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사업장 폐쇄도 닥쳐야 알아…탈석탄 맞지만 고용 불안 헤아려야”

고희진 기자

기후위기와 노동운동 - 보령화력발전 비정규직들

지난 4월26일 보령석탄화력발전소 앞에 선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이진길, 박지훈(가명), 남상무씨(왼쪽부터). 정부 탈탄소정책으로 보령화력발전소 1~8호기 중 1·2호기의 운영이 지난해 12월 중단됐다.   고희진 기자

지난 4월26일 보령석탄화력발전소 앞에 선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이진길, 박지훈(가명), 남상무씨(왼쪽부터). 정부 탈탄소정책으로 보령화력발전소 1~8호기 중 1·2호기의 운영이 지난해 12월 중단됐다. 고희진 기자

40대 이씨 “LNG 전환 등 얘기 나오지만 정규직도 100% 이동 확신 못하는데 우린…”
20대 박씨 “입사하고 언론 통해 ‘폐쇄’ 사실 들어…또래 동료들도 벌써 이직 준비”
50대 남씨 “은퇴하면 택시라도 몰려고 했는데…지역경제가 무너지면 그마저 될까”


충남 보령시 대천 기차역에서 차로 30여분을 달리면 보령화력발전소가 나온다. 국가보안시설이라 인터넷 지도를 검색해도 위치가 정확히 뜨지 않는 곳이다. 이 일대에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산다. 이들을 상대하는 식당과 카페 등도 영업 중이다. 발전소는 관광업과 함께 이 지역 경제의 중심이다. 10만명 초반대를 유지하던 보령 인구는 지난 2월 9만9700명으로 떨어졌다. 4월에는 9만9100명까지 내려갔다. 지역 일각에선 지난해 12월31일 보령화력발전 1·2호기 운영을 중단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정부는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라 2034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60기 중 30기를 폐쇄할 계획이다. 앞으로 몇 년 안에 발전소 몇 기가 더 문을 닫을지 모른다. 올해 3월 기준 전국의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는 정규직 1만3846명, 비정규직 1만1286명이다. 노동자들은 불안하다. 매일 사업장에 출근하면서도 언제 자리를 떠나게 될까 걱정한다. 비정규직은 더하다. 탈탄소 흐름에 따라 산업 전환이 가속화되고 일자리 재배치가 늘어날수록 비정규직이 구조조정의 본보기가 될 것으로 우려한다.

지난달 26일 보령화력발전소 근처에서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남상무씨(53), 이진길씨(48), 박지훈씨(27·가명) 등을 만났다. 이들은 “공기업 정규직이야 전환이 일어나도 어떻게든 고용이 유지되겠지만 비정규직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산업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탈석탄’ 정보에서 소외된 노동자

4월 중순이지만 날이 후텁지근했다. 이른 더위에 카페에선 에어컨이 돌아갔다. 남씨는 1998년부터 약 23년간 발전소에서 일했다. 그는 “기후위기 문제, 인정한다. 인류 자체의 생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 해결을 위해 산업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숫자에 집착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노동자들이 있잖나”라고 했다.

발전소 업무는 발전설비, 연료설비, 환경설비 등으로 나뉜다. 발전소 굴뚝에서 나오는 아황산가스를 잡아내는 탈황은 환경설비에 속한다. 세 사람 모두 탈황 업무를 한다. 지난해 가을 입사한 박씨는 근무 6개월째인 신입이다. 입사하기 전까지 보령 1·2호기 폐쇄 사실을 몰랐다. 언론을 통해 폐쇄 사실을 듣고서야 “아 진짜구나”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놀란 건 고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입사 21년차인 이씨는 “폐쇄 얘기가 전부터 있기는 했지만 시기가 왔다 갔다 했다. 폐쇄되기 3~4개월 전인 지난해 가을쯤에야 정확한 얘기를 들었다.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씨가 일하는 5·6호기도 2023년 폐쇄될 것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그는 “정확한 시기야 모른다. 노동자가 정보를 얻을 곳이 별로 없다. 회사도 가타부타 말해주지 않으니 불안만 쌓인다”고 했다.

