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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임후 3년 풀렸다”…대형로펌 ‘대법관 모시기’ 왜? [로펌 인사이드]
연매출 100억이상·3년간 취업제한
로펌들 ‘전관 메리트’ 여전 판단
상고심서 대법관출신 변호사 선호

인적 네트워크·재판대응능력 검증
민일영·이상훈·이인복 前대법관
세종·김앤장·화우 등 ‘대형로펌行’

임기 짧고 젊은전관 배출 구조 원인
법조계 ‘원로법관제’ 적용 확대 의견도
(왼쪽부터) 민일영 전 대법관, 이상훈 전 대법관, 이인복 전 대법관

공직자윤리법상 3년간의 취업제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대형로펌의 전직 대법관 영입 경쟁이 치열하다. 이른바 전관예우를 방지하기 위해 연 매출액 100억원 이상의 업체에는 일정 기간 취업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이 기간이 지난 뒤에도 대형 로펌들은 ‘전관 메리트’가 여전하다고 여기는 셈이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규모 로펌인 김앤장법률사무소는 최근 이상훈(65·사법연수원 10기) 전 대법관을 영입했다. 이 변호사는 2017년 퇴임하고 개인사무실을 운영해왔다. 정확히 3년을 채운 뒤 자리를 옮긴 셈이다. 2016년 퇴임한 이인복(65·11기) 전 대법관 역시 법무법인 한누리 고문변호사로 재직하다 최근 법무법인 화우로 이동했다. 2015년 퇴임한 민일영(66·10기) 전대법관은 법무법인 세종에서 최근 영입했다. 민 전 대법관은 특히 2016~2018년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2019년 기준 김앤장법률사무소의 연 매출액은 1조960억원, 세종 2080억, 화우 1700억원이다.

공직자윤리법에서 정한 취업제한 기간 3년은 일종의 ‘냉각기’다. 대법관 임기가 6년이지만, 동료 대법관도 퇴임을 하고 함께 일했던 재판연구관도 2~3년 단위로 인사이동을 하기 때문에 재직시절 인연이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하지만 상고심 사건에서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찾는 수요가 있기 마련이고, 실제 대법관 출신은 재판대응 능력이 검증됐을 뿐만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도 고스란히 회사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 고위직 판사 출신 법조인은 “대법관 출신이 이름을 올렸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판사도 사람이다. 서면에서 이름을 보면 아무래도 더 꼼꼼히 보게 되는 정도는 있다”고 했다.

이상훈 전 대법관은 1,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김경수 경남도지사 상고심 변호를 맡았다. 민 전 대법관과 이인복 전 대법관은 최근 두산인프라코어의 8000억원대 매매대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상대편 대리인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퇴임 대법관의 대형로펌행은 법조계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우리나라 대법관은 이례적으로 임기가 짧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법관이 종신직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있기 어려운 구조다.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관도 정년만 70세로 정하고 있을 뿐, 임기는 따로 없다. 법조 경력이 길어야 판사로 임관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그동안 사법시험에 합격해 바로 법원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대법관이 되는 연령도 그만큼 낮았던 것도 한 원인이다.

한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대법관을 했다고 해서 아예 은퇴하라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 면이 있다”고 말한다. 대법원장을 지낸 법조인은 “과거 김영란 대법관만 해도 그렇다. 너무 일찍 대법관이 됐는데, 결국 법원이 인재를 오래 쓰지 못한 셈”이라고 했다. 반면 법조윤리에 해박한 한 변호사는 “대법관 출신이어도 큰 법인을 가면 주 고객이 대기업이다, 연금도 적지 않게 나오는데 변호사로서 사회공헌을 하는 일은 개인사무소를 열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관 출신으로 다른 공직을 맡거나,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한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었던 김영란(65·11기) 전 대법관은 48세에 대법관에 파격 발탁됐고, 퇴임시 54세에 불과했다. 다만 김 전 대법관은 국민권익위원장,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 등 공적인 업무를 맡고 있다. 가장 최근에 퇴임한 권순일(62·14기) 전 대법관은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2010년 이후 퇴임한 인사들 중에서는 이홍훈(75·4기) 전 대법관이 법무법인 화우, 김능환(70·7기) 전 대법관이 법무법인 율촌, 김지형(63·11기) 전 대법관은 법무법인 지평, 박일환(63·5기) 전 대법관 법무법인 바른, 차한성(67·7기) 전 대법관이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원로법관제’ 적용을 확대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고위직 법관을 지낸 인사가 일선 재판부에 복귀하거나, 연구업무를 통해 재판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 개념이다. 현재 대법원은 법관인사규칙을 마련해 법원장이 임기를 마친 경우 사표를 내지 않고 재판업무를 계속 할 수 있도록 하는 원로법관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조직법상 대법관과 일반 판사는 신분이 다르게 규정이 돼 있다. 정년도 대법관의 경우 70세, 판사는 65세로 각각 다르다. 신분상 ‘판사’인 법원장은 곧바로 일선 재판부에 복귀할 수 있지만, ‘대법관’에 원로법관제를 적용하려면 별도의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2018년 퇴임한 김용덕(64·12기) 전 대법관은 일찍 대법관이 된 탓에 임기를 마치고도 판사 정년이 남았다. 김 대법관은 후보자였던 2011년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이 “전관예우 등 병폐를 없애기 위해 대법관 임기를 마치고 난 뒤 고등법원 판사나 단독판사를 맡을 수 있느냐”고 묻자, “법원에서 필요로 한다면 충분히 응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지만, 임기 만료와 동시에 법원을 떠났다. 좌영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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