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처럼 일하는 NGO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만 19년 전 5월20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였다. 늦게 얻은 첫아기 돌잔치를 한 뒤 노산이라 퉁퉁 부은 몸으로 산모복을 입고 나간 기억이 생생하다. 비록 남의 사무실에 책상 하나 빌린 입장이지만 아시아 최고 환경단체의 공간에서 환경재단을 시작한다는 자부심에 가슴께가 뻐근했다. 그때 돌잡이 아기가 해병대 입대를 앞두고 있으니 세월 참 빠르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그날 쟁쟁한 환경운동가들 앞에서 ‘21세기에 기업은 NGO처럼, NGO는 기업처럼 일해야 한다’고 피터 드러커의 말을 인용하며 자기소개를 하였다. 기대했던 박수 대신 분위기는 ‘쌔~’했다. 알고 보니 당시엔 환경단체와 기업이 한 테이블에서 뭔가를 도모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생조직으로서 환경재단의 이사진은 기업들은 생산 활동에 환경자원을 사용하며 오염원을 배출하고 있는 주체로서 문제해결에도 동참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환경경영과 그린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도해왔다.

20년 만에 기업의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돌풍과 마주하고 보니 과연 우리의 방향이 옳았고 경영구루 피터 드러커의 전망대로 기업이 NGO처럼, 아니 환경단체보다 더 강도 높게 탄소배출을 줄이고, 에너지를 전환하는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게다가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환율과 유가의 등락으로 기업의 이익이 갈라졌는데 앞으로는 탄소배출을 기준으로 큰 차이를 보게 될 것이다. 유럽연합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1이산화탄소 환산톤당 54.83유로(약 7만5000원)로 사상 최고가를 경신 중이고, 올 들어 무려 60% 이상 급등했다. 지난달 기후정상회의에서 주요 국가들이 2030년까지 배출감소 목표를 더 높였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제 주주들을 넘어 정치인보다 더 투명하게 이해당사자들에게 ESG 행적을 알리고 자본의 감독을 강도높게 받을 태세다. 그러면 NGO가 기업처럼 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내년이면 환경재단이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기업은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글로벌 단체들은 한국에 진출하는데 환경재단의 글로벌 활동은 그들과 어깨를 겨루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활동이 기후환경문제의 각성 수준을 높여왔다면 앞으로는 기후위기 대응 솔루션의 수준과 속도를 높이는 일로 확장시켜야 한다. 우리 경제수준에 걸맞은 글로벌 환경단체 하나쯤 나올 때가 되었다. 빈약한 자본으로 다보스포럼 같은 NGO는 나오기 어렵다. 기업의 선의에 기대는 후원금만으로는 어림없다. 미국의 CERES라는 NGO는 금융단체와 환경단체가 같이 만들어 지속 가능성의 GRI 표준도 만들고 연방준비제도와도 협업하는 단체다. 이제 NGO도 기업처럼 인수·합병(M&A)도 하고 여러 이해당사자들과 특수 목적법인(SPC)도 만들고 녹색채권도 발행하면서 그간 누군가에게 요청만 했던 일들을 스스로 발빠르게 실행하며 기후솔루션의 모델을 만들 수는 없을까.

2050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 모두에게 큰 도전이다. 새로운 과제는 새로운 방식으로만 해결된다. 혼자 소주 한 잔으로 자축해온 환경재단 첫 출근날이 하필 칼럼 마감일과 겹쳐 새삼 다시 생각해 본다. 기업은 NGO처럼, NGO는 기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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