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주민·HIV 감염인·이주민 “아프면 받아주는 병원 없다”

박채영 기자

공공병원의 감염병 전담에

취약층 의료 공백 날로 악화

“코로나로 진료 거부 일상화”

시민단체 “공공병상 확대를”

“지난 7월 다리 절단 부위에 염증이 생겨 고열에 시달렸다. 병원에 가기 위해 구급차를 불렀는데, 평소 이용하던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응급실이 폐쇄된 상태였다. 다른 병원에 찾아갔지만 발열 증세 때문에 코로나19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후 외래진료를 받기 전까지 해열제로 버티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공공병원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서울 동자동 쪽방촌 주민 A씨)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이다. 평소 이용하던 국립중앙의료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면서 만성중이염 수술이 연기됐다. 항생제로 버티고 있지만 염증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 현재 청각장애 3급이다. 청력이 더 나빠지기 전에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이 언제 가능할지 몰라 불안하다. HIV 감염자는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이 한정적이고, 상급병원은 비싼 치료비 때문에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다.”(HIV 감염인 B씨)

A씨와 B씨는 25일 건강과대안 등 11개 의료단체로 꾸려진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단’(조사단)이 주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자신들이 경험한 코로나19 의료공백 실태를 증언했다. 조사단은 이 자리에서 의료공백 피해자, 피해자의 동료와 유족, 의료진 등 13명을 인터뷰한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단은 가뜩이나 부족한 공공병원이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치료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공공병원에 의존해 왔던 취약계층은 아파도 갈 곳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한국 전체 병상 중 공공병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10%가량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0%에 크게 못 미친다.

조사단은 “코로나19라는 보편적인 현상이 공공병원을 주로 이용했던 쪽방 주민, 노숙인, HIV 감염인, 이주민에게는 더욱 큰 무게로 다가왔다”며 “이들은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생존의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병원 대신 민간병원에 가는 것은 이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민간병원 의료비가 부담되는 것은 물론, 민간병원에서 아예 의료급여 수급자와 HIV 환자는 거절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조사에 참여한 C씨는 공공병원을 주로 찾는 이유에 대해 “큰 대학병원은 수급자라고 하면 받아주지 않아서 들어갈 수가 없다. 또 공공병원이 병원비가 더 저렴하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일상적인 진료 거부가 코로나19와 맞물려 확대 재생산됐다”고 말했다.

위급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한 병원들이 이용 가능한 병원에 대한 정보조차 제공해 주지 않는 것도 문제다. 조사단 인터뷰에 참여한 HIV 감염인 D씨는 일터에서 기계조작 중 사고로 엄지손가락에 부상을 입어 봉합수술이 필요한 응급 상황에 처했다. 병원 10곳에 전화를 했지만 D씨가 HIV 감염 사실을 밝히자 모든 병원이 진료를 거부했다. 단 한 병원도 어디로 가면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D씨는 14시간 동안 고통을 참아가며 직접 병원을 수소문해야 했다. 결국 손가락은 영구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주노동자 E씨는 심장에 심한 통증을 느껴 병원을 이용하려 했으나, 코로나19 진단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입원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고, 약만 처방받아 기숙사로 돌아왔다. 이후 통증으로 인해 의식이 혼미해진 상황에서 주변의 다른 친구가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

조사단은 보고서를 발표하며 “지금 이 자리가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며 “코로나19 위기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모두가 존엄하게 생존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