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문화

‘비대면 컬쳐 라이프’ 체험기-안방 1열에서 만나는 ‘온라인 플랫폼’

이승연 기자
입력 : 
2021-05-22 23:55:17
수정 : 
2021-05-22 23:56:14

글자크기 설정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온라인 플랫폼’이 주목받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은 창작자, 제작자와 함께 하고, 관객 역시 안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수단으로써 자리잡고 있다. 에디터 역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최근 화제작 몇 가지를 즐겨보았다.



“연극은 그냥 아날로그인 채로, 디지털이 될 수는 없다.” 연극인 박정자 배우가 연극 ‘해롤드와 모드’ 무대에 오르며, 온라인 공연 문화에 대해 밝힌 소신이다. 누구나 이 말에 공감을 표할 것이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지만, 극을 포함한 문화 예술은 ‘사람’이 만드는 대표적인 아날로그 콘텐츠다. 때문에 온라인이 일종의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오감으로 직접 마주하는 무대 예술의 완전한 대체재는 될 수 없다. 하지만 팬데믹의 끝을 예상하기 힘든 지금 시점에서 온라인 플랫폼은 관객뿐만 아니라 창작자, 제작자에게도 문화 생활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에는 뚜렷한 장점도 있다. 팬데믹 시대에 안전 방공호인 집의 안방 1열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TPO나 관람 예의도 이 순간만은 느슨해진 채, 편안한 잠옷 차림으로 응원봉을 흔들어도 눈치 볼 것 없다는 얘기다. 문화 불모지에 있는 이들에게도 온라인 플랫폼은 일종의 브릿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이 좋아하는 온라인 콘텐츠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후에 팬데믹이 사라지는 시점에 박물관과 미술관, 영화관, 공연장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1 큐레이터와 함께 하는 미술 전시 산책

페루의 마추픽추의 8가지 미스터리로 잉카 제국의 기원을 상상해보자. 곧바로 카미유 피사로의 ‘겨울 아침 몽마르뜨의 거리’ 속 1800년대 파리 도시로 떠났다가, 또 국립경주박물관과 감은사지까지 여행해본다. ‘구글 아트 앤 컬쳐’는 10만 여 개의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80개국 2000곳 이상의 세계 유명 박물관과 문화 기관에서 보유 중인 문화 유산을 만나볼 수 있는 온라인 전시 콘텐츠다. 이곳에서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을 찾아 보았다. 옛 기차역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타원형의 천장과 대형 시계의 웅장함에 시선을 빼앗기다가도, 눈앞의 19~20세기 세계적인 작품을 놓칠 새라 바삐 마우스를 움직인다. ‘구글 아트 앤 컬쳐’ 외에도 국내외 유명 미술관, 전시관에서는 현재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 온라인 전시 프로그램들을 공개했다. ‘집으로 온(ON) 미술관’에서는 VR, 큐레이터 전시 투어, 어린이 미술관, 관장이 들려주는 미술 이야기, MMCA 라이브, MMCA 작가와의 대화 등 다양한 온라인 프로그램들을 마련했다. 그중 국립현대미술관 2021년 새해 첫 기획전이자, 한국 근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문학과 미술의 관계를 조명하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전(2021년 2월4일~5월30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은 ‘시대의 전위’를 함께 꿈꾸었던 일제 강점기와 해방시기 문예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술관은 방역 수칙을 준수, 관람 전 사전 예약이 필요하지만, 일단 국립현대미술관 온라인 콘텐츠 큐레이터 전시투어(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공식 유튜브)를 통해 이곳을 만나보기로 했다.

