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와 유네스코의 공통점은? 1945년생 동갑내기

2020. 11. 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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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는 프랑스 여성이 최초로 투표권을 행사항 1945년에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탄생했다. <엘르> 코리아는 올해 28주년을 맞이했지만, <엘르> 의 DNA는 지난 75년간 재치 있고 낙관적인 태도,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여성의 삶에 스타일과 힘을 실으며 모든 여성의 동반자가 돼왔다. 생일을 맞이한 <엘르> 가 강력한 유산과 영원한 가치, 의미 있는 모멘트로 한 상 차렸다. 심각한 모든 것은 가볍게, 아이러니한 모든 것엔 의미를! 본 아페티!
「 1945~1960 」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자 여성들은 획일적인 유니폼 대신 여성스러운 매력을 과시할 수 있는 스타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 헬렌 라자레프(He′le‵ne Lazareff)는 최초의 풀 컬러 여성 주간지 〈Elle〉를 창간해 도전적 행보를 이어갔다. 패션뿐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진일보시키기 위한 모험을 꿈꾸며.
THE LEGEND_종전 후 시대의 히어로로 떠오른 크리스찬 디올은 〈엘르〉 편집 팀의 영원한 친구였다. ’나는 여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며 확신을 가진 그는 1947년 ‘뉴 룩’을 발표해 전 세계를 매료시켰다. 디올 하우스에 유산으로 계승될 패션 히스토리가 탄생했다.
SEX SYMBOL_〈엘르〉에 우연히 발탁된 매력적인 17세 소녀, 브리짓 바르도. 그녀는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모델에서 세계적인 아이콘으로 급성장했다. 부팡 헤어스타일, 비키니 비치 룩을 유행시킨 BB는 진정한 스타이자 그녀 자체가 곧 트렌드였다.
FIRST MUSE_〈엘르〉와 다채로운 모험을 만끽했던 모델 베티나 그라지아니. 쿠튀르 디자이너들의 러브 콜을 한 몸에 받은 그녀는 위베르 드 지방시의 남다른 애정으로 1952년에 선보인 첫 번째 지방시 컬렉션에 오프닝 모델로 섰다. 그때 입은 풍성한 소매의 블라우스는 ‘베티나 블라우스’로 불리며 지방시 하우스의 상징으로 자리했다.
모든 여성을 위한 아름다움 〈엘르〉는 당시 여성의 30%가 비누나 치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잘 다루지 않던 ‘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여성의 자질을 되돌아봤다. 이 외에도 ‘저렴이’ 뷰티 제품과 ‘가벼운 메이크업 루틴’ ‘최소한의 메이크업’ 등을 소개했고, 코 수술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며 성형수술에 대해 이야기하길 꺼리던 당시의 금기를 깼다.
