이는 정보가 더 많다. 눈으로 구분할 수 있는 색깔은 500만 개에 불과하지만 코로 구분할 수 있는 냄새는 1조 개에 달한다. 낯선 장소, 새로운 사람에 대한 첫인상이 냄새로 결정되기도 한다. 무의식의 영역에선 시각보다 후각이 한 수 위다. 그래서 인간에게 향수는 중요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향수의 시작은 약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제사를 지낼 때 향기가 나는 나뭇가지를 태우고, 잎으로 즙을 내 몸에 바른 게 향수의 시초다. 향수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향수(perfume)의 어원인 라틴어 ‘per fumum’은 ‘연기를 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각적 요소에 지친 현대사회에서 후각을 자극하는 향수의 존재감은 더 커지고 있다. 손바닥만 한 크기 한 병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니치 향수’ 시장은 매년 급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나만의 향수’를 찾기 위해 공방을 찾아 직접 향수를 만드는 이도 늘어나는 추세다. ‘후각의 동물’인 인간의 본성이 발현돼 나타난 현상이다.

최근에는 산업계에서도 향기를 마케팅 등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차별성을 강화하기 위해 제네시스향을 개발했다. 제네시스 전용 매장에서만 맡을 수 있는 이 향기는 제네시스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향기 맛집’이라고 불리는 교보문고는 서점에서 나는 향을 디퓨저로 만들어 출시하기도 했다.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타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최고의 액세서리는 향수”라는 말을 남겼다. 최고의 액세서리를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이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보자. 문밖으로 나서기 전 뿌린 0.1mL의 향수가 오늘 당신의 인생을 바꿔놓을지 모르는 일이다.

박종관/정지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