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총장 겨냥한 옵티머스 전 대표

정희상 기자 2020. 11. 25. 12: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옵티머스 펀드는 존재하지도 않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미끼로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었다. 금융기관과 감독기관은 뒷짐을 지고 있었다. 이와 닮은꼴인 사기 사건이 2014년에도 있었다.
ⓒ연합뉴스10월28일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융정의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가 옵티머스 부실 감독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벼락 두 번 맞기보다 더 힘들다는 피해를 당했다.” 인천에 사는 김태우씨(가명·62)는 올 들어 옵티머스 펀드 사기로 3억원을 날린 피해자다. 그가 ‘벼락 두 번 맞기보다 더 힘든 확률’이라고 표현한 것은 기구한 사기 피해 전력 때문이다. 김씨는 2009년 전세금 1억5000만원을 조희팔 일당의 다단계 사업에 투자했다가 사기당했다. 30%라는 고금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큰돈을 맡겼다가 날린 뼈아픈 경험을 통해 앞으로 투자에서는 욕심을 버리고,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2년 전 정년퇴직한 그는 노후자금인 퇴직금 3억원을 최대한 안전한 곳에 투자하리라 마음먹었다. 지난해 가을 NH투자증권의 문을 두드린 이유다. 담당 직원은 김씨에게 안심하고 단기로 운용할 만한 ‘저위험·저수익 상품’을 추천했다. “은행 금리보다 약간 높은 2.8%짜리 펀드였다. 담당 직원이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담보로 운영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적극 추천해서 안심하고 가입했다.”

하지만 만기 환매를 앞둔 지난봄, 옵티머스 사태가 터지면서 환매 중단이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김씨는 그날부터 비슷한 처지의 피해자들과 함께 피해 구제를 호소하는 각종 집회에 참가하는 게 일과다. 김씨는 절규한다. “보통, 사기 피해자라고 하면 ‘고금리를 노리고 한탕주의에 빠진 투자자 본인의 책임도 크다고 손가락질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옵티머스 사기 피해는 다르다.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도 않은 사기 펀드에 공신력 있는 금융기관과 감독기관까지 가세해서 투자자를 농락했다.”

여기서 ‘공공기관 매출채권’이란, 공공기관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돈을 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예컨대 A라는 업체가 주택공사 같은 공공기관에 시멘트를 팔고 그 대금인 1억원을 3개월 뒤에 받기로 했다면, A사는 1억원 상당의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보유하게 된 셈이다. 공공기관이 대금을 지급하기 전엔 이 매출채권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공공기관이 돈을 떼먹지는 않을 것이므로 ‘안전’하지만, 리스크 없는 금융상품은 수익률 역시 낮은 것이 당연하다.

옵티머스 펀드는 이런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매입한 뒤 발생한 수익을 가입자들에게 나눠주는 구조로 설계되었다고 홍보했다. 가입자들의 수익률은 그리 높지 않은(은행 예금금리보다는 높지만) 연리 3% 정도였다. 만기는 6~8개월 단기로 설정되었다. 공공기관 채권을 운용하는 ‘안전한’ 펀드가 농협 계열 증권사에서 판매되니, 큰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안정적 자산운용을 원하는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문제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이라는 단어에 대한 초보적인 의심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은 매출채권이란 걸 발행하지 않는다. 건설사들이 공공기관 공사를 선호하는 까닭도 매출채권 없이 현찰로 바로 결제해주기 때문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매출채권을 사기꾼들이 이용했고, 은행과 증권사, 심지어 금융위에서도 건성으로 넘어가며 사달이 났다.”

판매사인 NH투자증권은 허위의 매출채권에 기반한 펀드를 ‘안전하다’며 팔았다. 옵티머스의 수탁사(NH투자증권이 가입자로부터 받은 펀드 대금을 보관하고, 옵티머스의 지시에 따라 자산을 사고파는 역할)인 하나은행은 옵티머스가 부당하거나 엉뚱한 자산을 매입하라고 지시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사무관리를 대행하는 한국예탁결제원은 옵티머스가 투자한 위험한 사모사채를 안전한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기입해줬다. 금융감독원은 사기 사건이 곪아 터질 때까지 사실상 뒷짐만 지고 있었다. 서울중앙지검은 2018년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전파진흥원)으로부터 옵티머스 펀드에 사기성이 농후하다는 수사 의뢰서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지금의 윤석열 검찰총장이었다.

사기범 주변에 등장하는 정관계 유력자들

‘매출채권’을 미끼로 삼은 대규모 금융사기는 처음이 아니다. 2014년엔 KT ENS 사건의 서정기 일당이 신용도 높은 회사의 매출채권을 악용한 ‘단군 이래 최대 대출사기’를 저질렀다(〈시사IN〉 제351호 ‘사상 최대 대출사기에 그 이름 왜 있을까’ 참조).

ⓒ연합뉴스2013년 3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곽상도 민정수석(오른쪽)에게 임명장 수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씨 일당의 사기 수법은 대담했다. 신용도가 높은 삼성전자와 LG전자, KT 등에 마치 단말기를 납품한 것처럼 허위 매출채권을 만들어 은행권에 담보로 제출하고 16개 기관에서 1조8000억원을 대출받았다. 그 가운데 무려 1조1000억원을 사기단에 빌려준 금융기관이 바로 하나은행이었다. 주범들은 2008년부터 5년 동안 수백 회에 걸쳐 하나은행에 수기로 작성한 허위 매출증권을 제출하는 허술한 방식으로 거액을 빌렸다. 은행 측에서는 이 정도의 돈을 대출하면서 매출채권이 진짜인지 확인하는 조처는 물론 현장 실사조차 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은행 대출 심사 시스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대출 주범들은 사기 대출한 돈을 수천억원 단위로 정선 강원랜드카지노 등에서 세탁하는 수법으로 현금화해 흥청망청 썼다.

