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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스닥 일장춘몽? No! 스타 기업 요람…70% 넘는 개인 비중 과제

  • 류지민 기자
  • 입력 : 2021.05.18 19:59:27
‘천스닥’ 시대에 안착할 수 있을까.

4월 12일 코스닥지수가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 2000년 닷컴 버블 이후 20년 만이다. 5월 들어 공매도 재개 영향으로 잠시 주춤한 모습이지만, 우호적인 증시 환경과 펀더멘털을 기반으로 한 상승세인 만큼 당분간 코스닥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코스닥지수의 1000포인트 돌파는 이번이 올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월 26일 장중 1000선을 넘어서면서 시가총액 400조원을 처음으로 돌파했지만, 아쉽게도 장 마감 때는 1000포인트 아래로 후퇴했다. 이후 3개월간 고지 탈환을 위한 치열한 사투 끝에 네 자리로 ‘레벨 업’에 성공했다. 2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천스닥 시대가 단기에 막을 내릴지, 반등 후 본격적으로 천스닥 바닥을 탄탄하게 다질지 코스닥 시장의 경쟁력을 짚어봤다.



▶코스닥 상장사 순이익 2배 증가

▷잘나가는 업종 다양화로 안정성 UP

코스닥 부흥을 점치는 가장 큰 배경은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좋은 기업’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코스닥 시장은 1996년 미국의 벤처·기술 기업을 위한 상장 시장인 ‘나스닥(NASDAQ)’을 벤치마킹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규모가 큰 코스피 상장을 우선하면서 코스닥 시장은 코스피에 가지 못하는 기업들이 모이는 ‘2부 리그’ 정도로 인식됐다. 오랜 기간 ‘코스피 2중대’라는 오명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이제는 상황이 확 달라졌다. 무엇보다 기업의 기초 체력인 이익 성장이 눈에 띈다. 코스닥 상장사 영업이익은 2021년 12조8000억원, 2022년 15조7000억원으로 계단식 성장이 예상된다. 특히 올해 순이익 추정치는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한 9조6000억원이다. 과거 대비 코스닥 시장 내 소위 ‘돈 잘 버는’ 성장 기업이 점차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코스닥 시장을 대표하는 코스닥150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코스닥150지수를 구성하는 기업의 실적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영업이익률의 경우 2020년 10%대를 돌파해 지수 산정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에 진입했다.

이나예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코스닥 밸류에이션 추이를 살펴보면 2017년 이후 합산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돌파하는 구간에서 12개월 선행 PER이 20배를 웃돌았다. 지난해 코스닥 합산 영업이익은 12조원 이상으로 2017년 수준을 넘어섰다. 올해도 경기 회복과 기저효과에 기반한 이익 증가가 예상되지만 아직 코스닥 PER은 18배 수준에 머물러 있어 추가 상승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코스닥 대표 기업 면면이 다양해진 것도 긍정적이다. 과거 코스닥 상승장을 주도했던 업종이 헬스케어라면 현재는 IT, 헬스케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시가총액 상위 기업이 고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3월 이후 코스닥 시총 증가는 여전히 헬스케어 업종이 33%로 가장 큰 기여를 했지만, IT(27%)와 커뮤니케이션(13%)도 적잖은 활약을 했다.

바이오주는 코스닥 시장의 정체성이라고 할 만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실적보다는 성장 가능성에 기대는 종목이 많아 투자 안정성은 낮은 편이다. 실제 코스닥 시총에서 헬스케어 업종 비중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모 아니면 도’ 식 대박을 노리는 투자자가 많이 유입되는 경향이 있다. 코스닥 내 IT와 커뮤니케이션 업종 선전이 안정성을 중시하는 소위 ‘건전한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코스닥 시장 거래대금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것도 이번 강세장의 특징이다. 개인 비중이 높은 코스닥 특성상 거래대금 규모는 유동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다. 코스닥 강세장이었던 2015년 중순, 2017년 말 코스닥 일평균 거래대금은 각각 약 5조원, 7조원 수준이었으나, 올 들어 코스닥 일평균 거래대금은 약 12조원 수준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닷컴 버블 이후 20여년 만에 코스닥지수가 1000포인트를 돌파하면서 코스닥 시장을 바라보는 투자자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닷컴 버블 이후 20여년 만에 코스닥지수가 1000포인트를 돌파하면서 코스닥 시장을 바라보는 투자자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동학개미 올 들어 5조원 순매수

