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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조선구마사’ 폐지...중국풍·역사왜곡에 철퇴 맞은 안방극장

이다겸 기자
입력 : 
2021-03-27 17:59:55
수정 : 
2021-03-28 08: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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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구마사` 작가, PD, 배우들 줄줄이 사과
반중정서 역린 건드린 드라마 역사왜곡
"우리 문화 역사 제대로 알려도 모자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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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풍 소품과 역사왜곡 논란에 폐지된 '조선구마사'. 사진lSBS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다겸 기자] 드라마 '빈센조' '여신강림'이 중국산 PPL(제품협찬)로 뭇매를 맞더니 '조선구마사'는 중국풍 소품과 역사왜곡 논란에 방송 2회만에 폐지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조선구마사' 박계옥 작가의 전작으로 역시 역사왜곡 논란이 일었던 드라마 '철인왕후'는 종영 후 다시 비판대에 올랐다.

최근 중국이 ‘문화 동북공정’으로 한국 누리꾼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반중(反中) 정서를 거스르는 안방극장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분노를 부르며 방송이 폐지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나친 여론몰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중국 자본의 침투를 막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악용될 수 있는 역사 왜곡 묘사를 차단하겠다는 시청자들의 분노가 그만큼 크고, 그에 기반한 움직임이 철저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 22일 첫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중국향 소품과 역사 왜곡 논란으로 방송 2회 만에 결국 폐지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역사 왜곡 논란은 드라마에 종종 있어온 일이나 여기에 반중 정서를 거스르는 월병 등 중국풍 소품이 기름을 끼얹은 결과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중국 정부가 진행한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중국의 동북 3성 지역에서 부흥했던 고구려, 발해 등을 중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연구 작업이다. 최근에는 중국이 김치, 한복, 판소리 등을 자국의 문화라고 주장하는 ‘문화 동북공정’을 펼쳐 한국 누리꾼들의 비판을 넘어선 분노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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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비빔밥 PPL로 뭇매를 맞은 '빈센조'.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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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강림’에 생뚱맞게 등장한 훠궈. 사진ltvN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가 중국산 PPL 및 중국풍 소품 등을 활용하며 집중 포화를 맞았다. 지난달 종영한 tvN 드라마 '여신강림'은 과도한 중국 제품 PPL로 누리꾼들의 비판을 샀다. 극중 주인공인 임주경(문가영 분)과 이수호(차은우 분)가 카페에서 ‘즈하이궈(自嗨锅)’의 인스턴트 ‘훠궈’를 먹는 장면이 나오며 논란을 부른 것. 카페에서 훠궈를 먹는 황당한 연출은 과도한 중국 제품 PPL로 지탄 받았다. 현재 방송 중인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도 마찬가지다. ‘빈센조’에서는 빈센조 까사노(송중기 분)와 홍차영(전여빈 분)이 변호사 사무실에서 '차돌박이 돌솥 비빔밥'이라 적힌 즉석 식품을 먹는 모습이 등장했다. 문제는 이 제품이 중국의 유명 즉석식품 브랜드 ‘즈하이궈(自嗨锅)’가 만든 중국 내수용 비빔밥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아무리 중국 자본이 투입된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한국 전통 음식인 비빔밥을 중국산으로 보이게 한 연출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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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구마사'의 월병 등 중국풍 소품은 반중정서를 제대로 건드렸다. 사진|SBS
이렇게 쌓인 시청자들의 불만이 ‘조선구마사’에서 폭발했다. ‘조선구마사’ 첫 방송에서 충녕대군(장동윤 분)이 악령 아자젤의 부활로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기 위해 구마 전문 신부 요한(달시 파켓)을 데리러 가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요한의 통역사 마르코(서동원 분)는 충녕대군에게 반말을 쓰며 기생집 대접을 요구했고, 이들이 찾은 조선의 기생집에는 월병, 피단(삭힌 오리알) 등 중국식 식사가 가득 차려져 있었던 것. 다음 날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SNS를 통해 “이미 중국 네티즌들은 웨이보를 통해 ‘당시 한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드라마 장면을 옹호하기 시작했다”면서 “이미 한국 드라마는 글로벌화가 되어 정말로 많은 세계인들이 시청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훌륭한 문화와 역사를 알리기도 시간이 모자란데, 왜곡된 역사를 해외 시청자들에게 보여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리꾼들은 ‘조선구마사’가 ‘여신강림’, ‘빈센조’ 등이 중국산 PPL로 지탄을 받은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왜곡된 중국 소품을 방송에 넣었다는 점에 대해 분노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는 ‘조선구마사’ 관련 민원이 폭주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역사왜곡 동북공정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즉각 방영중지를 요청한다”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비판이 커지자 '조선구마사'에 제작 지원을 했거나, 광고를 한 기업들이 서둘러 광고 및 협찬 철회를 알렸다. 한복업체는 물론이고 문경시, 나주시 등 지자체도 손절했다. 더 이상 드라마를 찍기도 어렵고, 찍어도 광고 없이 내보내야 할 상황을 맞았다.

