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한 차례 리그가 중단됐던 남자부는 현재 한창 플레이오프가 진행중인 반면에 V리그 여자부는 이미 지난 3월 30일 GS칼텍스 KIXX의 챔프전 우승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이미 FA시장이 열린 여자부에서는 GS칼텍스의 '트레블'을 이끈 '쏘쏘자매' 이소영과 강소휘가 최대어로 꼽히며 많은 구단들의 관심을 받고 있고 각 팀을 이끌었던 외국인 선수들은 대부분 본국으로 출국했다.

이번 시즌엔 두 시즌 연속 득점왕에 빛나는 발렌티나 디우프(KFC인삼공사)를 비롯해 IBK기업은행 알토스를 이끌었던 안나 라자레바, 수준 높은 플레이를 선보였던 헬렌 루소(현대건설 힐스테이트) 등 좋은 외국인 선수들이 유난히 많았다. 하지만 시즌 내내 기복 없는 플레이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GS칼텍스가 3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게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선수는 역시 GS칼텍스의 '고공폭격기' 메레타 러츠였다.

GS칼텍스는 만26세에 불과한 젊은 나이와 뛰어난 기량을 겸비한 러츠를 장기계약을 해서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것이다. 하지만 러츠는 다음 시즌 더 이상 V리그에서 뛰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위해 올해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 신청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렇게 GS칼텍스는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최고의 외국인 선수 러츠와의 인연을 마무리하게 됐다.

재수 끝에 V리그 입성해 GS 주포로 도약
 
 재수 끝에 V리그에 입성한 러츠는 곧바로 GS칼텍스의 주포로 자리 잡았다.

재수 끝에 V리그에 입성한 러츠는 곧바로 GS칼텍스의 주포로 자리 잡았다. ⓒ 한국배구연맹

 
중학교 때 이미 180cm가 넘었던 러츠는 점점 커지는 신장에 비해 기량이 따라오지 못해 고교 시절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좋은 신체조건과 성장 가능성을 인정 받아 여자배구 명문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했고 부족한 실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1학년 때 유급을 선택했다(국내 선수들은 중·고등학교 때 유급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미국에서는 대학에서 유급을 결정하는 경우가 더 많다).

2학년 때까지 미들블로커로 활약하던 러츠는 3학년에 진학하면서 감독과 상의 끝에 아포짓 스파이커(오른쪽 공격수)로 변신했다. 그리고 포지션 전환 첫 해 스탬퍼드대는 전미 대학 선수권 우승을 차지했고 러츠는 전미 대학 최우수 아포짓 스파이커로 선정됐다. 4학년 때 4강에서 플로리다대에 패하며 2연패가 좌절된 러츠는 졸업 후 한 아시아리그의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 바로 한국의 V리그였다.

하지만 당시 트라이아웃 현장에 모인 한국 프로팀 지도자들은 지나치게 거구였던 러츠를 눈 여겨 보지 않았다. 실제로 기업은행의 이정철 감독(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러츠를 선발할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러츠 대신 서브리시브가 가능한 윙스파이커 어도라 어나이를 지명했다. 대학 졸업 후 첫 구직이 실패로 돌아간 러츠는 유럽으로 눈을 돌려 이탈리아 2부리그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해 세트당 평균득점 1위(5.54점)를 기록했다.

러츠는 이탈리아에서 활약하며 체중을 약 7kg을 감량했고 한층 날렵해진 몸으로 2019년 V리그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 재도전했다. 그리고 인삼공사의 디우프에 이어 실질적인 2순위로 GS칼텍스의 지명을 받았다. 큰 신장을 살린 공격은 물론 팀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블로킹에서도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한 차상현 감독의 승부수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차상현 감독의 선택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러츠는 2019-2020 시즌 득점(678점)과 공격성공률(41.39%) 2위, 블로킹 5위(세트당0.63개), 후위공격 1위(44.99%)에 오르며 공수 전 부문에서 GS칼텍스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2018-2019 시즌 3위였던 GS칼텍스는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 종료되기 전까지 1위 현대건설에게 승점 1점 뒤진 정규리그 2위를 차지했다. 러츠의 대활약이 없었다면 결코 쉽지 않았을 약진이었다.

GS '트레블' 이끌고 더 큰 무대 도전하는 러츠
 
 GS칼텍스는 공식 SNS를 통해 러츠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했다.

GS칼텍스는 공식 SNS를 통해 러츠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했다. ⓒ GS칼텍스 KIXX

 
스포츠에서는 첫 시즌에 좋은 성적을 올렸던 선수가 상대팀에게 플레이 스타일이나 버릇 등이 간파되면서 두 번째 시즌에 고전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206cm의 신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높이를 자랑하는 러츠는 플레이 스타일이나 버릇을 알아냈다고 해서 쉽게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GS칼텍스는 점프를 하지 않고도 네트플레이가 가능할 정도로 뛰어난 신체조건을 가진 러츠와의 재계약을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GS칼텍스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은 러츠는 작년 9월 컵대회 결승에서 '여제' 김연경을 비롯해 이재영-이다영 자매, 외국인 선수 루시아 프레스코까지 모두 뛰었던 '완전체'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를 상대했다. 러츠는 이 경기에서 3세트 동안 홀로 25득점을 퍼부으며 GS칼텍스의 우승을 이끌었다. MVP는 결승에서 48.15%의 공격성공률을 기록한 강소휘의 몫이었지만 GS칼텍스의 공격을 이끈 선수는 단연 러츠였다.

러츠는 V리그가 개막한 후에도 디우프, 라자레바, 김연경 등과 함께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했다. 물론 4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한 디우프, 라자레바와 달리 이소영, 강소휘와 공격을 적절히 분배한 러츠는 득점 3위(854점)로 정규리그를 마쳤다. 하지만 챔프전에서는 3경기에서 41.46%의 공격점유율을 기록하며 78득점(경기당 26득점)을 올리는 압도적인 활약으로 주장 이소영과 함께 챔프전 공동 MVP에 등극했다.

러츠는 실력도 뛰어나지만 살가운 성격으로 GS칼텍스에 빠르게 적응했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한식을 즐겨 먹었고 동료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실제로 강소휘는 러츠의 재계약 무산소식을 듣자마자 SNS에 러츠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러츠와의 이별을 안타까워했다. 그만큼 러츠는 GS칼텍스 선수들에게 단순한 외국인 선수가 아닌 두 시즌 동안 동고동락해 함께 트레블을 만들어낸 '친구'였던 것이다.

첫 우승을 차지했던 2007-2008 시즌에는 브라질 출신의 윙스파이커 하께우가 있었고 V2를 달성했던 2013-2014 시즌엔 거포 베타니아 데라크루즈(등록명 베띠)가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외국인 선수도 러츠만큼 GS칼텍스의 동료들과 하나가 되지 못했다. 다음 시즌 러츠가 어떤 리그에서 활약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부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하고 떠나는 러츠는 GS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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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도드람 2020-2021 V리그 GS칼텍스 KIXX 메레타 러츠 고공 폭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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