당시 대출 사기범 서정기 일당 주변에서 정관계 유력자들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제대로 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돌연 곽상도 변호사(현 국민의힘 의원)가 거론되기도 했다. 사기단이 초기 대출 자금으로 사들인 경기도 안산의 신천지농장에 들어간 돈을 수상하게 여긴 수원지검 안산지청에서 자금 흐름에 대한 내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서씨 일당은 당시 검찰 간부로 근무하다가 막 퇴직한 곽 변호사를 내세웠다. 당시 곽상도 변호사는 사기단 일행으로부터 큰 수임료를 받았다. 사기 주범이 투자한 안산 신천지농장에 근저당권을 설정했다가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으로 들어가는 순간 해제한 사실이 〈시사IN〉 기사로 드러나기도 했다.

곽상도씨 측은 당시 정당한 수임이었고, 수임료를 제대로 못 받아 사기단의 땅에 근저당을 설정했다가 포기하고 민정수석으로 들어갔다고 해명했지만 석연치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몇몇 정부기관장들도 사기 주범 서씨와 다양한 형태로 유착한 흔적을 보인다. 매개체는 서씨가 회장을 맡아 대출 사기의 근거지로 삼은 한국스마트산업협회였다. 협회는 이명박 정부에서 방통위 산하에 있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서울전파관리소에 등록했다. 이 협회의 초대 명예회장은 박근혜 정부의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이었다. 윤 초대 명예회장에 이어 이성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예비역 육군대장)을 2대 명예회장으로 위촉한 서씨는 ‘스마트 방위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군과도 손을 잡았다. 이성출 명예회장 위촉식에는 예비역 장성 및 국방 관계자 60여 명이 참석했으며 ‘스마트 국방포럼’과 ‘스마트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걸었다. 서씨는 1조8000억원대의 사기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다양한 정관계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용으로 활용했다.

이 같은 ‘매출채권’ 사기 수법이 진화하면서 이번엔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옵티머스 사기 사건에 등장한 것이다. 옵티머스 사건의 배후에도 정관계 유력자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구속된 옵티머스 대표 김재현씨는 자사 고문단에 전직 경제부총리, 검찰총장, 고위 장성 등을 포섭했다. 이어 일반 펀드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공공기관인 전파진흥원 750억원, 농어촌공사 30억원, 한국마사회·한국전력 10억원 등 공기업 법인 고객을 미리 확보하는 치밀한 작전을 짰다. 이를 믿고 대학(건국대·한남대), 진영 행안부 장관, 안랩, 넥센 같은 상장기업 60여 곳과 재벌 회장들까지 펀드에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사기 펀드’에 많게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회사 자금을 특별한 의심 없이 투자한 배경에 대한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석열 겨냥한 옵티머스 전 대표

현재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는 최근 자신이 이 사건의 배후 몸통으로 해외 도피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폭로 발언을 하고 나섰다. 그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채동욱 전 검찰총장, 양호 전 나라은행장 등 옵티머스 측 자문단 인사들과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옵티머스 펀드 사기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했다.

이혁진 전 대표와 검찰에 따르면, 옵티머스의 초기 투자자인 전파진흥원은 2018년 10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감사에서 ‘부적격 투자’라는 지적을 받은 뒤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은 ‘전파진흥원이 투자금을 회수해서 실제 피해가 일어나지 않았다’며 이듬해 5월 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혁진 전 대표는 이 수사에 대해 자신이 과기부에 민원을 넣으면서 시작된 것이며, 당시 윤석열 지검장이 철저히 수사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큰 사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공익제보자이며 피해자라는 것이다. 그는 “그 당시 녹취록을 통해 모든 진실을 처음으로 알렸다. 그렇다면 양호 전 나라은행장, 정영제 전 옵티머스대체투자 대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곧바로 불러서 수사했어야 했다”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했다. 이어 그는 “이 전 부총리와 양 전 행장을 서둘러 수사해야 한다. 진실이 드러났는데도 조사하지 않는 것은 두 사람에게 도망 갈 기회를 주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주장한다.

ⓒ연합뉴스10월26일 국회에서 열린 종합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한편 국민의힘 ‘라임·옵티머스 권력비리 게이트 특위’가 입수·공개한 전파진흥원의 당시 수사 의뢰서를 보면 ‘옵티머스 사기 의혹’이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국가의 공적기금이 불법행위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짙고 불법행위 결과 판명 시 다수 소액주주 등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한다(3쪽).”

“특히 성지건설 경영권 확보를 위한 엠지비파트너스의 성지건설 신주인수 과정에서 국가기금인 전파진흥원이 매출채권에 투자한 자금이 활용되었다(5쪽).”

“판매사인 대신증권은 (전파)진흥원을 기망한 의혹이 있고, 자금을 수탁관리한 하나은행에도 마찬가지 혐의가 있다(11쪽).”

이에 따라 당시의 서울중앙지검이 옵티머스를 무혐의 처분한 이유에 대해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서울중앙지검이 2018년 전파진흥원의 수사 의뢰를 받고도 무혐의 처분한 데 대해 감찰을 진행하라’고 지시한 이유다. 추 장관이 지난 10월12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옵티머스의 전 대표인 이혁진씨에 대해서도 미국 당국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요청한 상태다.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www.sisain.co.kr) - [ 시사IN 구독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