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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명절,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친정엄마가 식혜를 만들어서 학원 선생님들하고 간식으로 먹으라고 보내셨다. 살얼음이 둥둥 비치는 달콤 시원한 식혜 맛에 설이 바로 코밑이구나 싶었다. 친정에서는 명절 때마다, 제사상 준비에 식혜나 조기 등이 빠지지 않는다. 엄마는 설날이 이제 일주일밖에 안 남았으니 시간 내서 군산 해망동 수산시장에 가자 하셨다. 

작년 연말, 코로나 3차 유행을 막고 연말연시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선포되었다. 가족은 물론 전국 식당에도 5인 이상 동시 입장이 금지된다고 했다. 단 가족의 경우 주민등록표상 거주지가 같은 사람들이 모이면 5인 이상이라도 식당을 함께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음식점을 하는 시동생의 초대로 새해 밥을 먹은 적이 있다.

며칠 전 건축 막노동을 하는 큰동생이 하루 일을 쉰다고 밥 한끼 먹세 하며 전화가 왔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실내 인테리어업은 꾸준히 일이 있어서 거의 쉰 적이 없다고 해 걱정을 덜었다. 단지,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끼고 일을 하니, 땀과 먼지 범벅이어서 혹시라도 기침이라도 하면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일 년을 무사히 지낸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새해에는 백신도 오면 맞고, 어서어서 마스크를 벗고 사람들을 만나면 좋겠다고 했다.

큰동생이 온다하니, 둘째 동생이 같이 밥 먹자고 해서 식당을 찾았다. 지역에서 인기있는 초밥집인데 점심메뉴로 가격이 적당하고 깔끔하다고 두어번 찾았던 곳이다. 남편과 큰동생이 함께 먼저 들어가서 체온측정 후 자리를 배정받았다. 주차를 하고 들어온 둘째동생이 초등생 자식 3명을 데리고 왔길래, 당연히 테이블을 따로 배정 받으라고 했다.

그런데 식당 주인은 가족이냐고 물어 그렇다고 하니, 뒤에 들어온 가족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팀을 이루어 따로 들어왔는데, 단지 내가 가족이라고 말한 것을 가지고 한 팀으로 묶어서 5인 이상이면 신고를 당하고 벌금을 문다고 했다. 정부 방침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분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음식점 사장과 얼마간의 실랑이를 벌인 뒤에 결국 둘째네 팀은 떠났다. 정부가 내린 '가족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체험했다.

포털뉴스에 올라온 기사에서 한 여론조사의 글이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5명 이상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조치를 시행하더라도 가족 간 만남은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연휴(2.11∼14)동안 직계가족이더라도 사는 곳이 다르면 4인까지만 모일 수 있다고 정부는 발표했다. 이 결과는 국민의 50%가 명절 때 가족 간 만남을 원한다는 의견을 표한 것이다(보건복지부, 18세 이상 성인 1천명을 상대로 실시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
  
이 조사에 따르면 국민 다수가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조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 조치가 3차 유행 차단에 효과적이었냐는 질문에 응답자 74.4%는 '그렇다', 22.1%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 것으로 나왔다. 또 응답자의 74.8%는 다중이용시설 제한보다 사적 모임 금지조치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족 간의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조치에는 많은 이가 불만을 보였다. 사적 모임을 금지하더라도 가족 간 만남은 허용해야 한다고 대답한 이가 56.1%였고, 41.0%는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작년에도 우리의 설날은 없었다. 나만해도 어르신들에게, 평소 고마웠던 분들에게, 인사를 가는 대신 작은 선물택배를 보냈다. 감사 인사를 전화와 문자로 주고 받으니, 얼굴도 못 보는 설날이 무슨 재미인가 했었다.

올해도 설날은 우리들 곁에 오지 못할 것 같다. 고령의 친정엄마는 변함없이 명절을 준비하며, 자식들에게 갈비 한 점, 조기 한 마리, 떡꾹 한 그릇 먹이는 재미로 한 해를 보내고 한 해를 맞이하는데, 이번에도 우리들의 발걸음이 머뭇거린다.

형제들이 직계 가족일지라도 사는 곳이 모두 다르니 말이다. 아주 오래전 자식과 형제들에게 들려주고자 성경구절에서 따온 붓글씨체 글 하나가 있다.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이 모두 모여 함께 사는 것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마땅히 정부의 지침에 협조하고 어서 빨리 코로나의 공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내 마음은 다른 이와 다르지 않다. 코로나 확산 수치가 조금 낮아질 만하면 모 종교 단체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다시 또 지역 사회를 마비시킨다.

코로나 확진에 대한 공포와 비협조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와중이니, 무조건 덜 만나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동의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날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이 마음에 시린 냉기가 가득하다.

지역 공공건물에 쓰여진 설날맞이 홍보문구는 온통 '찾아오지 마라', '못 찾아갑니다' 등 만나지 않는 것만이 상책이다라고 한다. 가족끼리 모였다가는 벌금 10만 원이나 내야 하니, 그 돈으로 각자 설 명절 보내고 나중에 보자 한다. 그런데 도대체 나중을 알 수 없으니 더 쓸씁할 뿐이다.

나이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여전히 코로나 이전 세상을 그리워하는 내가 시대에 뒤진 삶을 살고 있는 듯 마음이 착잡하다. 사람이 없으면 세상이 어디에 있는가. 최소한 만날 사람은 만나야 되지 않는가라고 외치고 싶지만, 또 이렇게 하면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 일테니,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다.

나보다 더 나이 드신 엄마가 설날 차례상을 준비하지 않을 리 없고, 일단 엄마의 주문대로 음식 준비하는 것이나 도와 드려야지.

태그:#5인이상가족집합금지, #설날제수용품, #사회적거리두기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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