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당당하게 살려면 '하나님의 자녀' 정체성 가져야

백상현 2020. 12. 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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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철 목사 잠언은 복음이다 <16>
송상철 미국 애틀랜타 새한교회 목사(왼쪽)가 지난달 29일 미국 조지아주 킴벌브릿지 교회 주차장 확장 기공 예배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잠언 30장 29~31절은 참 특이한 말씀이다, ‘왜 이런 말씀이 성경에 있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구절은 사자와 사냥개, 숫염소의 걸음걸이와 모습을 말하고 있다. 왜 이런 특이한 내용이 성경에 들어가 있을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은 영생을 주는 구원의 말씀이다. 의미 없이 그냥 쓰인 말씀은 하나도 없다.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이란 말은 당당하고 담대하게 사는 것을 뜻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인 우리가 당당하고 멋지게 살기를 원하신다. 어떻게 하면 당당하고 멋지게 살 수 있는가.

첫째, 사자처럼 담대하고 당당해야 한다.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와.”(잠 30:30) 사자는 ‘백수의 왕’으로 불린다. 어떤 짐승이 오더라도 제 길을 바꾸지 않는다. 사자의 강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사자가 강한 것은 사자로 태어나 사자로 자랐기 때문이다. 백수의 왕인 사자의 유전인자를 받아 태어났기에 강한 것이다.

영적인 차원에서 이 점은 아주 중요하다. 크리스천인 우리의 강함과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돈이 많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권세가 높으면 당당해지는가. 물론 그런 요인들이 있다면 잠시는 당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고난을 당하고 죽음의 문턱에 이르면 그 당당함을 유지하지 못한다. 재벌도, 교수도, 심지어는 대통령을 지낸 사람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 자녀로 출생한 성도는 재산과 학식, 권세의 유무와 상관없이 끝까지 당당하다. 본래 당당한 존재로 출생했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도 사는 존재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정체성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예수 십자가 보혈로 모든 죄를 사함 받았고 모든 저주와 사망, 심판은 내게서 떠나갔다. 그러므로 당당하길 바란다. 사자처럼 당당하게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제 길을 걸으며 살려면 하나님 자녀로 거듭나야 한다. 내 안에는 승리하신 예수님이 계신다. 나의 외면이 아니라 내면에 계시는 예수님을 항상 기억하자.

둘째, 사냥개처럼 후퇴하지 말고 충성해야 한다. 잠언 30장 31절에 사냥개가 나온다. 사냥개는 사냥감을 잡을 때까지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믿음의 사람은 사냥개처럼 뒤로 물러서지 않고 목표를 향해 끝까지 달려가는 불굴의 정신을 지녀야 한다.

사냥개는 주인과 함께 사냥터로 가면 앞장서 꼬리를 흔들며 달려간다. 귀를 쫑긋 세우고 앞으로 돌진하는 사냥개의 모습은 멋있다. 우리 역시 사냥개처럼 멋지게 충성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며 성령님이 나를 도와주신다. 험산 준령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뒤로 후퇴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셋째, 숫염소처럼 앞서가고 올라가야 한다. 숫염소의 특징은 앞서간다는 것이다. “너희는 바벨론 가운데에서 도망하라 갈대아 사람의 땅에서 나오라 양 떼에 앞서가는 숫염소 같이 하라.”(렘 50:8)

숫염소는 끌려가지 않고 항상 앞서가는 특성이 있다. 숫염소는 모험하기를 좋아한다. 즐겨 절벽 위의 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믿음에는 모험적 요소가 있다. 인간의 생각과 상식으로는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다 알 수 없기에 믿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다. 믿음의 모험을 하며 가다 보면 믿음대로 된다. 이것이 믿음이 지닌 신비다.

숫염소는 ‘오르는 자’란 뜻이 있다. 높은 곳에 올라가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자기 은신처에서 기쁨과 안식을 누린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내려가지 말고 하나님을 앙망하며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높은 곳에 오르면 세상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살게 된다.

넷째, 왕처럼 백성에게 희망을 주며 살아야 한다. 잠언 30장 31절에 ‘당할 수 없는 왕’이 나온다. 29절을 원문대로 번역하면 “잘 가는 것들 셋이 있다. 그리고 가는 데 당당한 네 번째가 있다”이다. 원문은 앞의 셋과 네 번째를 구분한다. 네 번째 나오는 것이 앞의 셋보다 차원이 다르게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네 번째로 위엄 있는 존재는 아무도 당할 수 없는 왕이다. ‘당할 수 없다’는 말은 저항하고 거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왕은 최정예 부대의 호위를 받으며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고 위풍당당하게 간다. 왕은 신하나 백성들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다. 언제나 위엄이 있다.

성경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세상의 모든 왕을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왕 중의 왕이시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막거나 거역할 수 없다.

우리 성도들은 이렇게 위대한 왕이신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분의 자녀로서 왕권을 가진 존재다. 믿는 사람은 누구 앞에서도 위축될 필요가 없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며 우리의 왕이시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위축되지 말고 왕의 자녀답게 왕 같은 제사장으로 당당함을 갖고 살아 나가자.

송상철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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