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백린 백신실용화기술개발사업단장
"노바백스 백신, 안전성 가장 높을 것"
"SK바이오, 직접 2000만명분 공급 협상"
文대통령, 27일 노바백스 CEO 접견

"우리나라 백신 수급에 정말로 공헌한 이들은 정부가 아니라 SK바이오사이언스 같은 기업들입니다. 기업이 정부의 체면을 유지하고 있는 거예요."

성백린 백신실용화기술개발사업단장(66·사진)은 27일 조선비즈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최근 노바백스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신속한 국내 허가와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스탠리 에르크 노바백스 최고경영자(CEO)를 직접 만나 이 사안을 논의한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2000만명분(4000만회분)을 직접 생산하는 만큼 해외 공급 차질의 우려 없이 오는 3분기부터 원활하게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성 단장은 지난해 SK바이오사이언스가 노바백스를 상대로 직접 국내 공급 계약을 따내고 정부 차원의 협상으로 연계해준 일화를 소개하며, 백신 수급 문제를 해소하는 데 있어 정부보다는 기업이 더 크게 이바지했음을 강조했다.

◇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 생산 대가로 국내 우선 공급키로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노바백스 백신의 약점은 느린 생산 속도다. 단순한 케미컬(화학) 공정으로 이뤄지는 다른 백신 생산과 달리, 합성항원 방식인 노바백스 백신은 까다로운 조건에서 세포를 배양·증식해야 하는 바이오 공정으로 만들어진다. 케미컬 공정으로 수십평 규모 시설에서 4주 만에 생산하는 화이자·모더나 백신 물량을 바이오 공정으로는 수천평 규모 시설에서 최소 4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노바백스는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생산시설 확보가 필요했던 상황에서 국제 생산시설 규격을 갖춘 SK바이오사이언스가 눈에 들어왔다. SK바이오사이언스 안동 공장은 연간 5억회분을 생산할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 생산에 집중하기 위해 주력 제품이었던 독감 백신 생산도 올해 중단하기로 했다. 상반기 물량의 대부분을 담당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도 이곳에서 생산된다.

SK바이오사이언스 안동 공장의 전경.

성 단장은 "지난해 8월 노바백스가 SK바이오사이언스에 위탁생산 계약을 제안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입장에선 이 계약만으로도 이익을 낼 수 있었지만, 국내 백신 수급이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기업 차원에서 먼저 ‘위탁생산하는 대신 한국에 우선 공급하게 해달라’고 노바백스에 역으로 제안했다"며 "노바백스가 이를 받아들여 기술이전 계약이 이뤄졌고 정부 차원 협상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 "노바백스 백신, 안전성 가장 높고 가장 인기 끌 것"

성 단장은 30년 이상 백신 연구에 매진해온 과학자이자 코로나19 백신 정책 전문가다. 서울대 제약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KAIST) 대학원에서 생명과학 석사,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대학원에서 생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 신속한 백신 개발과 기업 지원을 위해 출범한 정부 기구들의 요직을 맡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 범정부 지원단’의 백신분과장에 이어 지난해 4월 보건복지부가 다양한 백신의 국산화를 목표로 출범한 백신실용화기술개발사업단의 초대 단장에 올랐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국제백신연구소 자문위원, 연세대 의과대학 특임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전문가인 그가 보기에 AZ, 얀센, 화이자, 모더나, 노바백스 등 국내에 도입되는 해외 코로나19 백신 5종 가운데 가장 뛰어난 건 노바백스 백신이다. 임상시험 3상에서 확인된 96% 수준의 예방 효과와 함께 안전성이 가장 높을 것이라는 게 주된 이유다.

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

성 단장은 "AZ·얀센과 같은 바이러스 벡터 백신과 화이자·모더나 같은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은 개발사들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많은 물량을 빠르게 생산하기 위해 개발한 신기술이다"라며 "현재 이 백신을 접종한 후 나타나는 혈전증(AZ·얀센), 아나필락시스(화이자·모더나) 등 이상반응은 백신의 안전성을 검증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성 단장은 그러면서 "반면 노바백스 백신은 이미 지난 70년간 독감 백신, 대상포진 백신 등으로 널리 쓰여 안전성이 보장된 합성항원 방식이기 때문에 코로나19 백신도 기존처럼 안전할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바백스 백신은 높은 효능·안전성을 평가받는데도 느린 생산 속도가 발목을 붙잡았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국면에서는 시장 선점 경쟁에 불리하다. 수만명 규모의 임상시험에 필요한 시료(샘플) 생산 속도도 느려 임상과 상용화 속도도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성 단장은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백신 개발 경쟁이 100m 단거리 달리기에서 1000m 장거리 달리기로 바뀌었다"라며 "상용화가 늦지만 여러 장점을 가진 노바백스 백신이 3분기 국내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신실용화기술개발사업단은 최근 합성항원 백신의 생산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국내 기업 인테라와 공동 개발해 연구 결과를 지난 1월 국제 학술지 ‘바이오머티리얼즈(Biomaterials)’에 발표했다. 장염을 일으키는 노로바이러스 백신을 만들 때 기존 동물 세포보다 증식 속도가 빠른 대장균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사업단은 이를 코로나19를 포함한 여러 감염병 백신으로 응용할 방침이다.

◇ "국산 백신 임상, 연내 어려워…mRNA, 상용화 단계서 특허 문제 될 수도"

성 단장은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대해서는 연내 임상 3상을 완료하기가 어려워보인다고 진단했다. 임상 3상에 필요한 수만명의 피시험자 모집이 국내에선 힘들다는 것이다. 임상 참여자 중 백신 투여군과 비교할 대조군은 6개월 정도는 백신 접종을 할 수 없어 윤리적인 문제도 생긴다.

성 단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해외 임상을 추진하거나, 기존에 출시된 백신과 효능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임상 규모를 기존의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면역대리지표(ICP) 평가’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ICP 평가는 현재 정부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안전성 평가가 어려워진다는 한계도 있다. 성 단장은 "ICP 평가가 도입될 경우 안전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 합성항원 백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에선 5개 기업이 코로나19 백신 임상을 진행 중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유바이로직스가 합성항원 백신, 제넥신과 진원생명과학이 DNA 백신, 셀리드가 바이러스 벡터 백신을 개발 중이다.

성 단장은 정부가 기술 확보를 추진 중인 mRNA 백신에 대해서는 "상업화가 진짜 문제가 될 것이다. 해외 기업들이 기술 특허를 갖고 있는데, 이들은 (개발) 초기에는 가만히 있다가 우리가 상업화 단계에 진입하면 특허 시비를 거는 전략을 취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많은 로열티를 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전날 이기일 범정부 백신 도입 태스크포스(TF) 실무지원단장은 "현재 글로벌 제약사와 저희(국내) 제약사가 연구 협약을 통해 mRNA 기술 확보에 대해 노력하고 있다"며 "기술이전에 대부분 긍정적 입장이며, 앞으로 진행이 되면 적극적으로 정부도 협력하고 지원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