▷연기금 투자 비중 확대 방침도 기대

외부적인 요인으로는 우호적인 대외 환경과 코스닥에 대한 개인 관심이 수급 개선을 이끄는 중심축이 됐다. 정부의 지속적인 코스닥 활성화와 혁신 기업 지원 정책, 동학개미운동 등이 코스닥 상승을 견인했다는 의미다.

정부는 2004년 벤처 활성화 방안을 내놓은 데 이어 2011년 코스닥 시장 건전발전 방안, 2016년 역동적인 자본 시장 구축을 위한 상장·공모 제도 개편 방안, 2018년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통한 자본 시장 혁신 방안 등 기술력과 성장성을 갖춘 혁신 기업을 코스닥 시장으로 끌어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놨다. 그 결과 기술특례 상장을 통해 코스닥 시장에 진입한 기업이 100개를 넘어섰고, 이는 코스닥 시장의 탄탄한 토대가 됐다. 기술특례 기업이 속한 기술성장기업부 주가 상승률은 2019년 말 대비 68%에 달한다. 같은 기간 벤처기업부(58%), 우량기업부(55%), 중견기업부(38%)의 상승률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올 초 정부가 내놓은 연기금의 코스닥 시장 투자 비중 확대 방침도 시장에서 환영받는다. 현재 1∼2% 수준인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비중을 더 높이고 투자 성과를 판단할 때 쓰는 추종 지표에 코스닥을 포함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정부가 관련 부처와 협의해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코스닥 투자 확대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국내 증시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오른 동학개미가 순매수로 화답했다. 지난해 개인은 코스닥 시장에서 역대 최고인 16조3176억원 순매수 기록을 세웠다. 올 들어서도 4월 말까지 4조9374억원어치를 사들이며 순매수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정책적 지원과 성장 잠재력이 높은 혁신 기업 중심의 IPO(기업공개) 활성화 노력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라고 밝혔다.

이번 코스닥 상승세는 코스피 상승세에 동반된 만큼 당분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스닥지수는 기본적으로 코스피지수와 같은 방향성을 보이지만 코스피 상승 이후 뒤따라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코스피 상승 이후 주가가 횡보하는 동안 투자자들이 중소형주로 눈을 돌리는 대체 투자 심리도 작용한다.

이재선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할인율에 대한 부담이 낮아졌다. 미국채 10년물은 3월 말 이후 1.5~1.7% 사이에서 횡보하는데, 이는 할인율 상승에 부담을 느꼈던 성장주들이 다시금 반등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주고 있다”며 “투자자 관심이 테크주나 성장주로 옮겨가고 있어 코스닥 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적에 기반한 투자 전략 효과적

▷신고가 종목 밸류에이션 매력 주목

코스닥 투자는 리스크가 큰 만큼 더욱 정교한 투자 전략이 요구된다. 특히 공매도 재개 이후 투자 심리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실적에 기반한 투자 원칙을 지키는 것이 손실 가능성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안정적인 성향의 투자자라면 시총 5000억원 이상 코스닥150 기업 가운데 올해 순이익 추정치가 상향 조정된 기업을 주목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최근 외국인과 연기금이 코스닥 시장에서 순매수로 돌아섰다는 것을 고려해 외국인·연기금의 수급 움직임도 따져보면 효과적이다.

