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안 무섭다"는 젊은이들에 신음하는 일본 열도

김재훈 일본 ‘라미TV’ 운영자 2021. 1. 2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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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날 행사 취소' 정부 발표 아랑곳없이
새내기 성인들 곳곳에서 소란 빚어 불상사

(시사저널=김재훈 일본 ‘라미TV’ 운영자)

1월11일은 일본에서 매년 많은 관심과 화제를 낳는 '성인의 날'이었다. 그런데 지난 7일, 일본 정부는 신종 코로나 확진자 폭증으로 도쿄 및 인근 세 지역에 긴급사태선언을 발령했다. 이로 인해 많은 지자체가 부랴부랴 성인식을 취소하거나 온라인 행사로 대체했다. 성인식 개최를 기대했던 새내기 성인들과 관련 업계가 큰 혼란에 빠진 것은 물론 많은 소동이 벌어졌다. 이렇듯 일본에서 성인의 날은 새내기 성인들뿐만 아니라 지자체와 관련 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날이다.

일본에서는 매년 1월의 두 번째 월요일로 지정된 '성인의 날'에 전국의 지자체를 중심으로 성인식이 대규모로 열린다. 그리고 성인식에 참가하는 화려한 기모노 차림의 여성과 일부 남성의 모습은 유명한 풍물시(風物詩)이기도 하다. 또한 고향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동창회의 성격도 크다. 마치 명절과 같은 분위기인 셈이다. 일부 몰지각한 참가자가 행사장 주변에서 소란을 피우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매년 볼 수 있는 하나의 풍경이 됐다.

1월11일 '이례적인 성인식'이라는 자막과 함께 기모노 차림으로 성인식에 참가한 여성들의 모습을 보도한 니혼TV의 밤 메인 뉴스 사진 ⓒ니혼 TV

갑작스러운 성인식 취소에 관련 업계 비명

최근 신종 코로나 확진자 폭증으로 정부가 성인의 날을 불과 나흘 앞두고 긴급사태선언을 발령하자, 이로 인해 대부분의 지자체가 허둥지둥 성인식을 취소하거나 온라인 행사로 대체했다. 반면 성인식을 강행한 일부 지자체도 있어 새내기 성인들은 물론 관련 업계까지 큰 혼란에 빠졌다.

이에 대해 현지 언론매체인 '변호사닷컴'은 1월5일 '성인식 중지로 파문 "기모노 구매 비용 56만 엔 돌려줘" "수입원이 끊겼다", 예약 취소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비슷한 보도가 쏟아졌다. 이렇듯 갑작스러운 행사 중지 또는 연기로 인해 일본 각지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선 도쿄의 신주쿠구(區)는 끝까지 성인식을 개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1월8일 행사 중지를 발표했다. 대신 행사장에 포토존을 설치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전국 최다인 3만6853명의 새내기 성인이 탄생한 요코하마시는 두 곳의 행사장에서 8번에 나눠 성인식을 열었다. 도쿄에서 유일하게 성인식을 개최한 스기나미구의 경우 구청장이 축사 도중 일본 정부와 도쿄도로부터 행사 자제를 요구하는 압력을 받았다는 사실과, 이에 다른 구청장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전화를 자신에게 했다는 등의 정치성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렇듯 일본 지자체들이 성인식 개최에 연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성인의 날'은 명절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사람이 고향을 방문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자체장에게는 성인식 행사가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또한 새내기 성인들의 성인식 참가를 준비하는 데 다양한 업계가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의 경우 대부분 매우 비싼 기모노를 구매하거나 빌린다. 게다가 기모노 착용부터 메이크업과 머리 맵시까지 전문가의 손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기모노 업체는 물론 미용업계도 큰 매출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날이다. 따라서 신종 코로나로 인한 성인식 취소는 이들에게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그와 함께 성인의 날은 새내기 성인들에게는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겨진다. 그래서 보통 성인식이 끝난 후, 따로 모여 회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관련 업계가 울상을 짓는 이유다. 성인식 개최를 강행한 일부 지자체에서는 코로나 방역을 의식해 행사가 끝난 후 참가자들에게 회식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받거나, 회식 자제 안내서를 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회식 자제 당부에도 밤이 되자 번화가에 많은 새내기 성인이 몰린 모습이 방송국 카메라에 잡혔다. 각 지역의 명소에 삼삼오오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TV아사히는 1월11일 '성인식이 취소됐는데도 새내기 성인들이 전철역 앞에 집결, 도대체 무엇 때문에?'라는 제목의 보도를 하기도 했다. 매년 성인식이 끝난 후 행사장 주위에서 일부 참가자가 소란을 피우는 장면 역시 올해도 곳곳에서 연출됐다. 코로나19 확산 분위기에서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예를 들어 요코하마시의 행사장 근처에서는 일부 집단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흡연은 물론 고성을 지르며 술을 병째로 돌려 마신 후 바닥에 던져 깨뜨리기도 했다. 게다가 오토바이까지 타고 질주하는 아찔한 장면도 연출됐다. 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결국 대규모 경찰이 출동해 다른 참가자들과 떼어놓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과 일촉즉발 상황까지 가는 모습까지 펼쳐졌다. 몇몇은 과음으로 쓰러져 응급차로 이송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장면은 '취해서 춤을 춘 새내기 성인, 긴급사태선언하에서 요코하마의 성인식'이라는 제목으로 AFP가 보도하는 등 외신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1월11일 요코하마시가 주최한 성인식에 참여하기 위해 몰린 인파를 보도한 후지TV의 밤 메인 뉴스 사진 ⓒ후지TV 캡처
성인식이 끝난 후 행사장 근처에서 일본주를 병째로 마시는 참가자의 모습. '돌려 마시기'라는 자막과 함께 1월12일 보도한 후지TV의 오전 정보 방송 ⓒ후지TV 캡처

"성인식 행사장 밖에 수천 명 모여 있어"

1월12일 후지TV에서 방송한 오전 정보 방송인 《도쿠다네》에서는 소동을 일으킨 남성들과 인터뷰를 했다. 코로나 상황인데 무섭지 않으냐는 질문에 한 청년은 웃으며 "그런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PCR 검사도 받지 않았다. 무섭지 않다"고 대답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다사다난했던 올해 성인식에 대한 일본 네티즌의 반응을 보면 "오히려 국회의원님이 서약서를 써주었으면 좋겠네. '긴급사태선언이 해제되기까지는 회식하지 않겠습니다. 어겼을 경우, 의원직을 사퇴하겠습니다'라고. 젊은이만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언론사 카메라에 찍힌 분은 평생 인터넷에 부끄러운 사진이 남는다. '요코하마 성인식 춤추다'로 검색하면 나올 거야. 장래에 창피한 건 본인일 테니 상관없지만. 그런데 이런 분은 오히려 자랑하시겠지?" "성인식 행사장 근처에 살고 있다. 텅 빈 행사장 안에서 시장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행사장 밖에는 수천 명이 모여 있었다. 게다가 새내기 성인들의 싸움도 보였다. 이런 성인식을 해야 하는 의미가 있나? 마스크를 안 쓴 성인들도 절반 정도 있었다. 2주일 후, 기타큐슈시는 코로나 감염이 증가할 것이다" 등의 불만과 조롱이 이어졌다.

일본은 긴급사태선언 발령 이후에도 거리에 사람이 그다지 줄어들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올해 성인식 장면도 신종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이 많이 줄어든 일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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