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영 / 갤러리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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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기 참 힘들다. 여자의 삶은 더 그렇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넘을 산이 태산 아흔 아홉개. 그래도 기를 쓴다. 자기 앞의 산을 오르고 힘을 기른다. 그 힘이란 것이 미비하고 보잘 것 없어 작은 돌멩이에도 걸려 넘어지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계속 간다. 산을 넘어 간다. 나는 이제 한 오십개쯤 넘었을까. 가족을 설득하는데 10년도 더 걸렸다. 누구 마누라, 누구 엄마 말고 내 이름으로 살겠다는 게 그리 어려울 일인가. 유독 여성에게 씌워지는 가시 면류관은 페미니스트가 아니여도 그 불합리를 밤새 떠들 수 있다. 여자에게 꽃길은 애당초 없는지 몰라. 끝없는 삽질로 한 송이 한 송이 심어가는 것 아니냐며. 그러다보면 어느새 꽃밭 한가운데 서있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나가니까. 다시 우뚝 산이 서 있지.

그림이 나를 불러세웠다. 단호하고 다정하게. 간절하고 아름답게. 분명히 들었다.

"here i am"

작은 새 한마리 포로로 날기 직전이다. 어쩌면 날아가지 않을 것도 같다. 아니면 날 수 없거나. 작고 하얀 새는 날개를 접은 채 나즈막하고 또렷하게 말을 건넨다.

"just look at me"

이 그림들을 그린 김현영 작가는 아름답다. 아름다운 여자로 산다는 건 좋은 점이 훨씬 많지만, 아름다움이 더러 중대한 진실을 가리기도 한다. 선입견에 사로 잡힌 나도 진실을 건너 뛸 뻔 했다. 그런데 그림이 붙잡았다. 나 여기 있다고. 진짜 나를 보라고. 예쁜 그림들일거라고만 생각했다. 얼핏 보기에 파스텔톤의 색감이며 우아한 느낌이 그러했고. 사랑스럽다고만 여겼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림이 아니라 메시지다. 날고 싶은 간절함이다. 다시 뛰고 싶은 소망이고. 호기롭게 날 불러 세운 그림들이 할 말이 있는 것이다. 나 여기 있다고. 존재 자체로 충분하지 아니하냐고. 우리 다시 시작하지 않겠느냐고.

"why not?"

할 수 있다고. 우리는 끝없이 사랑하며 살아 갈 수 있다고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강력한 방법으로 전해주는 것이다. 그림은 각각의 색을 여러겹 쌓아 올려 수행처럼 거친 사포질을 계속해 나갔다. 나만의 색을 찾을 때까지. 진짜 내가 드러날 때까지. 그 위에 태산을 넘는 마음 하나 일일이 아로새겨 두었다. 보는 이를 붙잡는 절실한 마음. here i am, just look at me, i always love you.

어여쁜 누군가 어떤 시절을 지나온건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지금의 환한 웃음으로 짐작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이름 석 자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을거다. 악착같이 자신을 붙잡고 붓을 놓지 않았을거고. 김현영 작가의 그림에 마음이 포개진다. 쉽지 않았던 우리 여자들의 삶이 겹쳐진다. 새로운 일들 앞에 망설이는 내 마음에 작고 하얀 새가 날아 들었다. 하나, 둘, 셋. 다시! why not! 못할 게 없다. 창공의 푸른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김현영 / 갤러리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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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 우버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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