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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레시피] 충신의 대상은 조직과 사람, 충견의 대상은 사람뿐이다

입력 : 
2021-05-21 16: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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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에게 한번쯤은 ‘기회’라는 것이 온다. 물론 그 기회는 선택을 전제로 한다. 이 기회의 순간에 대부분의 직장인은 생각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직장 생활에서 뒤떨어지거나 평범한 직장인이 되는 게 아닐까 하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민도 한다. 이것이 진짜 기회인지, 혹은 기회의 가면을 쓴 위기와 파국의 길이 아닐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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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의 대상은 개인이 아닌 회사다

S기업의 박 부장이 있다. 그는 과장까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박 과장은 기획, 영업보다는 관리와 회계에서 그나마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 능력도 보통 수준이었고, 성격도 조용해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박 과장 역시 야망에 불타는 유형도 아니었다. 그가 결근해도 같은 부서에서조차 그의 부재를 모를 정도의 존재였다. 그런 박 과장에게 ‘기회’가 왔다. 그는 어느 날 전략기획실 오 부장의 전화를 받았다. ‘점심이나 하자’는. 박 과장과 오 부장은 얼굴만 아는 사이로 평소 업무적이나 개인적으로 관계가 없었다. 박 과장은 궁금증을 안고 오 부장을 만났다. 그날, 점심만 먹었다. 물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리 기억될 만한 것이 없었다. 물론 박 과장은 오 부장의 존재감을 잘 알고 있었다. 오 부장은 회사 실세 최 전무의 심복이며 업무 능력도 탁월해 임원 승진은 맡아 놓은 기대주였다. 박 과장은 생각했다. ‘오 부장이 나를 왜 만나려 했을까’를. 그렇게 몇 번의 만남은 저녁 술자리로 이어졌고 박 과장은 오 부장과 나름 편한 사이가 되었다.

사실 오 부장이 박 과장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최 전무의 야망을 위해서였다. 회사의 2세 사장은 곧 회장으로 승진 예정이었다. 아버지인 오너 회장이 은퇴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바로 대표 이사 자리가 공석이다. 이 자리를 두고 회사에서는 최 전무와 양 전무가 경쟁하고 있었다. 최 전무는 기획, 영업을 총괄하고 양 전무는 관리, 회계 파트를 맡고 있었다. 오 부장은 바로 양 전무의 관할인 관리, 회계 파트에서 자신의, 최 전무의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그 역할을 해 줄 사람을 살펴보던 오 부장은 박 과장을 점찍었다. 특별한 존재감도 없고, 누구의 라인은 더더욱 아닌 한마디로 ‘말 잘 듣게 생긴 직원’이기 때문이다. 오 부장은 이런 유형의 직장인은 상사의 작은 호의에도 감동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오 부장은 박 과장에게 본격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박 과장이 맡고 있는 관리, 회계 파트의 정보와 수치를 바로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토대로 오 부장은 최 전무가 양 전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약점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처음에 이런 제안을 받았을 때 박 과장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부서만 다를 뿐이지 어차피 회사 일이니 오 부장이나 최 전무가 알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오 부장의 지시를 몇 번 해내자 이내 오 부장은 최 전무와의 자리를 마련했다. 박 과장은 최 전무의 격려에 고무되었다. 최 전무는 박 과장에게 넌지시 승진을 말하며 자신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했다. 박 과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즉, 그 자리에서 최 전무에게 ‘충성 맹세’를 했다. 박 과장은 어차피 직장 생활 한번쯤은 모험을 할 필요가 있고, 지금이 바로 그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오 부장의 요구는 치밀했다. 양 전무의 비리를 잡아내라는 것부터, 영업부서에서 나가는 리베이트, 양 전무와 그 라인의 판공비는 물론이고 하청 회사 중에서 양 전무와 관계를 맺고 있는 회사를 가려내는 일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양 전무의 비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뭉칫돈이 옮겨지는 것을 발견했다. 박 과장은 처음에는 이를 ‘오너의 비자금’으로 생각했다. 양 전무가 따로 관리하는 계좌로 회사의 비자금 용도도 있었지만 그것에서 조금씩 일부분이 정기적으로 양 전무에게 옮겨지는 정황을 포착했다.