헬스케어 업종에서는 셀트리온헬스케어와 씨젠, 반도체 업종에서는 원익IPS와 테스가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종목으로 꼽힌다. 디스플레이 업종의 실리콘웍스, 서울반도체, 덕산네오룩스, 서울바이오시스 등도 올해 순이익 추정치가 높아진 코스닥150 기업이다.

최근 신고가를 기록한 종목도 주목할 만하다. 이나예 애널리스트는 “신고가 종목이 상승장의 주도주이자 해당 업종이 곧 주도 업종”이라며 신고가 종목 가운데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 증가율이 20% 이상을 기록하고, 시가총액이 1조원 이하인 중소형주를 추천했다.

화학 업종에서는 이엔드디와 원익머트리얼즈, 소프트웨어 업종에서는 조이시티, 선데이토즈, 한글과컴퓨터, 골프존이 밸류에이션 매력이 높은 중소형주로 뽑혔다. 이 밖에 푸드나무(필수소비재), 에코마케팅(미디어), 하이비젼시스템·슈피겐코리아(IT 하드웨어), 파마리서치·티앤엘·휴메딕스·노바렉스·뉴트리(건강관리) 등이 코스닥 추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반도체 업종 전망도 밝다. 인텍플러스, 테스나, 하나머티리얼즈, 티에스이, 피에스케이, 유니셈, 원익QnC, 월덱스, 테크윙 등이 주목할 만한 기업이다.



▶높은 개인 비중과 도덕적 해이 불안

▷스타 기업의 코스피 이탈 막아야

“이번에는 다르다”며 코스닥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 어느 때보다 긍정적이지만, 불안 요소는 여전히 존재한다. 코스닥이 천스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우량 기업 발굴과 정착 ▲외국인과 기관의 투자 확대 ▲투자자 신뢰 회복 등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개미투자자는 이번 상승장을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70%가 넘는 개인의 높은 거래 비중은 코스닥의 ‘약한 고리’다. 개인은 기관이나 외국인에 비해 단타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코스피에 비해 시총과 거래량이 적다 보니 사소한 호재성 정보나 루머에도 갑자기 투기성 자금이 쏠리면서 주가가 크게 휘청이는 일이 적잖다. 외국인과 기관의 투자 확대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주가가 급등한 바이오 기업을 중심으로 대주주나 임직원 횡령·배임·주가 조작 등 모럴 해저드로 인한 사건·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검증되지 않은 호재성 ‘지라시’를 퍼뜨려 주가를 뻥튀기한 뒤 내부자가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해 돈을 챙기는 일은 코스닥 잔혹사의 단골 메뉴가 됐다. 우량 기업에는 상장 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주되 이를 악용하는 기업에는 보다 엄격한 규제와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상장 과정에서 심사를 강화하는 것뿐 아니라 사후 관리 차원에서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평가를 통해 위험 기업을 미리 쳐내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코스피 못지않은 우량 종목과 스타 기업의 존재다. 코스닥이 벤치마킹한 미국 나스닥은 전 세계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테슬라와 애플,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핵심 기업 성장과 함께 나스닥지수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중이다. 5월 11일 기준 나스닥종합지수는 1만3389.43으로 최근 3년 사이에 80.9%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는 12.6% 오르는 데 그쳤다.

코스닥을 코스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만 여기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코스닥 개설 이래 코스피로 이전한 상장사는 총 96개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종목인 네이버, 카카오, 셀트리온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코스피에 상장돼 있어야 주가 상승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어 당연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카카오는 2017년 코스피로 이전 상장한 뒤 주가가 4배 이상 올랐다.

결국 코스닥으로 상장한 스타 기업을 잡아놓기 위해서는 다양한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코스닥 시장에 상장해도 패시브 펀드 자금 등이 원활히 유입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정부가 인센티브를 줘서라도 코스닥 시장에 투자하고 싶은 스타 기업을 잡아두는 것이 코스닥을 제2의 나스닥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며 “덜 우량하면 코스닥에 상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력 높고 특색 있는 기업들이 코스닥을 상장 통로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9호 (2021.05.19~2021.05.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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