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특검 서로 "답답하다"..고성 오간 이재용 재판
‘국정농단 공모’ 혐의를 받는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이 10개월 만에 열린 가운데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재판부가 전문심리위원 지정을 두고 고성을 주고받았다. 양측은 서로 “답답하다”며 언쟁을 벌이다 결국 휴정하기도 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9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 등 5명의 파기환송심 5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은 지난 1월 17일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정식 공판으로 이 부회장은 이날 10개월 만에 법정에 출석했다.
재판부는 이날 특검 측이 추천한 홍순탁 회계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와 이 부회장이 추천한 김경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를 모두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했다. 전문심리위원제도는 법원이 전문적인 분야의 사건을 심리할 때 당사자의 신청이나 직권에 의해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소송절차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앞서 이 부회장 측은 홍 회계사가 참여연대 중 한 명으로서 삼성합병 등 문제에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특검 측은 김 변호사가 삼성그룹 불법 합병 사건에서 회계부정 의혹을 받는 회계법인 측 변호인이란 이유로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이날 재판부는 “홍 회계사가 이 사건의 고발인인 참여연대 소속이고 본인도 삼성합병 사건에 대한 고발인으로서 비판적 입장을 취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는 개인적·경제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익적 목적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홍 회계사는 많은 기업범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 경력이 있고, 뇌물이나 기업범죄를 막는 데 관심을 갖고 있어 전문성도 있다”고 한 재판부는 “삼성에 비판적 입장을 가진 입장에서 더욱 비판적인 점검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재판부는 “(이 부회장 측이 추천한) 김 변호사는 대검찰청에서 기업범죄 수사를 담당했고, 법무법인 율촌에서는 (삼성의) 파트너 변호사로 있다”며 “공격과 방어를 모두 해본 김 변호사의 경력은 이 사건의 전문심리위원에 적합하니 두 분을 모두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해 참여하도록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전문심리위원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특검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복현 부장검사는 “위원 중 김 변호사에 대한 의견 진술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고 재판부는 “내가 말을 마친 후에 말하라. 재판부 결정 먼저 말할 테니 이후에 의견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제지했다.
강백신 부장검사는 재판부의 설명이 끝난 뒤 “김 변호사는 삼성그룹 불법 합병 사건에서 회계부정 의혹을 받는 회계법인 측 변호인”이라며 “피고인들과 직접적인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이건 의견이 아니라 피의사실 공표”라고 언성을 높였다.
재판부도 “내용 자체가 다른 사건의 수사내용, 공소사실을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전문심리위원 지정에 특검이나 변호인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이 부장검사는 “검사가 얘기할 때 변호인이 말을 끊으면 제지 안 하시고 저는 말을 끝낼 기회를 안 주시니 답답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판부는 “그럼 끝까지 해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맞받아쳤다.
이 부장검사는 “지난번 기일에도 내가 아닌 특검보가 말하라고 끊으셨다”며 “내부 논의 사항에 관해 재판부가 관여하실 건 아닌 것 같다”고 응수했다. 재판부도 “나도 굉장히 답답하다”며 “재판이 과열된 것 같아 잠시 휴정하겠다”고 했다.
잠시 휴정 후 다시 진행된 재판에서 특검은 구두변론 기회를 얻어 “본의 아니게 언성이 높아진 것에 대해 재판장께 유감을 표명한다”면서도 재차 전문심리위원 지정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각각의 전문심리위원이 관련된 사건, 누구를 고발했다거나 변호했다거나 하는 것은 전문심리위원의 점검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자체 논의를 통해서 제외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재차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부회장 등의 파기환송심은 지난 1월 17일 공판이 열린 뒤, 특검이 ‘편향 재판’ 등을 이유로 지난 2월 재판부 기피 신청을 내 한동안 중단됐었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4월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객관적 사정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기피 신청을 기각했다. 특검은 이에 불복해 재항고했지만, 대법원도 9월 기각 결정을 내렸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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