이렇게 한 건씩 양 전무의 약점을 잡아 보고하면 최 전무는 박 과장에게 용돈을 챙겨 주었다. 처음에는 십만 단위로 시작하던 용돈은 이내 백만 단위가 되고 한 번에 천만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연말 인사에서 박 과장은 회계관리실 차장으로 승진했다. 박 차장은 최 전무의 힘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최 전무에 대한 굳은 충성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드디어 오너 2세인 사장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후속 인사에서 대표 이사 부사장으로 최 전무가 승진했다. 최 전무는 그동안 양 전무의 회계 부정과 별도의 비자금 조성을 전임 회장과 신임 회장에게 모두 보고해 왔다. 회장 역시 양 전무의 공을 인정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의 부정을 알고 있었지만, 그 액수가 크고 더구나 회사의 하청 기업 대부분을 양 전무가 관리한다는 보고에 양 전무를 배제하기로 결심했다.

박 차장은 얼마 후 부장으로 승진해 회계관리실의 핵심이 되었다. 박 부장은 이제 이사로 승진한 오 이사를 건너뛰고 최 대표에게 직보하는 실세가 되었다. 박 부장은 최 대표을 위해 그야말로 충성을 다했다. 회장의 판공비나 비자금 관리부터, 하청 및 자회사의 내부 자전 거래, 영업 리베이트 등을 도맡아 관리했다. 그러면서 박 부장은 야망이 생겼다. 그는 자신에게도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즉, 조직과 사람을 관리할 필요가 생겼고 이에 별도 자금이 필요해진 것이다. 처음에는 판공비에서 쓰고 오 이사나 최 대표가 주는 하사금으로 충당했지만 박 부장은 이 자금을 스스로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오 이사, 최 대표에게 배운 것이다. 박 부장은 배운 것을 그대로 쓰기 시작했다.

박 부장은 최 대표에게 흘러가는 자금의 일부를 자신의 자금으로 전용했다. 그 액수는 점점 커졌다. 그러면서도 최 대표나 신임 회장이 급하게 필요한 자금은 단 한 시간도 지체 없이 마련했다. 회사 공적 자금, 회장과 대표의 자금 그리고 자신의 자금을 동시에 관리하면서 어느 쪽이든 필요한 부분을 채워 넣은 것이다. 박 부장은 점점 ‘통’이 커졌다. 그러면서 그는 혼동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회사의 모든 자금을 자신이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가끔은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박 부장은 최 대표의 비밀을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어떤 불이익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최 대표와 오 이사는 어느 순간부터 박 부장이 ‘오버 페이스’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박 부장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벌써 오래 전에 박 부장의 부하 직원인 서 과장을 점찍고 서 과장을 예전의 박 부장처럼 키웠던 것이다. 서 과장은 최 대표의 신뢰를 바탕으로 자금관리실에서 이미 2년 동안 박 부장의 부정과 자금 유용을 조사하고 있었다. 박 부장이 리베이트를 받은 것, 하청 기업에 자신의 동창 회사를 끼워 넣고 이익을 챙긴 것 등등 많은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승진 인사가 다가왔다. 자금관리실의 실장으로 뜻밖에 최 대표의 직계면서 박 부장과는 경쟁 관계에 있던 영업관리실 부장이 직무 대행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서 과장은 차장으로 승진해 박 부장의 업무를 상당부분 맡기 시작했다. 박 부장은 상무로 승진한 오 상무의 호출을 받았다. 오 상무의 책상에는 박 부장의 모든 부정 행위가 담긴 파일이 놓여 있었다. 오 상무는 이 서류를 내밀고 박 부장에게 퇴직을 제안했다. 퇴직하면 퇴직금과 위로금을 주겠다는 것. 박 부장은 자신이 갖고 있는 오 상무와 최 대표의 비밀을 이야기했지만 오 상무는 이미 모든 것을 서 차장을 통해 정상화시켰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때서야 박 부장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오 상무, 최 대표만 믿고 회사라는 조직을 등졌다는 것, 또 회사와 대표, 자신의 돈을 착각하고 이를 유용했다는 것, 그리고 가장 큰 실수는 자신과 똑같은 누군가를 최 대표가 뒤에서 키우고 있음을 망각한 것이었다. 박 부장은 사직서를 썼다.

