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한국인 목사가 품귀를 빚는 이유?

2021. 3. 3. 08: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회 책임 혁명]

[안치용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 ]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 목사하고 몇 년 전에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밥 먹다가 "목사님, 천국에서 가장 찾기 힘든 직업이 목사라고 하던데 들어보셨나요?"라고 물었더니, 그 목사는 웃기만 했다. 구차하지만 굳이 내가 기독교인임을 밝히면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기독교 혐오가 아니다), 천국에서 목사를 발견할 확률보다 무신론자를 발견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끔 나의 이러한 생각을 주변에 전하는데, 기독교인이든 기독교인이 아니든 대체로 동감을 표시했다. '존경하는' 목사님들은 나의 농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

정확하게 말해 '개신교' 목사에 대한 이러한 뼈 있는 농담은 꼭 코로나19와 연관된다고 할 수 없지만, 코로나19 국면을 거치며 민낯이 드러난 것은 사실이다.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러운 행동을 한다는 게 문제겠지만 더 큰 문제는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지각하지 못한다는 것이겠다. 비단 전광훈 씨 같은 유사 목사나 전 씨를 따르는 유사 기독교인만 문제가 아니다. 소위 정통 기독교인 중에서도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지각하지 못하는 이가 많다.

지난 1월 27일~2월 12일 125명의 코로나19 확진자를 발생시키고 담임목사도 확진 판정을 받아 격리된 광주의 한 교회는 전광훈 씨의 사랑제일교회와 달리 예수교 장로회 통합교단에 소속된 '정상' 혹은 '정통' 교회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격리에서 해제된 이 교회 박 아무개 담임목사는 코로나19와 관련하여 "하나님이 더 복을 주려는 훈련"이라며 "우리 교회를 핍박한 그들도 피해자이니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빌어주라"라고 설교했다. 박 목사는 또한 "우리는 그래도 최선을 다했고 (대면예배를 진행하는 등) 하나님 뜻대로 하려고 애를 썼잖나. 여러분이 얼마나 충성스럽고 잘했나"라고 자신들의 코로나19 대응을 매우 긍정적으로, 더구나 신앙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빌어주라"는 표현은 방역당국과 정부를 '악'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인한 표현이다. 반성과 사과가 우선이 아니었을까? 교회 용어로 회개하는 게 격리 후 담임목사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니었을까? 복을 빌기 위해 그렇게 자주 행하는 통성기도라도 하며 회개해야 하지 않았을까?

개신교라는 기독교 분파를 만들어낸 마르틴 루터라면, 이 문제에 어떤 의견을 표명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오래전 인물이라 의견을 찾기 어려울 것 같지만 의외로 찾으면 간단하게 나온다. 루터의 시대 또한 '흑사병'이라는 유럽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전염병의 시대였고, 흑사병으로 형제를 잃은 루터는 동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감염병을 잘 알았으며, 종교인으로서 대처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한 듯하다. 루터가 수도사가 된 이유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우연히 벌어진 낙뢰 사건보다는 그 이전에 발생한 흑사병으로 인한 형제들의 죽음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루터는 흑사병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께서 치명적인 전염병을 주셨을 때, 나는 이 병을 막아달라고 주님께 자비를 구하며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다음, 집에 연기를 피우고 환기를 시키면서 약을 받아먹어야 했습니다. 나를 꼭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이라면 가지 않고 피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수도 있고, 나의 사소한 부주의가 이웃을 죽이는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달려갈 것입니다. 이웃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사람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가 어떤 일이든 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그 신앙은 어리석거나 뻔뻔하지 않으며, 사람을 선동하거나 미혹하지 않습니다."

* WA 5, 334f.: 1527년 여름 흑사병이 비텐베르크를 강타했을 때, 루터의 설교(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담임목사 번역(☞ 바로 가기 : 최주훈 목사 블로그))

흑사병에 대한 기독교인의 태도를 정리한, 널리 알려진 루터의 이 설교는 유사 목사 전광훈 씨나 광주의 '정통' 교회의 박 목사와 180도 다른 입장을 표명한다. 하긴 종교라고 상식이 무시될 리는 없지 않은가. 이런 간단한 지각조차 없는 상식 없는 소위 목사, 상식 없는 이른바 기독교인이 기독교와 예수를 욕보이고 있다. "교회가 신의 무덤"(고리키)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회칠한 무덤 위에다 금송아지 올려놓고 헌금이나 많이 내라고 하는 이들을 성직자라고 불러야 옳을까.

구약성서에서 흥미로운 구절을 찾을 수 있다. 모세의 누이로 구약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 인물인 미리암이 피부병에 걸리자 당시 규례에 따라 그는 진영 밖으로 나가 이레 동안 갇혀 있었다. 요즘 말로 격리된 것이다. "미리암이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갇혀 있었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행진하지 아니하다가"(<민수기> 12장 15절)는 구약 구절은 루터의 설교와 일치한다.

전광훈 씨가 '본 훼퍼'라고 성(姓)을 이름과 성으로 분할하여 불러 졸지에 '본회퍼' 가문 족보에서 쫓겨날 뻔한 독일의 목사이자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는 히틀러 암살을 모의하다 총살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한 행적보다 더 유명한 것은 교회를 '타자를 위한 존재'라는 규정한 그의 신학이다. '타자를 위한 존재'인 교회는 결코 '신의 무덤'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상상력을 동원해 보면 이제 천국에서 본회퍼 목사가 '요즘 왜 한국인 목사를 보기 힘든가' 하고 의아해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한국 교회의 쟁쟁한 개신교 목사님들이 돌아가실 텐데, 그땐 아예 천국에서 한국인 목사의 씨가 마를 것 같아 벌써 본회퍼 목사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안치용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 ]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