‘조선구마사’ 측이 24일 사과문을 발표하고 한 주 간 결방 및 재정비를 밝혔으나, 파문은 걷잡을 수 없었고 결국 SBS는 26일 방송 취소를 공식화했다. '매의 눈' 누리꾼들이 해외 스트리밍은 계속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 무섭게 제작사들은 ‘조선구마사’ 관련 해외 판권 건은 계약해지 수순을 밟고 있으며 서비스 중이던 모든 해외 스트리밍 또한 중지될 예정이라고 알렸다.

'조선구마사'는 32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갔고, 80%가 이미 제작됐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손해를 나누겠다고 밝혔지만 중단 이후 배우들의 출연료 등 돈 문제가 불거질 여지가 남았다.

27일에는 신경수 PD와 감우성 박성훈 장동윤 이유비 정혜성 등 출연 배우들이 줄사과했다. 감우성은 소속사 SNS를 통해 “‘조선구마사’에 출연한 배우이자 제작진의 일원으로서 시청자들을 포함,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대중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배우로서 보다 심도 있게 헤아리지 못해 실망감을 안겨드린 점 역시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연출자 신경수 PD는 사과문에서 "모든 것이 내 탓"이라며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신 PD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역사 속 인물들의 실명을 쓰면서 인물의 스토리구성이나 표현에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 이에 책임감을 느끼고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신 PD는 다만 "시청자들께서 우려하시는 것처럼 편향된 역사의식이나 특정 의도를 가지고 연출한 것이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다"며 "문제가 되었던 장면들은 모두 연출의 부족함에서 비롯한 것이다. 거듭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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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구마사' 박계옥 작가의 전작으로 역시 역사왜곡 논란이 일었던 '철인왕후'. 사진|tvN
'조선구마사' 폐지 후 박계옥 작가의 전작인 '철인왕후'도 다시 비판받고 있다. '철인왕후'는 현대를 살아가는 한 남성의 영혼이 조선 시대 중전의 몸 안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믹 판타지 사극. '철인왕후'가 리메이크한 중국 웹 드라마 '태자비승직기'의 원작 소설 작가가 혐한 사상을 드러낸 점에서 방송 전부터 우려를 낳기도 했다. 실제로 '철인왕후'는 방영 첫 주 만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인 조선왕조실록을 '한낱 지라시'라고 일컫는 대사 등 문화유산 비하와 실존 인물인 조대비에 대한 묘사로 역사 왜곡 논란이 일자 제작진이 사과하고 방송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조선구마사' 작가의 전작이라는 점에서 다시 구설에 오르자 27일 네이버TV, OTT(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티빙등에서는 '철인왕후'의 공식 영상 및 클립 다시보기 서비스가 중단됐다. 또 신혜선 등 출연 배우들을 모델로 쓴 일부 업체에 따가운 눈총이 모아지고 있다.

관계자들은 ‘조선구마사’ 폐지가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이 거세진 가운데 드라마 ‘여신강림’, ‘빈센조’의 중국 브랜드 PPL과 '철인왕후' 등의 역사왜곡이 이어지며 쌓인 시청자들의 반중 정서가 폭발한 결과로 보고 있다. 또한 이번 사태는 더이상 시청자가 소비자로서 콘텐츠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퇴출 운동으로 콘텐츠 존폐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역대 드라마 중에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폐지된 사례는 별로 없다. 거의 최초인 것 같다”면서 “이 정도까지 파장이 인 것은 우리나라가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흔히 퓨전 사극이라고 하면 역사 고증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극이라는 장르 특성상 시대상을 갖고 올 수밖에 없지 않나. ‘조선구마사’가 잘못한 지점은 기본적인 고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왜곡된 중국 소품이 들어간 것이 중국에 문화 동북공정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이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조선구마사’만 놓고 봤을 때, 폐지 결정은 지나친 여론몰이라는 일각의 의견도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그간 각종 드라마를 통해 누적된 반중 감정이 ‘조선구마사’로 폭발한 것 같다. 물론 ‘조선구마사’가 잘한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에 참여한 스태프 피해 등 제작 무산의 막대한 손해는 누가 책임져야 하나”라며 “한번 쯤은 시정할 기회를 줄 수도 있는 것인데, 폐지라는 극단적 선례를 남긴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trdk0114@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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