물론 박 부장은 오 상무, 최 대표에게 충성을 다했다. 박 부장은 이것이 당연히 회사에, 오너 회장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박 부장의 행동은 개인에 대한 충성이었을 뿐 조직에 대한 충성은 아니었다. 박 부장은 실세의 후광을 마음껏 활용하면서 딴 주머니를 찼고 이를 통해 사적 이익을 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 부장은 이런 일탈이 최 대표, 오 상무의 행동과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 대표나 오 상무는 박 부장에 비하면 노련한 직장인. 그들의 대상은 박 부장이 아닌 오너였다. 그들의 행위가 정상이든 일탈이든 이는 오너를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다. 그에 비해 박 부장의 행동은 오너가 판단하기에 개인적인 부정이고 일탈이었다. 이는 단 한 번도 오너가 박 부장에게 직접 보고 받거나 그에게 지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박 부장은 회사에 충성을 다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최 대표와 오 상무의 ‘충견’이었을 뿐이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충성스런 직원과 충견은 엄연히 다르다. 충성스런 직원에게 충성의 대상은 회사다.

하지만 충견에게 충성의 대상은 그저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그 사람이 상사고 회사의 실세라 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 조직은 충성스런 직원은 보호하지만 충견은 보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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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과 부패 관리의 이상한 동거 청나라 전성기는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로 이어지는 130여 년이다. 이 시기 청나라는 소수의 만주족으로 다수의 한족을 통치했다. 황제는 모범을 보였고 관료는 청렴했으며 국가는 강해졌고 백성은 편안했다. 특히 건륭제는 1735년부터 1796년까지 약 60년을 재위하면 청나라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건륭제는 인재를 발탁하고 현명한 통치를 했다. 이때 건륭제의 총신(총애를 받는 신하)이 있었다. 그는 바로 ‘화신’이다. 화신은 청렴하고 백성을 위한 황제였던 건륭제 60년 치세에서 역사에 기록될 부정한 관리였다. 건륭제가 죽자 그 뒤를 이은 가경제는 건륭제의 죽음 딱 보름 뒤에 화신을 숙청했다. 화신에게 주목할 점은 두 가지이다. 성군 건륭제 치세 때 어떻게 건륭제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는지, 또 건륭제가 죽고 보름 만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상누각의 권력과 아무런 대비가 없던 화신의 방심이다.

화신은 ‘재주와 영리함-권력자의 총애-권한 남용-뇌물과 유용으로 치부-비참한 최후’라는 부패 관리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역사는 그를 ‘대탐관大貪官’이라 불렀다. 그는 청나라 건륭제의 총신이었다. 청렴하고 백성을 위한 황제의 60년 치세에서 역사에 기록될 부정한 관리가 중용됐다는 것은 흥미롭다. 역사가들은 건륭제와 화신의 사이를 단순히 황제와 총신의 관계만은 아니라고 본다. 먼저 종교적 공감대다. 두 사람은 티베트 불교 신자로 특히 화신은 티베트어에 능통해 건륭제에게 종교를 기회로 접근이 가능했다. 또 하나는 동성애설이다. 현명하고 영리한 군주였던 건륭제가 화신에게만 ‘무조건적’이었던 사실을 해석할 수 없는 데서 이 주장도 신빙성 있어 보였다. 1793년경, 영국 사신 매카트니가 청나라를 찾았다. 그는 양광총독 장린 등과 친교를 맺고 편한 사이가 되었을 때 청나라 관리들에게서 궁중 비사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건륭제의 비극적 러브 스토리. 건륭제는 평생 세 번 진실한 사랑을 했다고 한다. 첫 번째가 아버지 옹정제의 후궁. 그는 후궁을 사랑했는데 발각되었고 그 후궁이 목을 매 자결했다. 이때 건륭제가 후궁의 시신을 안고 “후생에 다시 만난다면 진실로 사랑하겠다”고 맹세했는데 그 환생이 화신이란 설이 청나라에 돌았다. 60세가 넘은 건륭제가 젊은 화신을 보고 사랑했던 여인의 환생으로 여겼다는 이야기다. 정설은 아니지만 건륭제의 무조건적인 화신에 대한 총애를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가경제는 건륭제의 죽음 딱 보름 뒤에 화신을 숙청했다. 20개 죄목으로 화신을 탄핵하고 그에게 능지처참형을 내렸다. 하지만 선대의 총신이었고, 황실과 사돈이라는 점을 감안해 자결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었다. 화신은 하얀 비단에 목을 매고 죽었다. 그의 나이 50세였다. 가경제는 그의 재산을 몰수했는데 금액이 무려 9억 냥. 이는 당시 청나라의 세수 약 10년 치였다고 한다. 가경제는 이를 황제의 개인 금고에 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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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황제, 개인 재산을 혼용한 탐관 화신의 이름은 ‘선보’로 1750년경에 태어났다. 그는 만주족 출신이다. 집안은 관리직을 역임했고 아버지는 2품 벼슬까지 지냈다. 더구나 그는 청나라 정예 팔기군 중 정홍기 출신이다. 그는 어려서 친모가 사망하고 계모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집안 형편도 어려워져 만주족 명문가 직례총독 풍염령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했다. 화신은 눈치도 빠르고 똑똑했다. 외모 역시 수려했다. 특히 언어에 탁월한 재주를 보여 만주어, 한어, 몽골어, 티베트어까지 능숙하게 구사했다. 화신을 눈여겨보던 풍염령은 손녀 풍제문의 짝으로 화신을 선택했다. 화신으로서는 만주족 명문이 처가가 되면서 출세의 길이 열린 것이다.

