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스포츠' MLB, '개쩌는 야구'로 변신

2021. 4. 14.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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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지난 2017년 미국 ‘스포츠비즈니스저널’은 북미 프로스포츠의 주 시청 연령대를 분석했다. 2000년부터 2016년까지 16년 동안의 변화를 추적했다. 변화 양상은 극적이었다. 메이저리그의 ‘평균 시청 연령’은 52세에서 57세로 늘었다.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는 33세에서 무려 49세로 높아졌다. 미국프로풋볼(NFL) 역시 44세에서 50세로 높아졌다. 스포츠는 ‘아재’들의 몫이었다. 그나마 미국 프로농구(NBA)의 43세가 낮은 편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류현진(왼쪽)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김하성/AP연합뉴스


Z세대에게는 ‘하품 나는’ 스포츠

젊은 층의 이탈은 더욱 극적이었다. 13~17세 시청자 중 NBA를 가장 좋아한다고 답한 비율은 57%였지만 메이저리그를 좋아한다고 답한 비율은 겨우 4%밖에 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의 적은 ‘고령화’다.

메이저리그로 대표되는 야구는 ‘아재들의 스포츠’가 됐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느긋하게 ‘파크’라고 불리는 야구장에 앉아 ‘한적함’을 즐기는 스포츠다. 멈춰 있는 시간이 많은데다, ‘점잖은’ 스포츠다. 흰색 유니폼을 위아래로 갖춰입고, ‘허리띠’를 매고 플레이하는 요상한 종목이다. ‘순수함’과 ‘깨끗함’을 추구하는 바람에 유니폼에는 광고도 붙지 않는다. 야구는 게다가 ‘스타킹’까지 신는다. ‘예의범절’의 스포츠라고 스스로를 추켜세우지만, Z세대가 보기에는 ‘하품 나는’ 지루한 스포츠다. 화려한 NBA와 많은 점에서 차이가 난다. NBA 스타들은 ‘힙합 뮤지션’에 가깝다. 빠른 움직임과 화려한 퍼포먼스가 힙합 뮤직과 잘 어울린다. 유니폼을 벗고 사복을 입은 NBA 선수들은 ‘금붙이’로 화려하게 치장한다. 야구선수들은 여전히 이동 때 ‘양복’을 고집하는 팀들이 많다.

메이저리그도 이제 바뀌기 시작했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아재 스포츠’에서 벗어나 Z세대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됐다. ‘멋있고 감동적인 야구’가 아니라 ‘개쩌는 야구’, ‘오지고 지리는 야구’, ‘찢는 야구’를 추구하는 중이다.

메이저리그는 2021시즌 개막을 앞두고 ‘개막 기념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아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웅장한 클래식음악 대신 뉴욕에서 잘 나가는 힙합 뮤지션 NAS의 ‘스파이시(Spicy)’라는 곡에 야구 영상을 입혔다. NAS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만들어진 영상이다. 스파이시는 요즘 말로 하자면 ‘완전 찢어버리는’에 가깝다.

영상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더 이상 전쟁에 나서는 장수를 닮지 않았다. 래퍼처럼 웃고, 래퍼처럼 움직인다. 금목걸이가 찰랑이고, 화려하게 장식된 스파이크를 신었다. 영상 속에서 조지 스프링어는 홈런을 때린 뒤 ‘개쩌는’ 표정으로 방망이를 툭 집어 던진다. 오랫동안 메이저리그에서 금기시됐던 ‘빠던(빠따 던지기의 줄임말)’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에서 ‘빠던’은 투수들을 무시하고, 야구라는 종목에 대한 존중을 저버리는 행동으로 평가됐다. 빠던을 하고 나면 다음 타석에서 투수가 몸쪽 깊숙이 위협구를 던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졌다.

힙합 음악과 야구 영상의 조합

2015년 토론토와 텍사스가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만났을 때다. 2승 2패로 맞선 5차전, 3-3 동점에서 토론토 호세 바티스타가 결승 스리런 홈런을 때렸고, 1루로 걸어나가며 화려한 ‘빠던’을 선보였다. 빠던의 복수는 이듬해 5월 ‘잊지 않고’ 이뤄졌다. 바티스타는 텍사스전에서 사실상 고의에 가까운 사구를 맞았고, 이를 갚으러 2루에서 거친 슬라이딩을 하다 텍사스 2루수 루그네드 오도어와 충돌했다. 오도어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른 주먹을 바티스타의 왼 얼굴에 꽂았다.

이제 ‘빠던’은 금지가 아니라 되레 장려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ESPN은 2016년 ‘빠던’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야구의 ‘빠던’을 소개했다. 화려한 ‘빠던’이 야구의 재미를 살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메이저리그는 2018년 포스트시즌 공식 예고 영상에서 화려한 빠던을 모았다. 점잖은 야구의 대표격이었던 켄 그리피 주니어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해 “선수들이 즐기게 내버려 두자(Let the kids play)”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는 이후 더욱 본격적으로 야구의 고루함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2019년 포스트시즌 공식 영상의 주제는 ‘시끄러운 야구(We Play Loud)’였다. 메이저리그 초창기 흑백영상에 요즘 스타들의 활약상을 합성했다. 빠던과 화려한 세리머니가 강조됐다.

2021시즌 NAS의 ‘스파이시’를 배경으로 한 영상 역시 이런 움직임의 일환이다.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메이저리그는 2021시즌 유명 가수이자 배우인 닉 조너스와도 파트너십을 맺었다. 조나스는 이번 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의 홍보대사 역할을 맡는다. ‘이곳이 천국(#ThisIsHeaven)’이라는 주제로 SNS를 비롯해 여러 미디어를 통해 ‘개쩌는 야구’의 매력을 알린다.

젊은 팬 끌기 위한 생존 몸부림

힙합 뮤지션 릴 웨인도 메이저리그와 협업 파트너다. 웨인은 메이저리그 전통의 응원곡인 ‘나를 야구장에 데려다 주오(Take me out to the ballgame)’를 힙합 스타일로 편곡해 메이저리그 경기 영상에 얹었다. 영상 속에서 선수들은 빠른 템포 속에 ‘빠던’을 하고, ‘힙스러운’ 동작을 이어간다. 웨인은 트위터 팔로워 3500만, 인스타그램 팔로워 1320만인 세계적인 인플루언서로 ‘완전 찢어버리는 야구’를 널리 알린다.

메이저리그의 ‘개쩌는 야구’, ‘완전 찢어버리는 야구’를 위한 노력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포브스가 ESPN이 시청률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19 때문에 외부 활동이 줄어들면서 18~34세 그룹의 메이저리그 시청률은 전년 대비 69% 늘었는데 상당 부분 히스패닉 시청자들의 증가 덕분이다. 거꾸로 12~17세 사이 연령대에서 ‘확실한 스포츠팬’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10년 전 42%에서, 지난해 34%로 줄어들었다. Z세대 전문가인 마크 빌 룻거대학 교수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Z세대는 3시간이나 앉아 뭔가를 계속 보는 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빌 교수는 “야구는 물론이고, NFL 결승인 슈퍼볼, 아카데미 시상식 등이 모두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메이저리그는 살아남기 위해 ‘개쩌는 야구’, ‘완전 찢어버리는 야구’를 향한다. 이제 프로스포츠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야구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야구라는 종목의 스타일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이용균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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