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행복했어요" '경이로운 지청신' 이홍내 이야기[인터뷰S]

김현록 기자 2021. 1. 3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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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이홍내. 제공|엘줄라이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봤다면 무시무시한 다크 포스를 내뿜던 최종빌런 '지청신'을 기억할 것이다. (까마득한 온미디어 시절을 모두 합쳐) OCN 개국 26년 만의 최고시청률을 기록한 이 드라마에서 막강한 카운터들을 너끈히 홀로 상대한 그는 '경이로운 소문'의 당당한 주역.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만화보다 더 소름끼치는 지청신을 연기한 이가 바로 배우 이홍내(31)다. 비주얼부터 100% 싱크로율을 자랑한 그가 등장하는 순간마다 마치 장르가 공포물로 바뀐 듯 압도적이었다. 막강한 악의 축 덕에 악귀 잡는 이들의 활약은 더 짜릿해졌다.

가만히 있어도 살벌한 냉기가 흘러나오던 '지청신'에게 너무 몰입했던 걸까. 지청신 타도와 함께 '경이로운 소문'이 막을 내린 며칠 뒤, 이홍내를 마주하고선 잠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매끈한 두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삭발 헤어, 날렵한 얼굴선은 드라마와 똑같았는데, 서늘했던 '지청신'은 간곳 없었다. 이홍내는 "누구 하나 저를 편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고 지난 시간을 되새기면서도 싱긋 싱긋 웃었다. 드라마에선 한 번도 못본 미소였다.

▲ 배우 이홍내. 제공|엘줄라이엔터테인먼트

"이 역할이 저에게 필연이었나보다 생각을 했어요."

인기웹툰 '경이로운 소문'이 드라마화 돼 배우 오디션을 진행한다는 이야기가 슬슬 들려올 때만 해도 지금을 상상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오디션을 먼저 본 친구가 대뜸 '너 같은 사람을 찾고 있다' 하니, 심지어 같은 말을 네 명에게서 듣고나니 묘한 궁금증과 끌림이 생겼다. '이 캐릭터, 내가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즈음, '소문이' 조병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청신' 캐스팅을 고민하던 유선동 PD에게 눈여겨보던 이홍내의 사진을 보여주며 추천한 것. 두 사람은 3년 전 웹드라마 '독고 리와인드'에 함께 출연했지만, 정작 마주하고 촬영한 적은 없는 사이였다. 그렇게 오디션 기회를 얻은 이홍내는 당당히 '경이로운 소문'에 탑승했다. 물론 만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힘들었어요. 그 모든 게 부담감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제 안에 있는 악마의 기운을 모두 끌어다 써야한다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지청신'이 카운터와 대적했을 때, 어떻게 서늘하고 기괴하게 넘쳐나는 에너지로 이들을 불안하게 할 수 있을까. 나의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까 부담이 컸어요."

원작을 따라해야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과거, 원작에 매여 너무 뻔한 인물을 그린 적이 있다고 털어놓은 이홍내는 "웹툰 속 지청신은 너무 재밌고 임팩트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며 "헤어스타일은 비슷하지 않았을까"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신 여러 작품을 참고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노인을 우한 나라'의 하비에르 바르뎀, '다크나이트'의 '조커' 히스 레저를 참고하기도 했다. 무섭게 집중한 그의 기운이 현장에서도 남다르긴 했는지, 현장 스태프가 "청신이 착해" "순수한 애야"라고 굳어버린 그의 상대들을 다독이곤 했다.

하지만 행복한 촬영이었다. 피할 수 없는 카운터 대표 조병규와의 액션 맞대결, 넘버2 악귀 '백향희' 옥자연과 호흡은 신나고 만족스러웠다. "병규님과 액션은 파트너와 무용을 하는 느낌"이었다는 이홍내는 "옥자연님과 촬영은 끝나지 않기를 바랄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팬들의 지지까지 끌어냈던 백향희와 '악귀 러브라인'은 내심 흐뭇했던 포인트였다.

"백향희는 지청신이란 친구에게 어쩌면 처음 생긴 친구이자 동료이자, 모든 게 처음인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악귀로서 행동하는 거지만 소중하다고. 그래서 화도 내고, 서툴게 다가가지만 내면에 있는 미묘한 사랑, 인간적인 호기심 같은 걸 표현하려고 저는 애를 썼거든요. 시청자들이 지청신 백향희를 뭔가 예쁘게 봐주셔서 저는 너무 좋았어요."