모든 여성을 위한 아름다움 〈엘르〉는 당시 여성의 30%가 비누나 치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잘 다루지 않던 ‘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여성의 자질을 되돌아봤다. 이 외에도 ‘저렴이’ 뷰티 제품과 ‘가벼운 메이크업 루틴’ ‘최소한의 메이크업’ 등을 소개했고, 코 수술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며 성형수술에 대해 이야기하길 꺼리던 당시의 금기를 깼다.
「 1961~1970 」
1950년대가 엘리트의 시대였다면 1960년대는 스트리트 패션의 시대였다. 더욱 편한 옷차림을 추구하며 데님과 팬츠를 입기 시작했고, 미니스커트가 스캔들 속에 인기를 끌었다. 점잖은 예절을 미덕으로 알던 시대 상황 속에서 미니스커트는 다소 반향을 일으켰지만 변화에 도전적인 디자이너들이 자유로운 정신을 놓치지 않았다.
ART IN FASHION_이브 생 로랑의 전설적인 작품인 몬드리안 드레스. 예술이 패션이 되고, 패션이 예술이 되는 그의 천재적 감각은 아름다운 미장센을 남기며 패션계의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엘르〉의 아티스틱 디렉터이자 포토그래퍼인 피터 크냅이 그 순간을 기록했다.
FRENCH ICON_로큰롤 시대의 히로인, 프랑수아즈 아르디. 싱어송라이터이자 모델인 그녀는 귀엽고 멜랑콜리한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로 시대를 초월하는 여성의 로망이 되었다.
SWINGING SIXTIES_60년대를 풍미한 두 명의 톱 모델은 단연 진 쉬림턴과 트위기. 모델이 아이돌이던 그 시절, 둘은 통통 튀는 60년대 젊음의 상징이었다.
태양처럼 빛나는 아름다움을 꿈꾸다 60년대 젊은 여성들은 생 트로페의 브리짓 바르도나 당대 최고의 아이돌이었던 예예(Ye′ye′), 스윙잉 런던처럼 자유로운 헤어스타일과 휴양지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황금빛 몸매를 갈망했다. 이에 〈엘르〉는 주름 걱정 없이 태닝할 수 있는 방법과 당시 유행 아이템을 소개했다. 엘리자베스 아덴의 마스카라와 로레알 파리의 에르네트 헤어스프레이가 바로 그것!
로레알 파리의 에르네트 헤어스프레이.
「 1971~1980 」
5월혁명을 기점으로 사회는 격변기에 돌입했다. 여성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높이며 위상을 찾기 시작했고, 패션계에는 자유를 갈망하는 새로운 10년이 펼쳐졌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 속에 보헤미언 룩이 급부상하고, 디스코 룩은 흥겨운 에너지를 끌어올리며 벨보텀 팬츠가 거리를 휩쓸게 만들었다.
1SPACE-AGE_극적이고, 실험적이며, 건축적인 디자인으로 미래적인 패션 모멘트를 선사한 피에르 가르뎅. 전위적인 스페이스 룩으로 패션사에 이름을 기록한 그는 1960년대에 전방위적으로 영향력을 끼친 주인공이었다. 그의 이름을 〈엘르〉에 각인시킨 건 언제나 늘 〈엘르〉의 아티스틱 디렉터이자 포토그래퍼인 피터 크냅이었다.
SCANDALous SHOW_당시 스캔들에 가까운 충격을 남겼던 이브 생 로랑의 ‘리베라시옹(Libe′ration)’ 컬렉션. 짧은 드레스와 플랫폼 슈즈, 과장된 어깨, 짙은 화장 등 1940년대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은 언론의 거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인 잔상을 남겼다.
YOUNG & WILD_타잔을 찾기 위해 파리를 헤매는 제인으로 변신한 모델 커스티 토스카나.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펼쳐진 패션 판타지가 예측 불가능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다

