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 넷플릭스

 
아인슈타인, 비트겐슈타인, 바르톡, 고흐,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았을 경우 나타나는 특징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세상과 소통을 꿈꾸는 아스퍼거 증후군>(2006)을 쓴 심리학자 토니 애트우드는 이 책에서 위와 같은 주장을 펼쳤다. 최근 연일 뉴스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도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이성에만 근거하여 모든 판단을 한다'

아스퍼거 증후군의 정의이다.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지능도 정상이다. 하지만 자신의 세계에 갇혀있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정서적 교감이 어려운 것이다. 당연히 사회성 또한 다소 부족하다. 오로지 이성에 의거하여 모든 것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에서 3개월 동안만 후견인으로 아스퍼거 증후군인 그루(탕준상 분)와 함께 유품 정리사 일을 하게 된 조상구(이제훈 분)가 처음 간 현장은 치매를 앓다 홀로 죽음을 맞이한 노인의 집이었다. 유해가 치워졌음에도 그곳엔 구더기 등 잔해가 남아 있다. 당연히 악취도 심하다. 그 모습을 본 조상구는 구역질을 하며 뛰쳐나간다. 잠시 후 돌아온 조상구에게 그루는 담담하게 말한다. 사람이 죽으면 죽은 세포가 분해가 돼서 분비물과 악취가 나온다 등등... 이런 식이다. 

"마지막 이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김성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무브 투 헤븐>은 김새별-전예원씨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꽃보다 남자> 윤지련 작가가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드라마는 스무 살이 된 한그루가 아버지인 한정우(지진희 분)와 함께 돌아가신 분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마지막 이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유품 정리사로 현장에 간 아버지 한정우와 아들 한그루는 가장 먼저 이 말을 한 뒤 일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그저 일로써의 유품 정리를 넘어 돌아가신 분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애쓴다. 보여지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들 그루에게 아버지는 고인이 남긴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 이해하라고 한다. 감정은 없지만, 대신 이성을 도구로 삼아 세상을 보는 그루에게, 그루의 방식으로 유품 정리사의 직업관을 심어준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자상하고 따뜻하게 그루를 품어주었던 아버지. 하지만 건강이 안 좋았던 아버지는 그루에게 마지막 인사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그런 결말을 알았던 것처럼 그루의 동반자가 될 사람을 지정해 놓는다. 

교도소에서 갓 나와 그루네 재산을 보고 '웬 떡이냐'는 식으로 오늘부터 여기가 내 집이라고 찾아든 조상구와 함께 유품정리사 일을 하게 되는 그루.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성의 존재'가 전하는 위로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 넷플릭스


남들과 다른 그루를 처음 본 조상구는 그를 장애를 갖은 사람이라 치부한다. 그런 상구에게 그루의 오랜 친구인 나무는 항변한다. 그루는 장애를 가진 게 아니라, 특별한 것이라고. 

<무브 투 헤븐>은 바로 그런 특별한 그루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어린 위로다. 우리는 살아가며 감정을 참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어떤 일을 겪을 때 그로부터 빚어지는 감정 때문에 몹시 고통받는다. 심할 경우 그로 인해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기도 한다.  감정이야말로 '인간다움'의 징표라 여기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루는 인간적이지 않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다보면, 외려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감정이란 무엇일까? 아니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수족관 속 물고기들을 좋아하는 그루는 아픈 가오리의 상태에 대해 그 누구보다 예민하고 섬세하게 반응한다. 

평범한 스무 살 청년이라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어떻게 행동했을까? "늘 너와 함께 할 것"이란 아버지 말을 기억하며 아버지의 유골을 뿌리는 것을 거부한 아스퍼거증후군 청년 그루는 평범한 청년이라면 아버지를 잃었다는 슬픔에 주저앉아 있을 시간에 늘 하던 대로 현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하던 대로, 그 곳에서 돌아가신 분이 남긴 이야기를 들으려 애쓴다. 그루는 아들조차 버리려고 한 유품 속에서 매일 매일 돈을 찾으며 아들에게 양복 한 벌을 해주려고 했던 노인의 '유지'를 찾아낸다. 아스퍼거증후군이기에 가능한 남다른 집중력과 기억력으로 노인이 남긴 현금 인출증에서 노인의 마음을 읽어낸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한 장의 현금 인출증, 한 장의 그림, 한 장의 카달로그, 한 장의 포스터에서 그루는 고인이 남긴 메시지를 찾아낸다. 평범한 상구는 고인의 아들의 '유품을 포기하겠다'는 말 한마디에 포기를 선언하지만, 고인이 남긴 유품을 전하는 게 자신의 직업이라 생각하는 그루 사전에 포기란 없다. 그렇게 그루는 보통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고인의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 완성해 결국엔 전달하고야 만다.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것, 포옹을 하는 것조차 힘들어 하고 남들이 울고 웃는 상황에 공감하지 못하지만 정작 누군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가장 귀기울여 주는 청년. 세상의 잣대, 편견에 우리는 쉽게 상처받고 주저앉지만 감정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그루는 그래서 그 세상의 울타리를 훌쩍 넘어 진실에 다가선다.

그루가 전하는 고인의 진실을 통해 우리는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를 주저앉게 만드는 감정을 넘어선 극복이 무엇으로부터 가능할까 고민하게 된다. 아스퍼거증후군의 위인들이 세상을 보다 좋게 만들었듯 유품정리사 그루는 저마다 감정적인 삶에 짖눌려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 무브 투 헤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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