정보 부족 문제는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과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전체대표자회의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1만1000여명 중 36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 전환 과정에서의 고용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시점을 정확히 안다고 답한 비율은 8.7%에 불과했다. ‘대략 듣기는 했지만 정확한 시점을 모른다’고 답한 이들이 61.5%로 가장 많았다. 정보의 획득 경로는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이 37.0%로 가장 높았고, 이어 직장 동료 28.6%, 회사 관리자 8.0%, 노동조합 7.6% 순이었다.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의 존폐 소식을 회사나 노조에서 듣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비정규직도 노조가 있지만 정보 접근성은 정규직만 못하다. 이씨는 “정규직 직원들이야 폐쇄하면 어디로 이전돼 배치되는지 알겠지만 우리는 얼마 전까지 1·2호기에서 같이 일하던 몇몇이 어디로 옮겼는지도 모른다. 알음알음 들을 뿐”이라고 했다.

삶에 큰 변화를 줄 전환 논의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외됐다는 감정은 현재도 심각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키울 수 있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에게 주관식으로 요구사항을 물었는데, 다수가 ‘정규직 전환 요구’라고 적었다. 전환이 이뤄지더라도 정규직은 구조조정에 노출될 위험이 훨씬 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 정부가 약속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불만이 가뜩이나 큰 터다. 향후 전환 과정에서 비정규직이 구조조정 1순위가 될 경우 갈등은 더 커지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 노동자 이탈은 지역경제 붕괴로

급속한 탈석탄 정책으로 일자리 위기가 심각해지자 일각에선 교대근무제 도입을 통해 전환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태성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전체대표자회의 간사는 “현재 2조4교대로 근무하는 곳이 다수다. 하지만 나중에는 5조3교대로 일자리 나누기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때가 올 것”이라며 “연구용역 결과 비정규직이 5조3교대를 했을 때 연봉이 약 1000만원 줄어들 것으로 나왔다. 평균 임금이 3000만~4000만원인 상황에서 1000만원이 줄어드는 것은 큰 문제지만 자기희생이 필요한 순간이 올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환 속도를 늦춘다 해도 탈석탄 기조를 바꿀 수는 없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예고된 변화는 생활의 불안을 키운다. 20대 노동자 박씨는 “석탄 비중이 줄면 다른 산업으로 넘어갈 생각이다. 또래 동료들도 벌써 다른 곳에 가려고 공부하거나 준비 중”이라고 했다. 40·50대인 이씨와 남씨는 처지가 다르다. 강원도 정선 출신인 이씨는 젊은 시절 이곳에 정착해 보령이 고향인 아내와 결혼했다. 그는 “장인·장모도 여기 계시고 아내는 떠날 수 없다고 하니 (사업장이 없어져도) 결국 나만 일자리를 찾아 떠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남씨는 “충북 영동이 고향이지만 이곳에서 아이 키우며 살았다. 이제 여기가 고향이다. 떠날 수 없다”며 “만약 은퇴하면 택시기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지역경제가 무너지면 택시 운영이 될까 싶다. 답답하다”고 했다.

세대별로 산업 전환에 반응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은 설문에서도 확인된다. 20대 69.0%, 30대 48.2%가 ‘바로 재취업이 가능하거나 시간이 걸리겠지만 재취업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40대(28.0%)와 50대(22.6%)의 두 배 수준이다. 40대 40.2%, 50대 51.7%는 ‘재취업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60대 역시 57.2%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부는 산업 전환으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를 위해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설문조사에서 재교육에 참여하겠다는 응답은 26.5%, 프로그램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응답은 63.3%, 참여하지 않겠다는 응답은 8.6%였다. 중장년층은 새 일자리를 얻으면 임금 등에서 신입과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이씨는 “재교육을 받고 다시 취업이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지만 새로운 곳으로 옮긴다 해도 지금의 급여 수준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며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가정을 꾸리고 지역에 정착한 40~50대 노동자의 고용 불안은 지역경제에도 악재다. 노동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상권이 무너진다. 발전소 주변에서 2대째 해산물 식당을 운영 중인 A씨는 “지금은 손님이 조금 줄었지만 석탄발전소가 다 폐쇄된다면 낚시꾼이나 관광객 장사밖에 할 게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카페 주인 B씨는 석탄발전소 폐쇄를 묻자 “주말엔 관광객, 평일엔 일반인 장사다. 다 폐쇄한다는 건가. 그건 몰랐다. 그럼 안 되지 않나”라고 했다.