사진설명
1920~40년대 근대기 시집과 소설을 볼 수 있는 공간(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사진설명
1930년대 전위적인 그룹에 속한 구본웅, 황술조, 김진섭의 작품이 있는 공간(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 지상의 미술관(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통상적으로 일제 강점기는 ‘암흑’의 시대로 인식되어 왔지만, 이 시대 수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자라난 시기이기도 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수많은 시인(정지용, 이상, 김기림 등)과 소설가(이태준, 박태원 등), 그리고 화가(구본웅, 이중섭, 김환기 등)들이 모두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 활동을 시작하며 서로 영감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다방과 술집에 모여 앉아 부조리한 현실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대 인식을 공유하며, 문학과 예술의 가치를 믿고 이를 함께 추구했다. 이번 전시는 예술가들 사이의 각별한 ‘연대감’을 만나보는 공간인 셈이다. 전시는 총 4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구성된다. 제1전시실 ‘전위와 융합’은 1930년대 경성, 시인 이상이 운영했던 다방 ‘제비’를 배경으로 그곳을 둘러싼 예술가들의 네트워크, 그리고 장르를 넘나드는 그들의 실험적 시도를 살펴볼 수 있다. 이상, 박태원, 김기림, 구본웅 등 시대의 예술가들은 문학과 미술, 심지어 음악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온라인 투어를 따라가 보았다.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초상화 ‘친구의 초상’(1935) 앞에 멈춰 서 본다. 이상은 폐결핵을 앓으면서 총독부 기술직 자리를 그만둔 후 구본웅이 운영하는 출판사에 취직해, 그의 지원을 받으며 지냈다고 한다. 그림 속 이상의 표정이 스크린을 통해 천천히 눈에 담긴다. 또 이상의 소설 『날개』가 발표된 잡지 『조광』 속 이상이 직접 그린 삽화(약봉지)를 보며, 화가를 꿈꾸었던 그의 흔적을 쫓아가 본다. 제2전시실 ‘지상(紙上)의 미술관’은 ‘종이 위’의 미술관으로, 1920~40년대 ‘인쇄 미술’의 성과를 이례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공간의 1/3을 차지하는 파트 역시 신문 소설의 삽화 모음이다. 큐레이터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신문 소설’이 인기를 얻으며, 삽화가들 역시 조명을 받게 된다. 신문사와 잡지사의 편집실 그리고 시인과 화가가 만나 만들어낸 아름다운 ‘화문(畵文)’의 세계를, 종이 위 미술관에서 조심스럽게 탐닉해본다. 이 밖에도 근대기 문학인과 미술인들의 관계도, 문학적 재능을 지닌 화가들이 남긴 글과 그림을 약 1시간 30분의 전시 투어 영상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온라인 큐레이터 전시투어의 가장 큰 매력은, 시간과 공간적 제약 없이도 희대의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을 통해 시간 여행을 떠나볼 수 있는 기회를 잠시나마 얻는다는 것이 아닐까.

▶#2 네이버TV 라이브에서 함께 만나보는 뮤지컬

에디터의 경우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 1년간 극장, 공연장 등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온라인 공연 중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지난 3일에는 네이버TV에서 진행된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관람으로 월요병 타파 계획을 세웠다. 대부분의 대극장이나, 중소극장이 월요일 공연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퇴근 후 집에서 잠시나마 누리는 이 문화 생활이 한 주의 활력 요소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서 말이다.

사진설명
‘올드 위키드 송’ 네이버 라이브 후원 리워드(사진 네이버TV 갈무리)
사진설명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예고(네이버 스팟 영상 갈무리)
네이버TV의 ‘라이브 감상 후원 리워드’는, 콘텐츠 창작자들이 설정한 최소 단위의 금액 이상을 후원한 사용자들에게 해당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공연 예약 링크를 통해 ‘후원하기’를 선택한 뒤, 후원 페이지를 통해 결제를 마치면 리워드(공연 관람권)가 도착한다. 중계 일정에 따라 연극, 오페라, 뮤지컬, 콘서트 등 유·무료 문화 콘텐츠를 다양하게 제공 중이라, 우리집이 일순간에 콘서트장, 대극장 ‘안방 1열’이 되기도 한다. 일례로, 지난해 네이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네이버TV에서 제공한 뮤지컬의 경우 전년 동기대비 누적 재생수가 750만여 건으로, 11배 이상 크게 증가했다(2019년 1월~8월과 2020년 1월~8월 비교). 특히 뮤지컬 ‘마리퀴리’의 경우 58만 건, 뮤지컬 ‘팬레터’와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90만 건의 재생 수를 기록했다.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은 극작가 존 마란스의 대표작이다. 198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배경으로, 슬럼프에 빠진 천재 피아니스트 스티븐 호프만과 괴짜 교수 요제프 마쉬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공연은 지난 3월 성황리에 막을 내리고, 온라인 중계로 총 2회(5월3일, 5월10일) 진행했다. 라이브 당일, 중계 관람을 위해 후원 사이트를 통해 사전 결제를 마치고 나니 스트리밍 관람권 리워드가 뜬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해 부랴부랴 관람 준비를 해본다. 방의 불을 끄고 스탠드 조명만 은은하게 켜 놓으니 마치 극장에 온 기분이다. 소용량 와인과 치즈 등도 함께 꺼내놓았다. 흡사 디너쇼(?) 같지만, 이 역시 온라인 중계에서만 가능한 호사일 것이다. 8시 정각, 공연의 막이 열렸다. 에디터가 본 날의 캐스트는 마쉬칸 역에 배우 남명렬, 스티븐 역에 정휘가 출연했다. 강연실을 배경으로 한 무대가 화면을 가득 메운다. 피아노 건반 앞에 앉은 한 남자. 그가 선보이는 잔잔한 음률과 함께 강연실의 문이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극이 시작된다. 극은 로베르트 슈만의 대표적인 연가곡 ‘시인의 사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슈만의 음악과 하이네의 시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완성한다. 이 밖에도 베토벤, 바흐, 차이코프스키 등 위대한 음악가의 클래식 선율에 귀가 즐거워진다. 온라인 중계에선 현장감이 덜할까 걱정했지만, 이 역시 기우였을 뿐. 이번 공연의 경우 8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다양한 각도에서 무대를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 후반부로 가면서 두 인물의 고조된 감정이 서사를 이끈다. 마쉬칸 교수의 과거가 밝혀지고, 스티븐과 마쉬칸이 연주를 통해 교감하며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는 장면까지, 그 감동이 끊김 없이 이어진다. 이번 ‘올드 위키드 송’ 온라인 공연은 약 150분간 공연 실황과, 코멘터리 영상까지 함께 진행됐다. 코멘터리 영상에선 당일 캐스트 배우들이 참여해, 장면별 인물의 감정선에 대한 이야기나 본 공연 때 있었던 비하인드 에피소드까지 듣다 보면 어느덧 150분이 훌쩍 지나있다. 극의 장면을 곱씹어보며 일주일을 버텨낼 에너지를 톡톡히 얻어본다. 대면 공연의 경우 배우와 관객들이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간다면, 온라인 중계에서는 동반 접속자들과 함께 채팅을 이용하면서 스토리를 쫓아가보는 것 역시 현장감을 살리는 요소가 된다. 또는 에디터처럼 혼공으로 즐겨도 좋지만, 가족과 지인과 함께 스트리밍을 TV로 연결(미러링)해 관람하는 것 역시 공연 말미 여운을 즐기는 방법이 될 수 있다.



