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생체 시계' 텔로미어 자라게 하는 비밀 '알트(ALT)' 에 주목하라

성상현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후연구원 2020. 11.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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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염색체(회색) 끝부분을 덮고 있는 텔로미어(흰색). 일반적인 텔로미어의 길이는 세포가 세대를 거듭하며 분열할수록 점차 짧아진다. 미국 에너지부 휴먼 게놈 프로젝트 제공(U.S Department of Energy HumanGenomeProgram)

“나의 시작에는 나의 끝이 있다 (In my beginning is my end)”  영국 시인 T.S. 엘리엇, ‘4개의 사중주’ 中

‘텔로미어’는 DNA 집합체인 염색체 끝부분에 있는 단순 반복 서열을 일컫는다. 세포 분열이 일어날 때 텔로미어는 분자적으로 가장 중요한 장소다. 유전정보 전체를 보전하기 위해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하고 연장하는 것은 결국 생명의 시작과 끝을 결정짓는 출발점이 된다. 최근 연구자들은 새롭게 발견된 텔로미어 길이 연장 기전인 ‘알트(ALT)’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협동하는 작지만 거대한 생태계다. 그 중심에는 모든 생명 현상이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 정보의 집합체인 DNA가 있다. 세포가 외부 환경에 반응하며 다른 세포에게 신호를 전달하고, 특정 기능을 수행하도록 전문화(분화)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가 DNA에 저장돼 있다. 그렇기에 DNA의 파괴나 손상을 막기 위해서는 세포 내 구성원들이 다양한 층위(단계)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

DNA를 잘 유지하는 것은 세포 분열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과 직결된다. 세포의 분열 능력이 특히 중요한 경우는 생식세포와 줄기세포다. 생식세포를 통해 유전정보가 영구적으로 전달되려면 생식세포의 분열 능력이 세대를 거쳐도 계속 유지돼야 한다. 줄기세포는 개체 발생 초기에는 다양한 조직과 기관을 생산하고, 어느 정도 완성이 된 개체에서는 전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하위의 세포들을 보충해 준다. 그런데, 이때도 줄기세포가 활발히 분열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텔로미어(telomere)’는 이렇게 세포가 분열할 때 유전정보를 보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포 분열의 타이머, 텔로미어

텔로미어 연구로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블랙번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샌프란시스코) 교수는 텔로미어를 신발끈 끝의 플라스틱 꼭지에 비유했다. 이 꼭지는 신발끈 자체가 닳거나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 세포가 분열할 때 DNA를 복제하는 기구는 염색체 끝부분을 완전히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이는 매 세포 분열마다 DNA가 조금씩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텔로미어는 단백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세포 분열 과정에서 중요한 DNA를 대신해 닳아 없어지는 역할을 맡는다. 이로 인해 텔로미어의 길이는 세포가 얼마나 분열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세포 분열의 타이머로 불린다.

활발하게 분열해야 하는 줄기세포나 생식세포는 텔로미어 길이를 잘 유지함으로써 타이머의 한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이때 사용하는 것이 ‘텔로머레이스(telomerase)’라고 하는 특별한 효소다. 텔로머레이스는 DNA 말단에 반복서열을 더해 줌으로써 플라스틱 꼭지를 계속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 일반적인 체세포의 경우에는 텔로머레이스가 억제돼 있기 때문에 일정한 만큼의 분열을 하고 나면 더 이상 분열하지 않는 상태(세포 노화)에 도달한다. 세포 수준의 노화는 개체 전체의 노화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암세포는 이런 텔로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제멋대로 분열한다. 달리 생각하면 세포 분열을 정지시키는 세포 노화가 암세포의 발생을 막는 방어 기제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대부분의 암세포는 억제된 상태의 텔로머레이스를 활성화시킴으로써 무한에 가까운 분열 능력을 얻는다. 따라서 암 연구자들은 텔로머레이스를 억제해 암세포의 성장을 막으면 결국 암을 정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암세포에서 발견된 알트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놀랍게도 약 15% 정도의 암세포에서 텔로머레이스 활성이 전혀 없음에도 텔로미어 길이가 유지되는 현상을 관찰한 것이다. 초기에는 어떤 생체 내 기전이 핵심적으로 작동하는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안적인 텔로미어 유지(Alternative Lengthening of Telomere·ALT)’ 기전이라 명명했고, 흔히 ‘알트’로 불리기 시작했다. doi: 10.1016/j.tig.2017.09.003
알트는 전체 암의 10~15% 정도에서 발견되지만, 특정한 종류의 암으로 한정하면 알트의 발생 빈도는 이보다 훨씬 높아진다. 알트는 악성 종양 중 뼈에서 발생하는 골육종(osteosarcoma), 지방 세포에서 발생하는 지방육종(liposarcoma), 뇌에서 발생하는 교모세포종(glio- blastoma) 등에서 많이 발견된다. 특히 연골에서 발생하는 뼈암인 연골육종(chondrosarcoma)의 경우 현재까지 발견된 모든 사례에서 알트를 이용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알트는 일반적인 텔로미어 유지 기전과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 우선 텔로미어의 길이 분포가 짧은 것부터 아주 긴 것까지 넓은 범위에 걸쳐 나타난다. 또 일반적으로 텔로머레이스를 활용하는 유지 기전을 가진 텔로미어는 다양한 단백질들이 결합하고 상당히 응축된 구조를 이루며 안정적으로 보호된다. 하지만 알트를 활용하는 텔로미어는 이러한 보호가 약해져 있어 텔로미어가 불안정한 상태라는 신호를 계속 내보낸다. 이러한 신호가 알트의 시발점으로 작용한다. 