반면교사로 꼽히는 것이 강원도 정선 사례다. 1980년대 국내 석탄산업의 중심지였던 정선은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라 다수 광산을 강제 폐광했다. 일자리를 찾아서 왔던 노동자들이 떠난 도시는 급속히 쇠퇴했다. ‘폐광 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역에 카지노가 들어섰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지역 원주민을 고려하지 않은 산업 유치로 지역사회 황폐화를 불렀다는 지적과 그나마도 유치하지 못했다면 도시를 유지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 노동 없는 ‘정의로운 전환’

서쪽 해안을 중심으로 당진, 서산, 태안, 보령, 서천까지 화력발전소가 몰려 있는 충남의 고민은 정선이 1990년대 마주한 고민과 다르지 않다. 해상풍력발전단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의 산업지구 전환, 에너지특구 지정 등 다양한 논의가 나오지만 처지에 따라 입장은 엇갈린다. 해상풍력의 경우 어업 종사자들이 어획량 감소 등을 우려해 반기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LNG 발전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석탄화력과 달리 운영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씨는 “발전 공기업 정규직들도 LNG 전환 과정에서 100% 이동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우리에게까지 기회가 오리라는 기대는 현실적으로 하지 않는다”며 “풍력단지, 에너지특구 모두 먼 얘기다. 당장 몇 년 안에 폐쇄가 예정돼 있는데 특구를 몇 년 안에 지정해 일자리를 전환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남씨는 “요새 정의로운 전환 얘기가 나오지만 현장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전혀 정의롭지 않다”고 했다.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산업 전환의 결과가 노동자, 지역주민 등 모두에게 정의로워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동안 산업 전환이 환경과 경제에 미칠 영향은 무수히 논의됐지만 노동자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제대로 얘기되지 않았다. 노동계 일각에서 노동자의 고용 승계 등을 보장하는 가칭 ‘에너지 전환 고용보장법’을 얘기하고 있지만 주요 논제로 취급받지 못한다. 설문조사에서도 정의로운 전환의 법제화 필요성에 대해 ‘매우 중요하다’고 답한 이들이 55.6%, ‘중요하다’고 답한 이들이 31.8%로 많았다.

기업은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까지 돌보지 않는다.

심층 인터뷰에 참여한 한 경상정비 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조 집행부는 심각성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노조가 문제를 얘기해도 회사는 ‘정부 방침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할 뿐”이라며 “회사는 경영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뿐이지 (노동자의 일자리 보전에 대한) 해결 방안이 딱히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노동자들이 기댈 곳은 노조뿐이다. 이씨는 “그간 목소리를 낼 곳이 없었다. 얘길 해도 사회가 잘 들어주지 않았다.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건이 있고 나서야 발전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구나 사회가 알게 된 것 아닌가”라며 “그 이후로 노조가 강해졌고, 지금도 기댈 곳은 노조밖에 없다”고 말했다.

설문에서도 전환 과정에서 노조의 역할에 관해 ‘매우 중요하다’고 답한 이들이 48.6%, ‘중요하다’고 답한 이들이 35.5%로 많았다.

남씨는 “노동자의 권리를 몰랐다면 기후변화로 인해 산업 전환이 된다고 해도 ‘우리 잘못이구나’ ‘나가야 하는구나’ 했을 것”이라며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의로운 전환에 노동자와 노조의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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