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고공행진 《펜트하우스》 화제와 논란 사이

하재근 문화 평론가 2020. 11. 1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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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사실성에도 설정과 속도로 밀어붙이는 막장극 성공시대

(시사저널=하재근 문화 평론가)

상당수 드라마가 한 자릿수 시청률에 그치는 드라마 대약세 시기다. 특히 월화, 수목 주중 미니시리즈들의 입지가 벼랑 끝까지 몰렸다. 이럴 때 시청률 10%를 넘으며 대흥행의 조짐을 보이는 월화드라마가 등장했다. 바로 SBS 《펜트하우스》다. 1회 9.2%로 시작해 2회에 10%를 넘어서더니 6회에 14.5%를 찍었다. 같은 시간대 경쟁작인 MBC 《카이로스》는 3%대, JTBC 《18어게인》은 2%대 성적이었다. 

《펜트하우스》는 SBS 《아내의 유혹》을 쓴 김순옥 작가의 신작이다. 《아내의 유혹》은 '신(新)막장'의 장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 전까지 막장드라마는 장편 주말 가족 연속극의 독한 버전 같은 느낌이었는데 《아내의 유혹》은 미니시리즈처럼 경쾌한 리듬감을 탑재했다. 이 작품의 성공 이후 김순옥 작가는 계속해서 속도감이 강한 드라마들을 내놨다.

《아내의 유혹》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 황당한 설정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코미디극이 아닌 정극인데도, 얼굴에 점 하나 찍으니 아무도 몰라본다는 어이없는 설정이 등장했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었지만 그 억지스러움은 속도감이 주는 스토리의 쾌감과 자극성, 속 시원한 복수의 후련함에 묻혔다. 이후부터 재미만 있다면 웬만큼 황당한 설정은 '익스큐즈'가 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한 장면 ⓒSBS 제공

악인들 집단 등장 큰 그림  

이런 구조로 김순옥 작가는 불패 신화 성공시대를 구가해 왔다. 바로 직전 작품이 주동식 PD와 함께 한 SBS 《황후의 품격》이었는데 최고 시청률이 17.9%까지 나왔다. 이 성공이 너무나 달콤했을까. SBS와 김순옥 작가, 주동식 PD가 다시금 합을 맞춘 작품이 《펜트하우스》다. 《황후의 품격》에서 악독한 악인 역할이었던 신은경도 합류했다. 시작하자마자 비난이 쇄도했다. 또다시 욕을 갈아넣어 시청률로 바꾸는 기술이 시전되고 있다. 방송사도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했을 것이다. 

《펜트하우스》 제작진은 작품을 이렇게 소개한다. "'100층 펜트하우스의 범접불가 '퀸' vs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욕망의 '프리마돈나' vs 상류사회 입성을 향해 질주하는 '여자'가 채워질 수 없는 일그러진 욕망으로 집값 1번지, 교육 1번지에서 벌이는 부동산과 교육 전쟁을 담은 드라마다." 

서울 강남 삼성동에 100층짜리 초거대·초호화·초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세워지고 그 안에 상류층 부자들이 입주해 욕망의 요지경을 연출한다는 설정이다. 출발부터 시청자를 강력하게 자극했다. 화려한 아파트 홀에서 서양 근대 궁정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파티를 벌이는 사이 한 여학생이 떨어져 아파트 로비의 조각상 위에서 피를 흘리며 죽는 모습이었다. 마치 앞으로 얼마나 자극적인 장면들을 배치할지 기대하라는 예고편 같은 장면이었다. 

