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8년차 연극 배우 강애심 "공연이 아직도 재미있어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합류..내년 공연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공연이 아직도 너무 재미있어요."
38년차 배우 강애심(57)의 꾸밈없는 애정 고백에 듣는 이까지 설렌다. 연극, 뮤지컬에 계속 출연하는 이유에 대해 더 물을 까닭이 없다. 그녀가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작품 완성도가 절반은 보증된다고 해서, 대학로에서는 '작품성 보증수표'로 통한다.
얼굴이 낯설지만 OTT에서 마니아를 양산 중인 드라마 '멜로는 체질'에서 '임진주'(천우희)의 쿨해 보이지만 한없이 따듯한엄마 역을 맡아 이름을 알렸다.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강애심은 '베르나르다 알바'에 대해 "압력솥처럼 여러 가지 욕망이 억눌린 상황이, 결국 폭발력을 갖고 분출돼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린다"고 말했다.
강애심은 내년 1월22일부터 정동극장에서 재연하는 이 작품의 '마리아 호세파'역에 캐스팅됐다. 미국 뮤지컬 작곡가 겸 극작가 마이클 존 라키우사의 뮤지컬로, 20세기 스페인 시인 겸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 원작이다.
1930년대 초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무더위와도 같은, 숨 막힐 지경의 암울한 시대 정서까지 담아낸 풍경화로 2018년 국내 초연 당시 호평을 들었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다섯 딸들은 겉으로 거룩하고 성스러워 보이지만, 내면은 자아와 성적 본능에 뒤틀려 있다. 알바는 남성 중심의 지독한 폭력 구조의 사슬을 답습해 억압적이다. 알바의 노모인 호세파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데, 특유의 존재감을 발산하며 그로테스크한 극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한다.
'강애심의 연극'이라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었던 '빨간시' 등을 본 관객에게는, 그녀가 가진 내공과 에너지는 이미 각인됐다. 초연 당시 알바 역으로 호평을 들었고, 이번에 프로듀서로도 나서는 정영주가 프로덕션을 꾸리면서 강애심을 제일 먼저 찾아간 이유다.
강애심은 앞서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원작으로 삼은 다른 공연물에 출연한 적이 있다. 지난 2015년 그로테스크한 연출력이 일품인 김정 연출의 입봉작인 연극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었다.
자유가 없는 것에 익숙해져 인간의 본성을 잊어버리고 사는 딸들, 자신이 만든 규율로 자식들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 버린 어머니, 그 사이에 기생하는 하녀 '폰치아'를 맡아 왜곡된 사회상을 그리는데 일조했다.
"폰치아는 하녀의 위치에 있다기 보다 '제2인자'처럼 굴었어요. 알바를 대신해 딸들을 관리·감독하고, 엄마보다 더 간섭을 했죠."
이번 뮤지컬에서 맡은 호세파는 정신 질환과 치매가 있지만 마냥 미쳐 있는 느낌은 아니다. 이 세계를 달리 보는 시선을 갖고 있다. 결혼 제도를 통해 행복을 느끼지 못한 인물. 알바 가족의 불안·우울의 계보를 만든 구심점과 같다.
강애심은 호세파의 매력뿐만 아니라 안달루시아 지방의 춤인 플라멩코의 에너지에 빠져들었다. 면도날 같이 날카로운 극 중 배우들의 포효가 슬프면서 아름답게 그려지는데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호세파는 플라멩코 장면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다만 박수도 다른 에너지로 칠 수 있다는 걸 배웠다며 흐뭇해했다. 공기를 많이 안고 박수를 쳐, 소리를 크게 내는 방법을 시연하며 "이렇게 하나씩 배워가는 것도 공연의 묘미"라고 미소지었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또 다른 특징은 무대 위에는 10인의 여성 배우만 등장한다는 것이다. 더블캐스팅을 포함 총 18명의 여성 배우가 캐스팅됐다.
초연 무대를 함께 했던 정영주, 황석정, 이영미, 오소연, 김국희, 전성민, 김히어라, 김환희 배우가 이번에도 함께 한다. 강애심을 비롯 이번에 새로 합류한 배우는 이소정, 한지연, 최유하, 김려원, 임진아, 황한나, 정가희, 이진경, 이상아다.
강애심은 유독 여성들만 출연하는 공연물과 인연이 깊었다. 뮤지컬 '넌센스', 연극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 그랬다.
위안부 출신이라는 걸 평생 감추고 살아온 할머니 '금자' 역을 맡은 '빨간시'는 위안부 사건과 우리 현대사의 민낯인 배우의 성납상 사건을 엮어 우리 아픈 역사의 질곡이 새겨진 여성들의 삶을 함께 돌아보게 만들었다.
