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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줄테니 4대보험 토해내"...'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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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줄테니 4대보험 토해내"...'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

[전태일 50년, 노동법 밖 20대] ③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학원 강사

재봉사로 일하던 중 해고된 여공을 돕다 자신도 해고된 일. 점심을 굶는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차비가 없어 걸어서 퇴근한 일. 근로기준법을 알게 되고 노동자 실태를 조사해 노동청에 개선을 요구한 일. 노동운동 조직 바보회를 결성한 일.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인근에서 몸에 불을 붙이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쳤던 23살 청년 재단사 전태일의 삶은 연대와 저항으로 가득하다.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노동관계법 밖에서 일하며 '법 준수'와 같은 당연한 일을 가슴속에 바람으로 품고 연대와 저항으로 자신의 일터를 바꾸려는 20대 청년 노동자가 있다.

<프레시안>이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그런 20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세 번째 주인공은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하고 '상시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법 조항을 악용한 사용자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분투한 학원 강사다.

"퇴직금을 달라고 하니 4대 보험료를 돌려달라고 하고 못 받은 수당을 달라고 하니 여긴 5인 미만 사업장이라며 안 주려 했어요. 알고 보니 제가 4대 보험료를 돌려줘야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또 제가 일하던 곳에서는 8명이 일했어요. 법을 지켜달라고 한 것뿐인데 원장이 제가 노동법을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하며 자꾸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29살 김시우 씨(가명)는 지방에 있는 A 학원 영어 강사였다. 김 씨가 맡은 반은 6개였다. 매일 55분 수업을 4개 진행했다. 월수금 3일은 1시간 20분 야간수업을 두 개 더 했다. 화목에도 종종 야간수업을 했다. 그런 날은 밤 12시에 퇴근했다. 수업 사이 쉬는 시간은 5분이었다.

주말 근무가 붙기도 했다. 시험기간에 이루어지는 보충수업이다. 이건 "무료 봉사"였다. 학부모들은 좋아하고 원장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학생과 강사들은 보충수업이 달갑지 않았다. 학원에서는 강사가 자비로 학생들에게 피자 같은 간식을 사주기를 은근히 바랐다.

이렇게 일하고 받는 돈은 월 200만 원이었다. 담당 학생이 일정 수를 넘기면 약간의 인센티브가 붙는 계약이었지만 그 수를 넘기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코로나19 이후 학생 수에 따른 인센티브를 기대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강사 일이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다. 보람도 있었다. 학원은 공부를 시키는 것뿐 아니라 일하는 부모의 아이를 봐주는 역할도 한다.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이 공부에 흥미를 붙인다거나 전보다 성격이 밝아지는 모습을 보면 기뻤다. 학교를 졸업한 뒤까지 연락을 하는 학생도 있었다.

여느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겪어가며 일하던 중 김 씨는 오래 일한 한 강사가 학원을 그만두는 모습을 봤다. 원장의 10년 지기 친구였는데도 원장은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음도 좋지 않았다.

결국 그 강사는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해 퇴직금을 받았다. 그 모습을 보며 김 씨도 '자신의 권리를 찾겠다'고 마음먹었다. 작은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일하는 동안 사장과 대립하며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는 어렵다. 학원을 그만두며 김 씨는 원장에게 퇴직금 지급을 요구했다.

▲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보고 있는 학생들. 김 씨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이었지만, 다른 한편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착취받는 노동자'였다. ⓒ연합뉴스

"퇴직금 받을 거면 4대 보험료 돌려줘"

김 씨에게 돌아온 답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김 씨는 원장에게 정말로 돈이 없다면 물러설 마음도 있었다. 원장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퇴직금을 받을 거면 그간 학원이 내준 4대 보험료를 돌려달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변호사를 써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내겠다'고 했다. '진 적이 없는 변호사를 알고 있다'는 말도 곁들였다.

원장의 말이 맞는지 틀린지 헷갈렸던 김 씨는 직접 근로기준법과 판례를 뒤졌다. '임금에서 4대 보험료를 공제할 의무가 사용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용자가 노동자의 4대 보험료를 내줬다면 노동자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판결이 있었다.

김 씨는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원장에게 다시 퇴직금 지급을 요구했다. 직전에 노동청에서 퇴직금을 두고 다퉈 진 경험이 있던 탓이었을까. 결국 원장은 퇴직금을 줬다. 김 씨가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면 받지 못했을 돈이었다.

나중에야 원장이 퇴직금을 받을 거면 돌려달라고 한 4대 보험료의 90%는 정부가 10인 미만 사업장 4대 보험료를 지원하는 '두루누리지원사업'을 신청해 탄 돈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원장은 정부가 낸 돈을 학원에 토해내라고 한 것이었다.

