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겸의 일본in]신짱부터 베르세르크까지..완결보다 먼저 떠난 작가들

32년 연재한 <베르세르크> 미우라 겐타로 타계
생전 압도적인 작화·세밀한 화풍 탓 장기 연재
"머릿속에 종소리 들릴 때 비로소 완성"
건강 혹사하는 작업습관에 다시금 주목
  • 등록 2021-05-23 오후 2:00:00

    수정 2021-05-23 오후 2:00:00

30년 넘게 장기 연재 중이던 일본 만화 <베르세르크>의 작가 미우라 겐타로가 사망했다(사진=AFP)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그의 스케치북을 봤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소름이 끼쳤다. 이미 거기에 <베르세르크>가 있었다.” 일본의 유명 권투 만화 <더 파이팅>의 작가, 모리카와 조지는 그가 열아홉이던 1985년, 예술대학에 재학 중이던 한 살 어린 미우라 겐타로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한기가 들 정도의 재능 덩어리였다. 서로 이 나이까지 작가로 있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 전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린 지난 20일, 32년간 중세 유럽을 떠올리게 하는 배경에서 벌어지는 다크 판타지물 <베르세르크>를 연재해온 미우라 겐타로의 비보가 전해졌다. 향년 54세.

<베르세르크> 일부. 세밀한 화풍이 돋보인다(사진=영 애니멀 홈페이지)
작가는 생전 인터뷰에서 어시스턴트를 쓰지 않고 직접 그리는 이유에 대해 “종소리가 울릴 때 그림이 완성됐다고 느낀다”고 설명했다(사진=영 애니멀 홈페이지)
압도적인 작화와 대충을 용납하지 않는 장인정신으로 유명한 그였다. 생전 인터뷰에선 어시스턴트에게 작업을 맡기지 않고 직접 그리는 이유에 대해 “공기까지 느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머릿속에 종소리가 울릴 때 비로소 완성했다고 느낀다”라 답하기도.

완벽에 완벽을 기하는 작가 성향상 연재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먼저 죽을까, 미우라가 먼저 펜을 놓을까” 농담하던 일본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농담이 농담이 아니게 돼서 그렇다.

많은 이들이 30년 넘게 연재 중인 <베르세르크>가 언제 완결이 날 지 궁금해했다. 미우라의 팬들은 그의 나이와 평균수명을 비교해 완결 시기를 예측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팬들은 최소 16년 안에는 결말이 나지 않을까 기대했다. 계산은 이렇다. 2019년 기준 일본인 남성 평균 수명은 81.41세로 당시 52세였던 미우라는 30년가량 더 살 수 있다. 집필에만 전념하는 기간을 20년으로 잡고,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악화하는 속도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16년은 더 펜을 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다.

미우라 겐타로가 54세로 돌연 사망했다(사진=하쿠센샤)
급성 대동맥 박리로 인한 그의 사망에 몸을 혹사시키는 어마어마한 작업량이 다시금 주목되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만화 잡지 ‘영 애니멀’에 올린 베르세르크 연재 후기만 봐도 잘 드러난다. 내용은 이렇다.

“1993년. 40도 넘는 고열이 발생했는데도 1년에 2일밖에 쉬지 않는다.”

“2001년. 만화가 경력 13년만에 처음으로 1주일 정도 쉬었다.”

“2002년. 2년동안 걸려온 전화 0건. 휴대전화 해지하자. 막장 상태의 인간관계는 날 책상에 앉게 하는 원동력.”

후기에선 건강을 위협하는 식습관도 드러난다. “2004년.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하루 삼시세끼가 칼로리메이트.” 칼로리메이트는 열량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스킷 모양 식량이다. 재난 대비 보존 식량으로 사용되는 칼로리메이트를 주식으로 삼은 것.

그의 사망을 계기로 팬들은 다른 한 명의 만화가를 떠올렸다. 그렇다. 요통으로 인한 장기 휴재로 악명이 높은 <헌터x헌터>의 토가시 요시히로다. 미우라 부고를 접한 일본인들은 “이 뉴스에 가장 먼저 토가시의 건강을 염려하고, 헌터가 미완의 대작이 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인 건 나만이 아니지?”라는 반응이다.

지난 2009년 <크레용 신짱> 작가 우스이 요시토를 추모하기 위해 도쿄에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사진=AFP)
이들이 토가시를 걱정하는 건 작가의 죽음으로 영원히 미완결로 남은 작품, 베르세르크뿐만이 아니라서다. <도라에몽>의 후지코 후지오는 1996년 간부전으로 인해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지난 2009년에는 등산을 간다며 집을 나선 <크레용 신짱>의 우스이 요시토가 실족사로 사망했다. 폐경색으로 35세 나이에 요절한 요시다 스나오의 <트리니티 블러드>도 결말을 알 수 없게 되며 아쉬움을 남겼다.

인생 대부분을 자신의 만화에 바친 작가의 죽음에 팬들은 탄식하고 있다. 일본의 한 58세 독자는 “스무 살도 되기 전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어느 작품, 어느 작가의 부고보다 충격이다. 작가는 이렇게 대체할 수 없는 고귀한 직업이라고 통감한다”는 반응도 있다. 자신의 역작을 매조지지 못하고 떠나는 데 대한 아쉬움, 그 누구보다도 작가 자신이 가장 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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