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상·하차, 노동개선 대신 “외국인 쓰면 된다”는 재계

윤지원 기자
택배 상·하차, 노동개선 대신 “외국인 쓰면 된다”는 재계

전경련 ‘외국인 허용’ 요구
“내국인 일자리 줄어든다”
작년 국토부 등 이견에 무산

열악한 환경에 인력난 반복
저임금 등은 손대지 않고
외국인 써 이윤 남기려 해

대표적 중노동으로 분류되는 택배 상하차 작업에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는 재계 주장이 나왔다. 고용난을 해결하기 위해서인데, 택배회사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와 내국인 간 경쟁만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16일 외국인 인력 고용을 허가하는 ‘고용허가제’ 적용 업종에 택배업을 추가해 택배 상하차 작업에 외국인 고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택배업은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가능한 31개 서비스업종에 포함돼 있지 않다. 상하차 작업은 주간에 집하된 화물을 다음날 배송하기 위해 당일 야간에 허브 터미널에 들어온 택배상자를 내리고 싣는 일을 말한다. 현재 허브 터미널 현장에는 불법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상하차 작업에 투입하는 경우가 많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택배 상하차 작업에 대해 해외동포 방문취업비자(H-2)를 내주는 안을 검토했으나 “내국인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이유 등을 내세운 국토교통부 등 다른 부처 이견으로 추진이 무산됐다.

노동부가 상하차 업무에 외국인 노동자 투입을 검토한 것은 고질적 구인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택배사들이 택배기사들에게 ‘무료노동’을 시켜 노동자 과로로 이어지는 분류 작업과 달리 상하차 작업은 주로 대형 택배회사의 하청업체가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해 맡기는데, ‘지옥의 알바’로 불린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최저임금보다 2000원가량 많은 시급을 받고 야간에 택배상자를 화물차에서 내리거나 컨베이어벨트에 싣는 작업을 매일 10시간 반복한다. 하청·재하청에 따른 허술한 안전관리로 그간 사고도 잦았다.

2018년 8월 CJ 옥천터미널에서 쓰러진 노동자, 그해 10월 CJ 대전물류센터에서 후진하던 트레일러에 끼인 30대가 모두 상하차 작업 중 숨졌다.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도 적발됐다. 노동부는 지난 6월 상하차·분류 업무 종사자를 고용한 하청업체들이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 12억여원을 미지급했다고 발표했다.

구인난은 노동강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임금에 원인이 있다고 노동계는 입을 모았다. 진경호 택배연대노조 수석부위원장은 “택배 업무 중 가장 힘든 노동”이라며 “외국인을 쓰겠다는 것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고 1만원으로 고강도 노동을 유지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논리”라고 말했다. 발언권이 약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업무를 떠넘긴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때 대원칙은 내국인과 차별이 없어야 하는데, 기업 입장에서 차별을 두지 않는다면 굳이 외국인을 고용할 이점이 없다”며 “이주노동자에게도 비인도적 처사”라고 말했다. 외국인 고용이 장기적으로 택배 업무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석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코로나 시대에 전반적으로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있던 일자리도 없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이 주장한 ‘택배요금 현실화’에는 노동계도 일부 동의한다. 택배 물량은 2015년 이후 매년 10% 내외로 증가하지만 평균 단가는 1997년 상자당 4732원에서 2018년 2229원까지 떨어졌다. 단가가 하락하며 택배기사들은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물량을 배송해야 한다. 박 대표는 “택배비 현실화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인상되더라도 오른 택배비가 (사측으로) 새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택배수수료를 먼저 올리기보다 낮은 택배수수료의 원인으로 지목된 ‘백마진’ 관행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란 주장도 나왔다. 백마진은 가령 택배사가 2500원의 택배비 가운데 600원가량을 온라인 쇼핑몰 등에 돌려주는 관행을 말한다.

진 부위원장은 “백마진을 상하차 및 분류 업무에 투입된 청년 노동자, 간선차 기사, 택배기사 등에게 각각 100~150원씩 나눠주거나 고용 인력을 늘리는 식의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부, 국토부,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2일 ‘택배기사 과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백마진 관행 개선책을 내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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