프랑스에서 피임약과 낙태가 합법화됨에 따라 여성들은 매혹적인 모습으로 더욱 즐겁고 자유롭게 인생을 살고자 했다. 〈엘르〉는 1973년 ‘결점을 가지고 아름답게 살아라’, 1978년 ‘오늘밤 나가 논다면? 자신의 방식대로 아름답게 꾸며라’ 같은 메시지를 전하며 여성의 마음을 고조시켰다. 해변의 토프리스 트렌드는 가슴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자연 건조로 머리를 말리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방법이 등장했다.

「 1981~1990 」
역동적이고 스포티한 모습을 토대로 생동감 넘치는 여성상이 펼쳐졌다. 에어로빅 열풍과 함께 여성들은 건강미를 지닌 아름다움을 찾기 시작했고, 여성이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세상을 현혹시킨 슈퍼모델들의 등장과 함께!
SUPER POWER_1985년, 〈엘르〉 미국의 탄생과 함께 〈엘르〉 인터내셔널의 론칭을 알리는 이벤트가 펼쳐졌다. 그날은 전 세계 45개 에디션에 이르는 〈엘르〉의 모험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이를 기념해 아제딘 알라이아를 입은 슈퍼모델들이 함박웃음을 짓고 〈엘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질 벤시몽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건강하고 유쾌하며 에너제틱한 정신을 담아!
TOP MODELS _슈퍼모델 황금기의 도화선으로 작용한 1980년대. 슈퍼모델들은 파격적인 개런티와 함께 명품 브랜드의 얼굴로 러브 콜을 받으며 세계적인 지명도를 넓혀갔다. 크리스티 털링턴, 신디 크로퍼드, 나오미 캠벨 등 현재까지도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모델들이 바로 그녀들. 큰 키와 탄탄한 골격, 섹슈얼한 보디라인으로 건강한 섹시미를 전파한 신디 크로퍼드는 〈엘르〉에서 자신의 매력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엘르〉가 사랑한 슈퍼모델의 전성기를 향하여!
FRENCH CHIC _언뜻 보면 코코 샤넬과 닮은 듯한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 그래서인지 그녀는 칼 라거펠트의 낙점을 받아 샤넬의 독점 모델로 활동하며 프렌치 시크를 보여주었다. 〈엘르〉와 함께 성장한 그녀는 〈엘르〉 뮤즈이자 모델, 디자이너, 저널리스트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꾸준히 넓혔다.

아름다움을 정복하다

외모뿐 아니라 모든 걸 스스로 통제하려 했던 당시의 여성들은 헬스장에서 몸을 가꾸고, 마구 헝클어진 헤어스타일을 시도했다. 화장품 업계엔 과일산 성분이 함유된 제품이 최초로 등장했고, 성형수술 덕분에 역사상 처음으로 40세 혹은 50세에도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 1991~2000 」
세기말 공포로 불안과 두려움에 술렁이는 동시에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로 변화와 희망이 뒤섞인 시대. 소용돌이 속에서 패션 역시 아방가르드와 미니멀리즘, 스트리트 패션 등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했다. 이로써 획일화된 스타일에서 탈피해 저마다 개성을 존중받는 시기가 열렸다.
ULTIMATE SHOW _현재 럭셔리를 더욱 럭셔리답게 만드는 오트 쿠튀르가 과거의 영광을 잃고 철 지난 유산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과거에는 크리스찬 라크르와와 존 갈리아노, 칼 라거펠트 등 패션계 거장들이 환상적인 패션 모멘트로 여성들을 꿈의 무대로 초대하는 가슴 뛰는 순간을 선사했다.
THE COUTURIER _천재적인 쿠튀리에로 밀착의 귀재라 불리며 여성의 관능미를 아름답게 빚어낸 아제딘 알라이아. 그는 1991년 ‘타티(Tati)’ 컬렉션을 선보이며 타티 쇼핑몰의 상징인 비시 체크 프린트 패브릭을 여성의 몸에 섹슈얼하게 입혔다.
EXTRAORDINARY PHOTOGRAPH _기발하고 도발적인 창작물로 패션 판타지를 실현시킨 포토그래퍼 장 폴 구드. 그는 살아 있는 전설로 예술적인 감각과 유희를 패션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안목을 지녔다. 특히 연인이었던 그레이스 존스와의 작업은 그의 기상천외한 감각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명작.
ROMANTIC FANTASY _1987년에 쿠튀르 하우스를 열고 한때 쿠튀르를 휩쓸었던 디자이너 크리스찬 라크르와. 그는 자신이 만든 드레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 드레스는 아름다운 몸에서 시작된다. 여성들은 내가 만든 드레스를 입었을 때 꿈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여성스러움, 삶에 녹아들다

여성들은 정해진 모습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자유롭게 표현했다. 이때부터 가슴에 대한 이슈가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성형수술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확산됐다. 휘발성 실리콘이 들어간 파운데이션과 ‘투인원’ 샴푸 등 바쁜 여성의 삶에 맞춘 뷰티 제품이 탄생한 것도 이때부터다.