화신은 건륭제의 친위대에 들어갔다. 1772년 삼등시위가 되고 이어 1755년 건청문시위가 되었다. 화신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건륭제가 산책을 나가는데 해를 가리는 양산이 없어졌다. 시종들은 양산을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기다리던 건륭제의 안색이 변했다. 화신이 나섰다. “폐하, 작은 실수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황제의 의장을 책임진 시종에게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건륭제는 화신을 쳐다보았다. 수려하게 생긴 병사였다. 건륭제는 화신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고 화신은 똑소리 나게 대답을 했다. 건륭제는 화신을 어전시위로 발탁했다. 어전시위는 건륭제를 24시간 옆에서 모시는 경호원이면서, 수행 비서였다. 화신의 나이 26세였다. 화신에 대한 건륭제의 총애는 파격적이었다. 화신은 이듬해 호부시랑이 되었고 이내 이부우시랑을 겸직하며 팔기보군영 총관 직책도 맡았다. 파격 승진이었다. 건륭제는 화신의 영리함, 특히 수에 대한 개념을 높이 평가했다. 그를 재정 담당 인재로 키울 생각이었다. 1778년 화신은 베이징의 세수 책임자가 되었고 32세에 호부상서, 즉 재무장관으로 건륭제 치세의 최연소 대신이 되었다.

화신은 건륭제의 총애를 배경으로 뇌물을 받기 시작했다. 시작은 작았지만 점차 대담해지며 규모가 커지고 그 범위도 확대되었다. 감찰부에서 화신의 부정을 알았지만 누구도 그를 탄핵하거나 건륭제에게 보고조차 못했다. 건륭제의 신임이 워낙 두터웠지만 화신 자체가 사람을 모으는 재주가 있어 파당을 형성했기에 조정에는 화신의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런 화신에게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감숙성 회족이 반란을 일으킨 것. 건륭제는 아계와 화신에게 진압을 맡겼다. 하지만 화신은 군사 지휘 능력이 없었다. 그는 전투에서 패했다. 결국 아계가 회족을 진압했고 이를 안 건륭제는 화신을 멀리했다. 화신은 재기를 위해 희생양을 찾았다. 화신은 왕단망과 감숙성 관리들을 감사했다. 황실에서 내려 준 구호 자금을 백성들에게 쓰지 않고 왕단망이 착복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7년간 왕단망은 약 200만 냥을, 감숙성의 관리들은 모두 1500만 냥을 빼돌린 사실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건륭제는 관리들을 사형에 처하고 재물은 국고로 환수했다. 화신은 호부상서에 임명되었다. 화신은 자신의 잘못을 더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적발해 황제의 시선을 돌리는 방법으로 덮고 신임을 회복했다.

화신은 건륭제의 오른팔이 되었다. 그는 죄 지은 관리를 돈을 받고 면책했고 국가 사업에 개입했다. 화신은 국고가 비면 개인 재산을 채워 넣었다. 장부상 국고는 비어 있지 않았다. 더구나 재정에 관한 업무 부서는 화신이 임명한 관리들이 장악했다. 화신은 승진을 거듭해 30대 후반에 재상인 군기대신에 임명되었다. 게다가 건륭제는 화신의 아들에게 친히 풍신은덕이란 이름을 하사하고, 자신의 막내딸 고륜화효 공주와 결혼시켰다. 건륭제와 화신은 사돈이 된 것이다.

당시 화신의 부정이 극에 달했지만 국가 재정이 흔들리거나 황실 내탕금이 바닥나지는 않았다. 이는 화신의 관리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 그렇기에 정적이나 감찰 기구에서 화신을 탄핵할 수 없었다. 즉, 화신은 국고든 개인 재산이든 건륭제가 돈을 써야 할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즉, 국고라는 공적 재산과 자신의 사적 재산의 회계가 통합되어 하나로 움직인 것이다.