일하는 사람은 8명인데 5인 미만 사업장?

돌아보니 A 학원에는 이상한 일이 또 있었다. 앞서 말한 주말 보충수업에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또 김 씨는 일주일에 3일 밤 12시에 퇴근했다. 근로기준법상 밤 10시에서 아침 6시 사이의 노동에는 야간 가산수당이 붙는다.

몰랐던 건 아니다. 김 씨는 학원에 다니던 중 원장에게 휴일근무와 가산수당에 대한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원장은 '우리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 가산수당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계속 일을 해야 했던 탓에 그때는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A 학원이 실제로 5인 미만 사업장이라면 원장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근로기준법에는 '상시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에 이 법 일부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가산수당, 연차휴가, 해고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온전히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220만 명으로 추정된다. 한국 근로기준법의 거대한 구멍이다.

그런데 김 씨가 알기로 학원에서 일하는 사람은 8명이었다. 일단 실질적 원장이 있다('원장'으로 지칭하는 사람). 그의 아들이 '형식적 원장'이었다. 원장 부인은 회계나 학생 관리를 담당하는 매니저 일을 했다. 그리고 강사가 5명이었다. A 학원은 5인 미만 사업장이 아니었다. A 학원이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해도 휴일근무 임금을 아예 주지 않은 것은 애초 법 위반이다.

김 씨는 휴일근무와 가산수당에 대해 노무사를 준비하던 친구에게 묻고 관련 자료를 뒤졌다. 자신과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꽤 많은 사장이 5명 이상을 고용해놓고 5명 미만을 고용한 것처럼 꾸며 근로기준법을 회피한다.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다. 수법은 다양하다. 고용한 노동자 중 4명까지만 4대 보험에 가입시키는 사장도 있고, 실제로는 한 개의 사업장을 운영하면서 4명 단위로 사업장을 쪼개 신고하는 사장도 있다.

A 학원에서 4대 보험에 가입한 강사는 자신을 포함해 4명이었다. 따라서 A 학원은 노동자를 4대 보험에 가입시키지 않아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한 경우로 볼 수 있다. 게다가 A 학원의 실질적 원장은 다른 학원을 또 운영했다. 쪼개기 소지도 있는 셈이다.

법을 악용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를 바로 잡으려는 사람도 있다

원장은 휴일근무에 대한 임금과 야간 가산수당도 줄 마음이 없었다. 이럴 때 법 전문가가 아닌 노동자 개인이 실제로 노동청에 진정을 넣어 돈을 받는 것은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김 씨가 알게 된 사실이 또 있었다. 김 씨와 같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취약 노동자를 위해 활동하는 노동단체인 '권리찾기 유니온'이다.

김 씨는 권리찾기 유니온에 인터넷으로 제보를 넣었다. 얼마 뒤 권리찾기유니온에서 정책국장으로 일하는 하은성 노무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하 노무사는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맞는 것 같다. 노동청에 진정을 넣겠다면 같이 하겠다"고 말했다.

얼마 뒤 하 노무사는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김 씨가 사는 곳까지 찾아왔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먼 길 오니 안 힘드셨어요" 물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보하신 자료를 보고 저도 이길 것 같아서 온 거에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말이 김 씨에게는 힘이 됐다.

김 씨는 지금 권리찾기 유니온과 함께 A 학원의 법 위반을 주장하는 자료를 만들어 노동청에 신고하고 조사를 받은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 지난 10월 27일 권리찾기 유니온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노동청에 고발하며 연말 용기있게 행동에 나선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상을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권리찾기 유니온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자신이 받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며, 자력으로 언어를 구사할 수 없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캐릭터 '가오나시'에 비유했다. ⓒ프레시안(최용락)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사업주에 맞선 김 씨의 마음에 생긴 변화

김 씨는 이 일을 겪기 전 '가짜 5인 미만 사업장'과 같이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많다는 걸 알지 못했다. 퇴직금과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을 뒤져본 것도 직접 부당한 일을 겪으면서였다. 대부분의 사람이 살면서 노동을 하지만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노동법을 깊이 있게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 교육이 있었다면 김 씨의 분투는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 원장은 노동법을 잘 아는 것 같았다. 김 씨는 얼마 전 원장이 이전에도 학원을 운영하다 직원들의 체불임금이 문제가 돼 문을 닫은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직접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 연장수당이나 퇴직금, 4대 보험에 대해 몰랐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또 비슷한 일을 했다는 건 노동법의 교정이나 처벌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닐까.

지금 김 씨의 마음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김 씨는 나중에라도 권리찾기 유니온 같은 단체의 활동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가짜 5인 미만 사업장'과 같은 근로기준법의 맹점을 해소하기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절박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의 이야기에도 자꾸만 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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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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