그 후 시청자가 불쾌감을 느낄 정도의 악행들이 나열됐다. 100층 아파트는 낮은 층, 중간층, 높은 층으로 마치 신분처럼 등급이 분리된 구조인데, 그 속에서 최고층에 건설업자와 그를 선망하는 (자칭) 최고 사학재단 이사장의 딸 부부, 대형 로펌 대표의 변호사 아들 부부 등이 살고 있다. 건설업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인데 심지어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그 여자의 남편을 청부살인까지 한다. 살해당한 남자의 손가락을 잘라 16년 동안 집 안에 보관한다는 설정까지 등장했다. 사학재단 이사장의 딸은 학창 시절 노래를 잘하는 동급생의 목을 공격해 노래를 못 하게 만들고 스스로 자해했다고 꾸며댔다.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한 장면 ⓒSBS 제공

그들의 자식들도 목불인견의 악행으로 시청자의 뒷목을 잡게 했다. 중학생에 불과한 아이들이 폭행, 폭언을 달고 살며 힘없는 사람들을 능멸하고 야비한 음모를 꾸며댔다. 초반에 등장인물들의 악행 장면들이 계속 이어지자 시청자들의 원성이 폭발했다. 뚜렷한 스토리도 없이 자극적인 장면이 나열돼 보기가 괴로울 정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김순옥 작가의 큰 그림이었다. 악인들의 면모가 하나하나 소개된 다음, 그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 파멸시키겠다는 복수자가 등장했다. 건설업자에게 남편을 청부 살해당하고 속아서 16년간 건설업자의 부인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의 딸도 악인 일당으로 인해 추락사했다. 그가 복수를 개시하자 난삽하게 느껴졌던 극이 정리되면서 시청자가 마음 놓고 감정이입할 대상이 생겼다. 그러자 시청률이 14%를 돌파한 것이다. 

기존 막장드라마가 악인 한두 명 정도 배치했다면 《펜트하우스》는 남녀노소 10명 가까운 악인을 투입해 판을 키웠다. 그래서 그들의 면면을 소개하는 과정이 지난했던 것인데, 일단 복수의 틀이 짜인 후엔 그들 모두가 하나씩 파멸해 가는 거대한 쾌감을 만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한 장면 ⓒSBS 제공

명작과 막장의 차이 

전형적인 막장드라마의 권선징악 복수 구도다. 과거엔 초반에 논란이 일다가도 후반에 악인이 파멸하면 찬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요즘엔 이 구도가 뻔해져서 찬사가 나타나진 않지만, 여전히 상업적 폭발력은 강력하다. 일각에선 고전 명작들도 아버지를 죽인 오이디푸스처럼 막장 설정이 많은데 왜 막장드라마만 비난하느냐는 옹호론도 나온다. 

문제는 설정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런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무얼 표현하려고 했느냐가 핵심이다.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표현한다. 《펜트하우스》는 마치 《SKY캐슬》의 극단적 버전 같은 느낌인데, 《SKY캐슬》은 자극적인 설정 속에서도 인간군상의 민낯을 치밀하게 표현했었다. 반면에 《펜트하우스》에는 무조건적 악인만 나온다. 

내적 사실성도 중요하다. 설정 자체는 극단적인 상상이라도 그 설정된 세계 안에서는 사실성이 지켜져야 완성도가 올라간다. 《펜트하우스》에선 초고가 상류층 건물에 가난한 사람들이 툭하면 무단침입하는 것 같은 허술한 전개로 내적 사실성이 붕괴됐다. 이러면 작품의 격이 떨어지고 단지 극적인 사건을 무조건 나열하기만 한다는 인상을 준다. 또 사람이 여럿 죽어 나가는데 그 과정이 너무 허술하고, 중학생이 가발 쓰니 모두 20대로 본다는 식의 황당한 표현도 문제다. 

이런 문제들을 작품은 설정 자체의 힘과 속도로 상쇄한다. 그동안 보도됐던 부자들의 갑질, 범죄들을 총망라한 설정으로 시청자의 공분을 유도한다. 그리고 휘몰아치는 복수극을 통해 허술함을 인식할 틈을 주지 않는다. 시청자는 카타르시스와 불쾌감을 함께 느끼며 동시에 자극에 중독돼 또 다른 자극적 영상에 반응하게 된다. 이런 막장드라마의 성공 공식이 이번에도 작동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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