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되려는 NGO

채효정<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얼마 전 ‘기업처럼 일하는 NGO’라는 칼럼을 봤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가 쓴 그 글은 시민단체가 기업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글이 아니었다. 반대로 ‘기업은 NGO처럼, NGO는 기업처럼!’이라고 외치며 NGO의 기업화를 장려하는 글이었다. 덕분에 나는 정부와 기업과 시민단체가 ‘파트너 관계’로 재탄생하게 된 기원을 생각해냈다. 2000년대 초반 세계은행은 ‘굿 거버넌스’를 세계적으로 확산시켰다. 실제 내용은 가난한 나라에 돈을 빌려주면서 원조를 대가로 시장개방과 공공 부문 민영화 같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것이었지만, 겉으로는 부패한 권력과 낙후된 시장을 정비하여 투자금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관리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빈국의 정부와 서구의 자본, 그리고 공여국과 수혜국의 NGO 간 국제 개발원조 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국가 내부에서도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공조 모델이 생겨났다.

채효정<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채효정<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거버넌스란 용어가 처음 도입될 당시 시민사회는 그게 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몰랐으니 뭘 경계해야 할지도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할지도 몰랐다. 때로는 ‘선의를 가지고’ 신자유주의 정부와 기업의 굿 거버넌스에 적극적 협력자가 되기도 했다. ‘엔지오’란 낯선 용어도 점점 편해졌다. 시민운동 자체가 비판적 저항적 성격을 갖던 시기의 ‘시민단체’와 달리, ‘비정부기구’란 용어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었으며 온건했다. 당시 일각에선 이런 경향이 시민운동의 저변을 넓히고 대중화할 것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전문가와 명망가 위주로 이동하는 데 더 일조했다. 또한 ‘비정부기구’라는 말은 기업에 시민권을 부여했다. 비정부기구에는 사회운동단체만이 아니라 기업적 이해를 대변하는 연구소나 기구 등 여러 이해관계 집단들이 포괄되었고, 이들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됐다. ‘민관협치’는 기업이 국가의 정책에 개입하는 효과적인 로비 창구였다.

서구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민영화 이후 공공 부문은 기업들의 사업장으로 변모했다. 새롭게 창출된 ‘공공재 시장’에서 공공서비스를 공급하려는 사업자들은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공익성을 홍보해야만 한다. 그게 에듀테크 기업들이 앞장서서 교육개혁을 말하고, 의료 시장을 확대하려는 기업들이 의료개혁을 말하는 이유다. 그래서 구글은 미래교육을 고민하고, 빌 게이츠 재단은 백신공급을 고민하는 것이다. 지금 금융자본과 대기업들이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을 NGO보다 더 앞장서서 홍보하고 나서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곳에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민영화 이후 공공사업 발주자로 전락한 각국 정부와 지자체는 다국적 기업의 주요 수익원이다. 기업이 NGO처럼 되려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시민운동이 더 기업이 되자고?

지난 30년간 국가의 공공 부문을 먹이로 삼는 자본의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학계와 산업계 및 시민사회의 전문가들은 각종 민관협력위원회와 다자간회의 등을 통해 파트너십을 형성하며 기업운동과 시민운동의 경계를 없애는 데 일조해왔다. 기업과 NGO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공익을 수호하며 수익도 창출하는 기업이 비정부기구의 대표 모델이 된 것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기업과 정부와 시민사회가 공통의 사업적 이해관계 속에서 점점 신자유주의 체제의 삼위일체가 되어가는 동안 노동운동, 민중운동은 주변부로 밀려나고 거버넌스에서 축출됐다. 최근의 ‘그린뉴딜’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굿 거버넌스처럼 겉으로는 좋은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전문용어로 가득 찬 수백만장의 복잡한 문서 속에 수많은 국제정치학의 숨은 의도와 맥락, 그리고 자본의 거대한 비밀을 감추고 들어온다. 하지만 그 비밀을 폭로해줄 전문가들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과 사회운동에선 점점 조력자를 찾기가 힘들어졌다.

NGO가 기업이 되고 싶으면 그냥 기업을 하면 된다. 왜 굳이 헷갈리게 ‘기업 같은 시민단체’를 하려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주류 운동이 ‘우리도 기업처럼’ 실력을 갖추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능력주의’에 포섭된 결과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업가로 돈도 벌고, 운동가로 명예도 얻고, 둘 다 갖고 싶기 때문이다. ‘착한 기업가’와 ‘능력 있는 운동가’는 그렇게 하나가 된다. 그런 경력을 쌓아 기업이나 정부의 요직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시민운동의 경로처럼 되었다. 지금까지 그 경로를 착실히 만들어 온 이들, 그런 운동을 후배들에게까지 전수하고 시민사회를 정부와 기업의 중간관리 인력풀로 만들어버린 이들에게, 지금처럼 계속 운동의 대표성을 부여해도 되는 것일까? 시민운동의 이유와 목표와 원칙을 다시 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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