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북한대사관 습격 한국계 미국인의 씁쓸한 아이러니"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침입한 혐의로 스페인 당국에 송환될 위기에 처한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에 관한 워싱턴포스트 칼럼 인터넷 화면.

2019년 2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직전 스페인 마드리드 소재 북한대사관에 침입했다가 도주했지만 미국 당국에 체포돼 스페인 당국의 범죄인 송환 요구를 받고 있는 크리스토퍼 안.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인 맥스 부트와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안의 사연과 처지에 관한 칼럼을 실었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안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칼럼 제목은 ‘이 전직 해병대원은 북한 외교관들의 망명을 도우려 했다. 이제 그는 징역 수십년 형에 직면해 있다’였다.

한국계 미국 이민자의 아들인 안은 발목에 위치 추적기를 달고 있고, 밤 8시부터 아침 8시까지는 외출을 할 수 없다. 외출은 집에서 15마일(약 24㎞) 이내로 제안됐다.

안은 열 일곱 살 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이후 가족의 생계를 돌봐 왔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 해병대에 자원해 이라크에서 복부하다 부상을 입고 명예제대를 했다. 제대 후 버지니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한 그는 자신의 사업을 해왔다.

안은 예일대를 중퇴하고 북한 난민을 돕기 위한 조직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에이드리언 홍 창을 2009년 처음 만났다고 했다. 홍 창은 북한 정권 정복을 목표로 내건 ‘자유조선’ 설립자이기도 하다. 시간 나는대로 홍 창을 도왔던 안은 2017년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독살 당한 직후 그의 아들 김한솔과 가족들을 도피시키는 작전에도 홍 창의 지시를 받아 참여했다고 밝혔다.

안은 2019년 초 홍 창으로부터 스페인 마드리드 북한대사관에 있는 북한 외교관들의 망명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북한대사관에 침입해 외교관들을 납치한 것처럼 꾸밈으로써 북한 외교관들의 가족들이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2019년 2월 22일 안을 포함한 9명은 북한대사관에 진입했다. 일부는 칼과 공기총, 쇠몽둥이로 무장했으며 직원들을 결박했다. 한 사람은 대사관에 걸린 김정은 위원장의 초상화를 떼서 바닥에 내동댕이 치기도 했다. 안은 직원들이 불안해 하지 않도록 안심시키는 역할을 맡았고 무기를 소지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북한 여성이 2층에 뛰어내린 뒤 스페인 경찰에 신고하면서 한 북한 외교관이 망명이 너무 위험해졌다고 마음을 바꿨고, 안 일행은 그길로 대사관을 떠났다고 한다.

미국에 돌아온 홍 창은 연방수사국(FBI)과 접촉해 북한대사관에서 가져온 컴퓨터와 문서를 넘겼다. 하지만 스페인 법원은 홍 창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스페인 당국은 외교 공관 보호에 관한 국제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 외교관들은 자신들의 망명 시도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처벌을 받을 것을 우려해 안 일행을 범죄자라고 묘사하고 있다는 게 안의 주장이다. 안은 2019년 4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홍 창의 아파트에 갔다가 무장한 사법당국 요원들에게 검거됐다. 홍 창은 잠적한 상태다. 안은 3개월 간 연방교도소에 구금됐다가 7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는 현재 스페인이 요구한 송환 요구에 관한 재판을 받고 있다.

공익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재판을 받고 있는 안은 스페인에 송환돼 스페인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경우 21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고 칼럼 필자들은 전했다. 안은 스페인이 북한과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고 북한 요원들이 스페인 지하세계에 연계돼 있기 때문에 자신이 스페인에 송환되면 생명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칼럼 필자들은 FBI 역시 대사관 잠입뿐 아니라 김한솔을 도운 전력 때문에 북한 요원이 안을 살해하려는 믿을만한 위협이 있다는 의견을 법원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칼럼 필자들은 미국 법무장관이나 국무장관이 안의 스페인 송환을 막을 수 있다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누군가는 이 전직 해병대원이 외국 땅에 있는 정권의 적을 암살한 오랜 역사가 있는 북한 암살단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 뭔가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칼럼 필자들은 “안은 북한 주민들이 자유민으로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 대사관에 들어갔다고 말했다”면서 “안이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를 주려고 노력하다가 자신의 자유를 희생했을 수 있다는 것은 씁쓸한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크리스토퍼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