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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리 ‘절대 1강’ TSMC 성공 비결은…“고객과 경쟁 않는다” 34년 지켜온 사훈 국가 지원·인재 육성·기술 혁신 3박자

  • 강승태, 반진욱 기자
  • 입력 : 2021.04.06 14:45:59
지난 1월 외교가에는 이례적인 모습이 연출됐다. 중국에 밀려 국제사회에서 다른 국가와 외교가 끊긴 사실상 ‘왕따’ 국가 대만에 미국, 일본, 독일 정부가 잇따른 ‘호소’를 보낸 것이다. 수교를 맺지 않은 국가에, 그것도 내로라하는 선진국들이 빌붙다시피 하는 모습은 세간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남중국해의 작은 섬나라에 경제 대국들이 쩔쩔매는 이유는 단 하나, 대만이 전 세계 파운드리 생산량 64%를 담당하는 ‘반도체 대국’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카메라, 그래픽카드 등 선진국 기간산업은 대만이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는다면 모두 마비된다.

대만이 경제 대국들의 주요 산업을 좌우하고 있다. 작은 섬나라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난 배경에는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50%가 넘는 ‘절대 1강’, TSMC가 있다.

▶TSMC는 어떤 기업

▷‘파운드리’ 개념 최초 도입

TSMC 시작은 공기업이었다.

1987년 대만공업기술연구원장 ‘모리스 창’이 대만 정부와 외국인 투자자가 출자한 2억2000만달러 자본금을 갖고 세웠다. 본래 모리스 창은 미국 반도체 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며 수석 부사장까지 지낸 반도체 기술 전문가였다. 미국 반도체 업계에서 승승장구하던 모리스 창은 “조국 반도체 산업 진흥에 도움을 달라”는 대만 정부의 요청을 받아 54세 나이에 귀국했다.

귀국 후 창 전 회장은 ‘대만 특색’에 맞춰 경쟁력을 가진 반도체 기업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당시 대만은 반도체 생산 능력 자체는 양호했지만 미국·일본에 비해 디자인·마케팅 능력이 상당히 뒤떨어져 있었다. 고민을 계속하던 무렵 창 전 회장은 생산 시설을 만들 여력이 없는 반도체 벤처 기업, 이른바 ‘팹리스’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신생 팹리스 회사들은 IBM, 도시바 등 대기업에 제작을 의뢰했다. 하지만 디자인·설계 기술 이전을 강요당하는 등 ‘갑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설계 유출 위험 없이 생산만 담당하는 회사가 나오면 그들을 모두 고객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탄생한 비즈니스 모델이 설계 과정 없이 생산만 하는 이른바 ‘파운드리’였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1990년대부터 브로드컴, 마벨, 엔비디아 등 대형 팹리스 기업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기술 유출 우려 없이 ‘생산’만 담당하는 TSMC에 생산을 전적으로 맡겼다. 팹리스 기업들의 수요를 모두 흡수하며 TSMC는 급속도로 덩치를 키웠다. 1990년대 매출이 대폭 늘며 대만 정부가 지분을 처분, 민간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매출이 늘어나도 다른 분야에는 진출하지 않았다. 이후 34년 동안 ‘파운드리’ 한 우물만 파며 사업에 집중했다. 그 결과 2021년 3월 기준 시가총액 600조원에 달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절대 강자 ‘TSMC’ 배경은

▷고객 신뢰·기술력·투자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

TSMC 사훈이다.

TSMC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압도적 1강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성공 비결은 여러 가지다. 사훈에서 알 수 있듯 TSMC는 34년 동안 위탁생산 외에 다른 사업은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TSMC에 생산을 맡기면 기술 유출 염려가 없었다. ‘객호신임’의 원칙에서 비롯된 경영 철학은 창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글로벌 파트너들과 굳건한 신뢰 관계를 맺는 기반이 됐다.

창 전 회장은 ‘니케이아시안리뷰’와 인터뷰에서 “(TSMC 성공 비결에 대해) TSMC는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 상품을 판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애플을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다. 애플은 아이폰·MAC용 프로세서(CPU) 생산을 맡기는 업계 ‘큰손’이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삼성전자와 인텔은 각각 스마트폰·컴퓨터 시장에서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경쟁자다. 자신과 경쟁을 벌이는 회사보다는 ‘적수’가 될 가능성이 없는 TSMC를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

창 전 회장은 “TSMC는 항상 적절한 파트너들을 발굴해왔다”며 “그래픽 시대에는 엔비디아, 휴대폰 시대에는 애플, 퀄컴 같은 회사와 비즈니스를 했다”고 말한다.

공격적인 투자 역시 성공 비결로 꼽힌다. TSMC 영업이익률은 평균 30~40%. 벌어들인 막대한 이익을 바탕으로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후발 업체가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거액을 투자한다. 국가 경제의 핵심 기업인 탓에 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이어진다.

TSMC 역시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창 전 회장은 2005년, 74세 나이에 은퇴했다. 은퇴 후 3년 만에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TSMC 역시 위기에 빠졌다. 창 전 회장은 노쇠한 몸을 이끌고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해고된 숙련 직원들을 복귀시킨 것. 또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금융위기 여파가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다른 경영자와 달리 반도체 산업에서는 수요가 복구될 것이라고 전망했기 때문이다. 창 전 회장의 공격적인 투자 전략으로 TSMC는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이 됐다.

핵심 인재 유치를 통한 기술력 확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TSMC 본사가 있는 신주과학단지. 사실상 대만 정부가 TSMC를 위해 만든 대규모 연구개발(R&D) 단지다. 이곳에서 TSMC는 국내외 유수의 반도체 인재 영입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은 덤이다. 대만에서 ‘TSMC 입사’는 모든 젊은이들의 꿈이다. TSMC가 5나노, 3나노 미세 공정 도입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핵심 인재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SMC 전망은

▷당분간 독주 체제 지속될 것

반도체 업계는 앞으로 TSMC 1강 독주 체제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은 미국 제재로 인해 장비 구입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국 SMIC는 60억달러에 달하는 돈을 투자해놓고도 장비를 마련하지 못했다. 올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 2월 우한에서 진행하던 20조원 규모 신규 프로젝트는 사실상 무산됐다.

인텔 역시 당분간 TSMC의 직접적인 위협이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공정기술상 문제로 인텔은 적어도 2023년까지는 TSMC에 생산을 의지할 확률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반면 TSMC는 대만 외 지역에 공장과 연구시설을 늘리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 중이다. 2020년 5월 TSMC는 120억달러를 들여 미국 애리조나주에 새로운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TSMC가 처음 해외에 짓는 첨단 반도체 공장이다. 미·중 대립 격화로 중국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대만에 첨단 반도체 생산이 집중된 것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적극적으로 생산 라인을 유치했다. TSMC는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세금·수도·전기 요금 등 혜택을 받는다. 2021년 2월에는 일본 이바라키현에 연구개발 거점을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류더인 TSMC 회장은 “예상보다 미세 공정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내년 3나노 개발을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TSMC는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에 주력하고 공정 기술 선도를 위해 3년간 1000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한다”고 밝혔다. TSMC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반진욱 기자 half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3호 (2021.04.07~2021.04.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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