이때 텔로미어 길이를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단백질 기구가 동원된다. 바로 상동 재조합이라고 불리는 세포 내 DNA 손상 복구 기전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상적으로 촘촘히 응축된 텔로미어에서는 전사과정에 필요한 단백질이 달라붙지 못해 RNA가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하지만 알트가 시작되는 불안정한 텔로미어에서는 느슨해진 구조로 인해 ‘테라(TERRA)’라는 비암호화 RNA가 상당히 많이 생산된다. 테라는 다양한 방식으로 텔로미어에 영향을 미치는데, 대표적으로 텔로미어와 직접 상호작용하면서 DNA-RNA 결합을 만든다. 그 결과 텔로미어의 안정성을 더욱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에서 등장하는 알트

놀랍게도 텔로미어가 가진 새로운 길이 연장 기전인 알트는 암세포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의 생명체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효모는 단순 반복 서열에 기반한 알트를 가지기도 하고, 텔로미어 반복서열 안쪽에 존재하는 서브-텔로미어라는 곳의 서열을 이용해 텔로미어의 길이를 유지하기도 한다. 초파리는 레트로트랜스포존이라는 점핑 유전자가 텔로미어를 구성한다. 누에의 텔로미어에는 단순 반복서열과 레트로트랜스포존이 공존하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텔로미어를 유지하는 두 가지 방식인 텔로머레이스와 알트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이는 생쥐의 초기 수정란에서 발견된다. 수정란이 한 번 분열해 2개의 세포가 된 시기에 특정한 유전자가 발현되고, 그 결과 알트와 유사한 기전이 작동해 세포의 텔로미어 길이가 상당히 길어진다. 

동일한 현상이 실험실에서 배양한 생쥐 배아줄기세포 중 일부에서도 관찰됐다. 필자가 속한 서울대 생명과학부 유전과 발생 연구실에서는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해 텔로미어를 연구하던 중, 원래 텔로머레이스를 사용하던 생물이 알트로 텔로미어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를 2015년에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doi: 10.1038/ncomms9189 텔로미어가 기존의 예상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스스로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기능을 가질 수 있는 구조라는 사실이 또 한 번 증명된 셈이다.

DNA 복제 스트레스가 알트를 늘린다

 

알트는 한때 암세포에서 발견되는 무분별하고 무작위적인 현상으로 간주됐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알트는 정교하게 조절되며 생체 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기전이다. 

 알트가 발생하는 텔로미어는 DNA가 손상됐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내뿜으며, 염색체에 대한 보호 효과가 약한 상태다. 정상적인 텔로미어도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복제를 하기 어려운 지역인데, 알트가 일어나는 텔로미어는 이러한 어려움이 더욱 심화된 상태로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텔로미어를 회복시킬 수 있는 원동력은 이처럼 DNA가 스트레스를 많이 겪고 있는 상황이다. DNA를 유지하게 어렵게 만드는 스트레스가 복구 기전을 불러오고, 일정한 성공과 실패를 겪으면서 만들어진 균형이 알트 현상을 유지시킨다. 

물론 정상적인 세포의 DNA에 스트레스를 준다고 해서 저절로 알트가 켜지고 텔로미어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텔로미어가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해당 세포의 정상적인 성장이 멈추고, 스트레스 정도가 심각할 경우 세포 사멸을 통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죽느냐 사느냐 생사의 기로에서 아주 일부의 세포가 알트를 활성화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결국 살아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들은 이런 알트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암 정복을 위한 치료법을 찾고자 한다. 특히 알트를 부분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약물이 알트를 가진 암의 성장과 증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텔로미어에서 알트가 발생하는 암세포를 가진 환자의 치료 성공률이 일반적인 암 환자에 비해 낮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알트를 가진 암세포에 대한 치료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알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이를 제어할 약물의 안정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다. 

현재까지의 연구에서는 알트의 정수라고 할 만한 핵심 요소가 무엇인지 불명확하다. 다양한 유전자가 이를 조절하는 데 관여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포와 상황마다 그 특성이 매우 이질적이어서 한 세포에서 굉장히 중요했던 유전자가 다른 세포에서는 아무 기능을 하지 않거나 반대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희망을 품고 연구에 최선을 다하되, 실용적인 적용 방안에 대해서는 충분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필자소개

 성상현.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생쥐 배아줄기세포의 텔로미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쁜꼬마선충의 이야기를 다룬 책 ‘벌레의 마음’을 공동 집필했으며, 텔로미어를 포함한 유전체의 진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sshflash@snu.ac.kr

※관련기사

과학동아 12월호, ‘생체 시계’ 텔로미어 자라게 하는 비밀? 알트(ALT)에 주목하라

 

[성상현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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