지청신의 죽음과 응징으로 시즌1이 마무리됐으니 시즌2에 그를 못 보는 게 다만 아쉬울 뿐이다. 이홍내는 "묘한 상실감이 있더라"고 고백하며 '경이로운 소문'의 팬으로서 시즌2엔 더 강력하고 에너지를 가진 배우가 그리는 빌런을 보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라 했다.

"감독님께 머리를 멋지게 길러서 카운터 오디션을 보겠다. 공정하게 평가해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시즌2가 어찌 될 지 모르니까 그때 가서 이야기하자고, 눈을 피하시더라고요."(웃음)

▲ 배우 이홍내. 제공|엘줄라이엔터테인먼트

'경이로운 소문'으로 주목받았지만, 사실 그는 한 편으로 탄생한 반짝 스타가 아니다. 2014년 영화 '지옥화'가 데뷔작으로 프로필에 올라 있지만, 독립영화와 학생단편을 가리지 않은 그의 출발은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 직업군인을 꿈꿨지만 군에 들어가 생각이 바뀌었고, 전역 후 무엇보다 사랑했던 영화 일을 하겠다 마음을 먹었다. 독립영화와 학생영화를 마다않고 출연했다. 고등학교 동아리 단편영화도 가리지 않았다.

'모델 출신'이란 이력도 따라붙지만 이홍내는 "실제로 왕성하게 모델 일을 하고 배우로 전향하신 분께는 죄송스런 이야기"라며 "새내기, 모델 지망생에서 배우가 됐다는 게 맞는 말 같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하지만 한 순간도 연기를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집이 경남 양산인데, 우리나이로 19살에 서울에 왔어요. 그 시간 동안 위기나 힘듦을 느낀 순간이 없어요. 왜냐면 돌아갈 곳이 없었거든요. 이 일이 아니면 다른 걸 해야지, 그런 대책이 없었어요. 부모님은 '이제 그만 취직해야지' '남들처럼 살아야지' 하셨는데 그래서 더더욱 갈 곳이 없었죠. 금전적으로 힘든 순간에도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어요."

▲ 배우 이홍내. 제공|엘줄라이엔터테인먼트

타향살이 하며 꿈을 키워온 10여년 간 이홍내가 했던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다 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생각하는 모든 아르바이트를 다 했다"는 그는 낯가림이 있는데다, 짬짬이 오디션 보고 촬영을 하려면 고정적인 일을 할 수 없어 주로 인력사무소에 갔단다. 그는 "일용직이 나이스하다"며 "서울에 제가 지은 아파트가 꽤 된다"고 귀띔했다. "몸은 고돼도 그 일이 있어 서울에서 버틸 수 있었다. 현장 가면 기특해 하고 좋아해 주셔서 대접받으며 일했다"고 '○○ 인력소 반장님'에게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경이로운 소문' 잘 봤다고, 먼저 연락까지 주셨더란다.

집에서는 당연히 난리가 났다. 무엇보다 전과 달라진 부모님의 반응이 이홍내에게는 가장 기쁘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연기를 계속해라, 계속 해도 될 것 같다, 엄마가 응원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받고 소중히 저장했다. 이홍내는 "그런 말씀을 해 주신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곧 다시 담담해졌다. 시청률 높은 드라마에서 '지청신'이라는 비중있는 비중있는 캐릭터를 맡아 많이 칭찬을 받았지만, 그렇기에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전에 작업한 드라마, 영화 모두 늘 최선을 다했거든요. 통편집된 적도 많고, 어깨만 뒷모습만 나오기도 해요. 나온다고 해서 봤는데 왜 안나오냐 하시지만 저는 알죠. 그게 제 어깨인 걸. 지금 너무 행복하지 않냐 하시는데, 한 마디 하고, 한 신이 나오던 그 때도 행복했어요. 그 순간이 있어서 지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심받고 비중있는 역할을 했다고 해서 제 삶이나 배우 일에 변화는 없을 것 같아요."

이홍내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존경하는 선배 배우 진선규가 한 말이라고 했다. "우주에 있는 '좋은 배우'라는 별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속도가 어떻든 방향성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의 목표입니다."

▲ 배우 이홍내. 제공|엘줄라이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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