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에 뿌리 뽑자"..'조선구마사', 어쩌다 폐지까지 갔나

2021. 3. 2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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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에 대응한 국내 반중 정서가 드라마도 폐지해버리는 초유의 사태를 낳았습니다.

시청자가 프로그램에 대해 퇴출운동을 벌여 성공한 최초의 사례로, 디지털 시대 시청자의 더욱 강력해진 힘과 훨씬 엄격해진 눈높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중국자본에 불쾌감 누적된 시청자의 '철퇴'

26일 전해진 SBS TV 월화극 '조선구마사'의 폐지 결정은 그동안 누적된 반중 정서를 고려하면 급작스럽고 뜻밖의 일은 아닙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미 tvN 드라마 '여신강림'과 '빈센조' 속 중국 브랜드 PPL(간접광고), '철인왕후' 원작 작가의 혐한 발언 등으로 이미 반중 감정이 거세진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이런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중국은 김치와 한복을 자국 문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한국에서 벌어진 논란에 대해 조롱 섞인 반응을 내놔 분위기를 더욱 험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조선구마사'의 경우 중국식 소품과 의상을 사용한 사례만 놓고 보면 폐지는 과한 처사라는 시각도 있지만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고, 터질 게 터진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중국계 자본이 들어온 것은 최근 일은 아닙니다. 아직 한한령(限韓令·한류제한령)이 풀리지 않은데다, 국내 소비자의 반중 정서도 있기 때문에 본격화되지는 않았을 뿐 메이저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지분을 차지하는 등 움직임은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PPL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시청자도 체감할 수 있는 환경이 됐습니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등 플랫폼 확대로 콘텐츠 수요는 급증했지만, 콘텐츠를 제작할 자본 조달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제작자로서는 중국 자본의 유혹을 거절하기는 어렵기도 해 조금씩 직·간접적인 협력이 이뤄져 왔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단호했습니다. 앞서 몇몇 드라마의 사례로 누적된 공분은 '조선구마사'에서 터지고 말았습니다. 소품과 의상은 물론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해외 홍보 문구, 대본 집필을 맡은 박계옥 작가의 전작과 근황까지 하나하나 검증하는 것으로 확산했습니다.

정작 '조선구마사'는 중국 자본과는 관계가 없었지만, 쌓인 불쾌함과 높아진 잣대 속에 이 작품은 '중국향'을 내비친 것만으로 본보기로 철퇴를 맞았습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조선구마사'가 폐지까지 이른 상황은 일단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면서 "향후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에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문화 동북공정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크다. 그런 상황에서 제작진이 알아서 중국향을 의식했다는 느낌이 드는 드라마가 나왔으니, 시청자가 굉장히 세게 예방주사를 놓은 격"이라고 분석했습니다.

◇ 폐지 사태 맞은 '조선구마사', 논란 부른 이유는

'조선구마사'를 둘러싼 논란은 방영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시놉시스가 공개된 이후 조선이 로마 교황청의 도움으로 국가를 건국했다는 기본 설정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방영 후에는 극의 스토리와 설정, 중국풍 소품 등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지난 22일 방송된 1회에서 충녕대군(장동윤 분)이 서양 구마 사제(달시 파켓) 측에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에서 월병 등 중국식 소품을 사용하고, 무녀 무화(정혜성)가 중국풍 의상을 입었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에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입니다.

이에 SBS 측은 중국풍 소품을 사용한 것에 대해 "한양과 멀리 떨어진 변방에 있는 인물들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한 설정이었을 뿐 어떤 특별한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또 박 작가가 전작 tvN '철인왕후'에서도 역사 왜곡 논란을 겪은 사실이 알려지자 시청자의 반감을 더욱 커졌습니다. '철인왕후'는 방영 전부터 중국 드라마인 '태자비승직기'를 원작으로 해 논란이 일기도 했으며, '조선왕조실록'을 '한낱 지라시'라고 하는 대사 등으로 문제가 됐습니다.

여기에 박 작가가 한중합작 민간기업인 쟈핑픽처스와 계약했다는 사실도 알려져 논란이 됐습니다. 중국 진출을 위해 동북공정 및 역사 왜곡을 일삼는다는 주장까지 제기됐고, 박 작가나 그의 집안이 조선족과 관련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쟈핑픽처스는 전날 "박 작가와는 향후 기획하고 있는 현대극에 대한 집필만을 단건으로 계약한 것"이라며 "제작, 투자 등에 대한 추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박 작가와의 집필 계약을 전면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드라마의 폐지를 부른 건 중국향 장면과 설정이지만, 짚어보면 이 작품의 더 큰 문제는 역사 왜곡 소지에 있었습니다.

'조선구마사'가 방영 이전 공개한 시놉시스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 당시 서역의 구마사와 악령에게 영혼을 지배당한 '생시'의 도움을 받았다는 설정으로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조선 시대 초기에는 가톨릭 사제가 들어오기가 어려웠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적에 이어 국가의 건국 과정 자체를 왜곡한다는 논란이 불거진 것입니다.

이에 박계옥 작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는 여러 시놉시스 중 하나였다고 밝혔으며, 제작사는 이방원이 북방 순찰을 하던 중 마주친 악령을 봉인했다는 설정이 최종 시놉시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방송 후에도 태종(감우성 분)과 양녕대군(박성훈), 충녕대군에 대한 묘사도 실제 역사를 제대로 고증하지 못했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습니다.

계속되는 논란에 SBS와 제작사 측은 그제(24일) "예민한 시기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시청에 불편함을 끼쳐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면서 한 주 결방 후 재정비해 돌아오겠다고 했으나 광고주들이 제작 지원을 전면 철회하면서 촬영을 지속할 수 없게 됐습니다.

결국 SBS는 작품 폐지를 선택했습니다. 방송 닷새만의 결정입니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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