▶#3 OTT로 들어온 국제영화제

22회를 맞이한 전주국제영화제가 ‘영화는 계속된다’는 슬로건을 공개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상영’과 ‘장기상영회’라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한 데 이어, 올해는 온라인 비대면 문화에 발맞춰 영화제의 모습도 변화했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경쟁 부문의 심사위원들을 모두 한국에 거주하는 인사들로 구성했고, 프로그램 이벤트도 한국 영화인에 국한하여 진행했지만, 22회 영화제는 온라인 비대면 문화에 발맞춰 해외 유명 영화인들의 온라인 심사와 온라인 프로그램 이벤트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무엇보다 OTT(Over The Top) 채널 ‘웨이브’(wavve)를 온라인 상영 플랫폼으로 활용했다는 점은 눈에 띄는 변화다.

사진설명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발표 기자회견(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아버지의 길’(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사진설명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웨이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사진 웨이브 홈페이지 갈무리)
에디터 역시 영화제 기간 동안 OTT를 통해 영화제 경쟁작들을 관람해보기로 했다. 이날 고른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아버지의 길’(121’)이다. 영화 시작 전, 연출을 맡은 스르단 고루보비치 감독이 등장해 간략하게 영화에 대해 소개한다. ‘아버지의 길’은 세르비아의 작은 마을에 사는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에 허덕이는 일용직 노동자인 ‘니콜라’(고란 보그단). 그의 임금은 2년째 체불 중이고, 두 달 전 집에 전기마저 끊기자 지방 정부에서는 부부가 아이들을 기를 여건이 안 된다고 판단해 아이들을 시설기관 후견인에게 맡긴다. 니콜라는 아이들을 돌려 달라고 호소하지만, 사회 복지 센터는 그의 요구를 무시한다. 다시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아버지 니콜라가 길을 나선다. 여비도 없이 물통 하나만 챙겨 수도로 향하면서 위험천만한 상황은 거듭 벌어진다. 고속도로를 걷고, 배고픔에 쓰러지지만, 과묵히 걸음을 옮기는 그의 길에는 가장의 책임감이 강렬하게 담겨 있다. 니콜라와 만나는 사람들은 그의 의지에 함께 움직여 변화를 가져오지만, 결국 세상은 한 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마지막 비어있는 가족들의 식탁과 의자 장면이 묘한 적막 속에 흘러간다. 작은 스크린을 꽉 채우는 배우의 묵직한 연기 때문일까. 영화의 마무리엔 눈에 띄는 사이다 결말은 없지만, 그 이상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전주국제영화제에 따르면, 개막작 ‘아버지의 길’을 상영한 4월29일을 비롯해 5월1~2일은 극장상영은 전체 매진을 기록했다. OTT 플랫폼 온라인 상영 역시 전년 대비 30% 상승한 이용 기록(5월2일 자정 기준)을 나타냈다. 제한된 극장 좌석, 상영작의 73%가 온라인 상영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도 관객들은 영화제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사람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일부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성 영화, 독립영화 등 세상을 담은 영화와 마주할 기회를 가지며 현장의 아쉬움을 달랜다. OTT 플랫폼 같이 온라인과 공생하는 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고, 코로나로 인해 그 시기가 빠르게 앞당겨졌다. 변화에 따라 국제영화제의 새로운 시도와 경험이 영화계는 물론, 문화 예술계 발전의 또 다른 초석이 되지 않을까. ‘영화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이번 슬로건처럼 말이다.

[글 이승연 기자 사진 및 일러스트 포토파크, 이승연, 네이버, 국립현대미술관, 전주국제영화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80호 (21.05.25)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