「 2001~2010 」
당당하고 차별화된 개성이 존중받던 시기! 개성 강한 스타가 뮤즈가 되고 모델이 되는 시대! 화려하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고, 럭셔리 하우스들이 과시적인 로고 파워로 브랜드의 존재감을 높였다.
POWERFUL WOMAN _에디 슬리먼이 디자인한 디올 옴므를 입은 샤론 스턴. 자신감 넘치는 강인한 매력의 할리우드 배우들이 패션 영역에서 점차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엘르〉는 동시대의 여성상을 대변하는 매체로서 스타들의 건강한 내·외면을 전달하는 메신저로 활약했다.
EFFORTLESS STYLE _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디자인한 발렌시아가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선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프렌치 시크의 정석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의 이단아라고 불리던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의 딸로 자라면서 체득한 자유분방한 매력이 그녀를 더욱 눈부시게 만들었다.
PERFECT BODY _1998년 알렉산더 맥퀸의 런웨이에서 완벽한 황금 비율의 보디라인으로 주목받은 지젤 번천은 2000년대 내내 최고의 슈퍼모델이었다. 지젤의 등장으로 관능적인 여성스러움이 박수를 받기 시작했다.

모든 아름다움을 찬양하다

〈엘르〉는 모든 형태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그 속에 담긴 진정성을 전했다. 굴곡진 몸매의 제니퍼 로페즈가 커버 모델로 등장하고, 2003년 ‘굴곡 있는 몸매의 승리’, 2007년 ‘제로 콤플렉스’와 같은 기사를 통해 건강한 몸매에 대한 인식을 재고했다. 보톡스 등의 시술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젊어 보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고,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효과를 동시에 지닌 하이브리드 제품을 소개했다. 〈엘르〉는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따르며 아름다워지기를 바랐다. 모든 여성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기에!

「 2011~2020 」
패션은 언제나 그렇듯 당대의 가장 뜨거운 이슈를 반영한다. 현재를 포함해 지난 10여 년간 패션계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다양성과 포용성, 페미니즘, 환경, 젠더 이슈였다. 이를 위한 변화의 물결이 패션을 거쳐 대중에게 스며들었고, 긍정적인 가치관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BODY POSITIVITY _플러스 사이즈 모델 애슐리 그레이엄이 가진 빛나는 카리스마와 당당한 자신감은 미의 편견을 깨고 보디 포지티브를 이끌어냈다. 〈엘르〉도 천편일률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 갇히지 않고 ‘뚱뚱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여성들과 함께 건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FIRST FEMALE _디올 역사상 최초의 여성 디렉터로 합류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그녀가 디올 데뷔 무대에서 선보인 오프닝 룩에는 ‘We Should All Be Feminists’가 적혀 있었다. 여성을 향한 목소리는 지금도 현재진행 중이다.
NEW WAVE _주춤해진 패션계는 재도약을 꿈꾸며 발상의 전환을 도모했다. 베트멍을 설립한 뎀나 바잘리아를 발렌시아가의 디렉터로 영입한 것도 그런 흐름 중 하나. 스트리트 패션의 감성이 럭셔리 하우스에 접목됐다.

절대적 기준의 종말

문화적인 것과 성적인 것, 세대적인 요소를 모두 아우르는 다양성에 대하여 〈엘르〉는 이 모든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안드레아 페직과 발렌티나 삼피아오 같은 트랜스젠더 모델은 이 시대의 상징이 됐고, 릴리 맥 메너미와 제이미 보허트, 린지 윅슨 등의 모델은 ‘어글리-프리티’라는 애칭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MeToo와 함께 많은 이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 페미니즘은 제모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환경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도록 만들었다. 〈엘르〉 프랑스 뷰티 에디터 엘리자베스 마르토렐은 “2010년부터 유기농과 그렇지 않은 제품의 라벨을 비교하고, 새로운 소규모의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브랜드를 소개했어요”라며 “럭셔리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나아가고 있죠. 뷰티 업계는 앞으로 한층 더 포용적인 자세로 나아가게 될 거예요. 환경과 즐거움, 모든 측면에서 말이죠!”라고 결론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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