"여성배우들끼리 있으면 서로 더 보듬어주고, 잘해주려고 노력해요. 15년 전 쯤에 우연히 명리학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구가 돌아가는 것처럼, 남성의 시대에서 여성의 시대가 올 거라고 했어요. 연극계도 그렇고 정치계도 그렇고 경제적으로도 그렇고요. 하지만 특정 성별의 상위 느낌이 아니라, 균형과 조화로운 형식이죠. 지구촌 화합의 장이라고 할까요. 여성들이 기량을 더 발휘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해요. '베르나르다 알바'도 그 하나죠."
강애심은 어릴 때 막연하게 배우를 꿈 꿨다. 시작은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9)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연기, 노래에 대한 갈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때 합창반을 거친 그는 대학의 유아교육과를 들어가서도 연극 동아리를 기웃거렸다.
1983년 학교 선배가 차린 극단에서 '더 넥스트'로 데뷔하게 됐다. 처음엔 유치원 교사 일을 병행하기도 했다. 1990년 이강백 작가의 '칠산리'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연기상을 받으면서 점차, 연기의 맛을 알아가게 됐다.
민중극단을 거쳐 서울시극단에 몸 담기도 했던 강애심은 2009년 김동현 연출의 '다윈의 거북이'에서 이백살이 넘은 늙은 거북이 해리엇을 맡아 호평을 들었다.
"연기는 남을 이해하는 행위예요. 나랑 상극이 되는 기운을 갖고 있더라도 '그래서 그렇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죠. 그걸 통해서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도 있죠."
2010년 공연한 이해성 작가의 '살'도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혼자 국토종단을 하는 등 온 몸과 온 마음으로 글을 쓰는 이 작가를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그의 신념을 믿고, 같은 해 그가 창단한 극단 고래에 들어갔다. 이듬해 공연한 '빨간시'는 이 극단의 창단작이었다.
강애심은 연극을 처음 시작했을 때, 본인의 키가 작고 체구도 왜소해 중요한 역을 맡지 못했다고 했다.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죠. 열심히 하다보니까 저를 써 주셨어요. 맨 처음 저를 알아본 작품이 김동현 연출님의 '다윈의 거북이'었죠."
느리지만, 거북이처럼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걸어온 강애심은 이제 물 만난 물고기가 됐다. "전 궁금증이 생기면, 일단 몸으로 부딪혀요. 말과 감정을 줄이고, 직접 시도해보는 것이 해답을 주더라"고 했다.
강애심은 "코로나19시대, 이 고난의 시기가 모두에게 힘든 것은 맞지만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코로나19 초반에 연극을 할 때 객석의 관객분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계시니까, 언뜻 외계인과 소통하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이 힘겨운 상황에서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죠. 그 때 저희가 하는 일에 대한 절박함, 절실함을 느꼈죠. 인공지능(AI)이 발달해서 연기까지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무대 위 연기는 '따뜻한 피'를 갖고 있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40년 가까이 수많은 캐릭터를 감당해왔는데 더 맡고 싶은 배역도 있을까. 할리우드 배우 리즈 위더스푼의 얼굴이 스치는 강애심이 부끄러워하며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아직 한번도 제대로 된 로맨스를 해보지 못했어요."
정동극장과 브이컴퍼니가 공동제작하는 '베르나르다 알바'는 내년 3월14일까지 공연이 예정됐다. 지난 7일 티켓을 오픈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가 2.5단계로 격상함에 따라 미뤘다. 오는 31일 티켓 오픈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신혼 아내 살해한 뒤 상주 맡은 남편…체포되자 '씨익' 웃으며 "다녀올게요"
- '음주 사체유기' 조형기, 밤무대 근황 "TV에 XX들이 애들만 써"
- "기성용 대리인 허위 입장문에 피해" 폭로자들, 손배소 2심도 패소
- 박나래 55억 집 도둑은 지인?…기안84 "주변에 사기꾼 있어"
- 노래방 女사장 숨진 채 발견…가슴에 큰 자창
- '이병헌♥' 이민정, 붕어빵 2살 딸 공개 "완전 애기"
- 70억 추징 불복…유연석, 30억대로 줄었다
- '출산 임박' 손담비, 얼굴 충격 "쥐젖 100개 넘게 빼야"
- 고소영도 못 피한 '녹색어머니회' 활동 비화…"맘카페 뒤집어져"
- 구준엽은 12㎏ 빠졌는데…서희원 전남편, 18세 연하와 호화 결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