▶충견은 주인이 사라지면 필요 없어진다

화신의 건륭제에 대한 충성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어전시위 때부터 화신은 건륭제의 마음을 읽는 데 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 충성심을 발휘하는 데 주저가 없었다. 건륭제가 낮잠을 즐기는데 매미 소리가 너무 요란해 건륭제가 잠을 설치자 직접 매미를 잡았다. 또한 사찰을 찾는 건륭제가 가파른 산길을 오를 때면 건륭제의 가마를 어깨에 둘러맸다.

건륭제는 화신에게 정치적 업무를 맡겼지만 화신은 건륭제에게 고백했다. “폐하의 은혜로 중책을 맡았지만 능력이 모자라 폐하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충신도 좋지만 폐하의 충견이 되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충신과 충견. 엄청난 고백이 아닐 수 없다. 건륭제는 현명한 군주였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청나라를 충분히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충신과 능력 있는 대신은 차고 넘치게 많았다. 그는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며 충성을 다하는 충견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한때 화신이 건륭제의 의사와 반대로 일을 처리해 쫓겨난 적이 있다. 이 시기 화신은 전당포를 운영하며 재산을 늘렸다. 건륭제는 화신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의 빈자리가 너무 크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물론 건륭제도 화신의 치부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건륭제는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화신이 옆에 있어 군주의 청렴과 열성이 돋보이고 또한 화신을 매개로 돈으로 신하들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편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화신은 건륭제의 주머니에 돈이 떨어지는 일이 없게 만들었다. 그 점을 건륭제는 높이 산 것이다.

몇 년 후 화신은 40대에 팔기군 정예 정황기 영시위내대신, 또 내각 수상인 수석군기대신에 임명되었다. 이제 최고 관직에 오른 것이다. 그때부터 화신은 더욱 대담해졌다. 건륭제에게 올라가는 상소는 중간에서 검열했고 뇌물 수뢰와 부정의 규모는 점점 커져 갔다. 그리고 화신은 조정을 개인 사당으로 만들 정도로 인사에도 깊이 관여했다.

건륭제는 태자에게 양위했다. 가경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권력은 여전히 태상황 건륭제에게 있었다. 가경제는 현명한 군주가 되고 싶었다. 그는 화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부꾼에 부정을 일삼는 간신배로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 판단했다. 가경제는 화신을 파직했지만 화신은 다시 복직했다. 가경제가 결정하면 화신은 건륭제에게 가경제의 결정 사항을 낱낱이 보고했다. 가경제는 이름뿐인 황제였다. 그는 화신의 털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었다. 이렇게 4년이 흘렀다.

1799년 2월9일, 89세의 건륭제가 죽었다. 가경제는 장례를 책임질 장의도감에 화신을 임명했다. 화신은 건륭제의 죽음 충격과 장례를 진행할 생각에 정치적 계산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경제는 건륭제가 죽는 순간부터 화신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며칠 후, 화신은 장의도감에서 파직되고 체포되었다. 무려 20가지 죄목이었다. 죄목은 ‘가경제가 후계자라고 누설한 죄’, ‘가마나 말을 타고 궁에 온 죄’, ‘건륭제의 명령을 앞세워 국정을 농단한 죄’, ‘부정부패 죄’ 등이었다. 가경제는 화신의 재산을 몰수하고 화신에게 능지처참을 명했다. 하지만 가경제의 동생이자 화신의 며느리인 공주의 부탁으로 가경제는 화신에게 자결을 명했다. 1799년 2월22일, 건륭제가 죽은 지 채 보름도 되지 않아 화신은 비단에 목을 매고 자결했다.

화신의 재산은 어마어마했다. 전당포 100여 곳의 전표, 황금으로 된 타구와 대야가 400여 개, 보물과 국보급 문화재 등 무려 총 9억 냥이었다. 가경제는 화신의 자결로 사건을 마무리 지으며 나머지 연루자들에게는 대사면령을 내렸다. 그리고 몰수한 재산을 황실 내탕금에 귀속시켰다. 가경제의 이런 행동은 화신에 대한 정치적 복수와 그의 재산을 몰수해 황제의 개인 재산을 늘린 행위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화신의 일생은 참으로 허무했다. 24년간 건륭제의 총신으로 권력과 부를 독점했지만 건륭제가 죽고 한 달도 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자기 사람으로 채우고 돈으로 감찰 기구도 매수했지만 그는 가경제의 숙청 1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현재 권력에만 집착하고 미래 권력을 대비하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이 그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역사는 말한다. 해가 중천일 때 그림자도 짙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언스플래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79호 (21.05.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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