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피플] 포항 '충신(忠臣)' 김광석이기에 할 수 있는 팩트 폭격

김태석 2020. 11. 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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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 피플] 포항 '충신(忠臣)' 김광석이기에 할 수 있는 팩트 폭격



(베스트 일레븐=포항)

◆‘피치 피플’
포항 스틸러스 DF
김광석

포항 스틸러스 최고참 수비수 김광석과 인터뷰는 한동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하다. 돌이켜 보면 이런 인터뷰는 없었던 것 같다. 선수들은 미디어와 접촉할 때 최대한 좋은 얘기만을 하려고 한다. 자신의 발언 하나하나가 외부에 나가는 순간, 팬들은 물론 함께 일하는 선수들 혹은 구단 임직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광석은 그렇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련해 준 포항 관계자는 “김광석 선수에게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고 하니, ‘나 쓴 소리 할 건데?’라고 되묻더라”라고 웃었다. 그 말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웃고 넘길 만한 농담처럼 여겼다. 헌데 아니었다.

김광석은 포항 관계자가 곁에 동석한 상황임에도 정말‘쓴 소리’를 쏟아냈다. 그 쓴 소리에 담긴 메시지는 클럽에 대한 불만이나 이런 게 아니었다. 포항에서 모든 청춘을 보낸 백전노장 수비수가 정말 팀을 생각해서 남기는 고언(苦言)이었다. 곰곰 떠올려보니 충분히 이런 말을 남길 만한 선수다. 그의 지난 과거가 말해주듯, 그보다 포항을 진심 사랑하는 선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현실적으로 생각한 목표는 파이널 A

Q. 만나서 반갑다. 포항 스틸러스가 멋진 시즌을 보냈다. 최고참으로서 한마디 한다면?
“지난해보다 무난한 시즌을 보낸 것 같다. 생각했던 목표보다 좋은 성과(리그 3위)를 낸 것 같으니까. 클럽에서는 2021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원했지만, 선수들이 현실적으로 생각한 목표는 파이널 라운드 그룹 A(상위)에 진입하는 것이었다. (선수들이 목표를 낮게 잡은 이유가 궁금한데) 리그 전체적으로 팀별 선수 연봉 총합을 따져보니 우리 팀은 중간 정도 밖에 안 되더라. 그렇다고 팀에 선수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Q. 이번 시즌 성적에 만족하는 듯하지만, 연봉 얘기를 하는 것 보니 클럽의 상황에 대해 많이 걱정하는 것 같다.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원하는 팬들의 기대치 부응하려면 좀 더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메시지인 듯한데
“솔직히…, 투자가 없으면 욕심이다. 울산 현대를 봐라. 투자를 그리 많이 했는데도 미끄러지는 게 축구긴 하다. 그래도 그 정도로 투자해야 우승을 바라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 포항이 이룬 성과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이다.”

“ACL? 물론 그런 큰 무대에 나가는 거야 당연히 좋다. 하지만 ACL에 나가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 없다. 더블 스쿼드 정도가 나와야 가능한 대회인데 그 대회에서 탈이 나면 정작 중요한 K리그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2019년 경남 FC의 상황이 우리 팀에서도 나올 수 있다. 팬들의 기대치가 올해 성적 때문에 더 커지겠지만, 현실적으로 내년은 우리에게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다. 최악의 상황도 유념해야 한다.”


포항은 셀링 클럽

Q. 그래도 포항이나 다른 팀이 거는 기대는 크다. 포항 팬들의 메인 걸개 문구인 ‘족보 없는 축구는 가라’만 봐도 그렇지 않나?
“물론 그 메시지에 담긴 내용은 선수들에게 정말 크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솔직히 명가라는 관점으로 보기엔 힘든 부분이 있다. 클럽 스폰서, 한 해 예산 등은 어떻게 보면 시민구단 수준이라고도 생각한다. 물론 우리 팀 선수들이 받는 연봉에 비해 잘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울산이나 전북 현대처럼 많이 투자해서 투자한 만큼 성과를 가져가는 팀이 명가인 것 같다. 우리는 현재 셀링 클럽이다.”

Q. 셀링 클럽이라…, 실제로 그렇긴 하다. 이번 시즌 절정의 기량을 보이는 손준호를 비롯해 많은 선수들이 전북 등 다른 팀에서 뛰고 있으니까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함께 다시 경기를 뛰고픈 마음도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수 처지에서 연봉은 정말 중요하다. 고작 10~15년에 불과한 선수 생활을 통해 평생 먹고살 돈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그만큼 대우를 받는 건 중요하다. 전북 같은 팀에서 뛰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도 포항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Q. 포항에서 많은 걸 이룬 선수였다. 전성기 시절에는 다른 팀의 관심과 제안을 받았을 텐데 다른 선수들처럼 떠나지 않은 이유가 있을까?
“제가 ‘갈 곳 없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입단 테스트를 통해 절 연습생 선수라도 받아준 클럽에 대한 고마움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때 부름을 받지 못했다면 아마 다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기억과 고마움이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있다. 물론 돈도 중요한데, 내겐 그런 인연도 중요하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 받아줘서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 팀이 포항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다.”

Q. 그때 기억을 얘기해 달라.
“2001년 9월의 일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뛰어난 실력을 갖춘 선수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처음 테스트를 받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금이야 익숙하지만 숙소도 좋고, 식당에서 나오는 밥을 우걱우걱 먹으며 맛있다는 생각하기도 했다. 축구화와 관련된 일화도 있다. 그땐 창갈이형 축구화를 신었는데, 선배들이 ‘아직도 이런 걸 신고 뛰냐’라고 웃더라. 그렇게 테스트를 받았다.”

“1주일 정도 테스트받는 게 본래 계획이었는데, 3개월 동안 함께 했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언제 집에 가냐’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부모님께서 그냥 거기에 계속 있으라고 하시더라(웃음). 그러더니 연습생 선수로 정식 입단하게 됐다. 그때 부모님이 ‘이제 1년만 더 버텨라’라고 하시더라. 그래야 프로축구 선수라는 경력을 가질 수 있으니까. 이런 기억이 있기에 포항은 내게 중요한 팀일 수밖에 없다.”


그저 뛸 수 있어 행복, 은퇴식 원치 않아

Q. 그렇게 연습생으로 입단해 광주 상무 시절(2005~2006년)을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이곳에서 보냈다. K리그에서 두 번 우승했고, FA컵에서도 세 차례 우승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포항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다. 과찬일 수 있지만 ‘원 클럽 맨’의 표본이니, 포항에서 동상 하나 세워주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
“아이고, 의미 없다. 그저 경기를 뛸 수 있는 게 행복할 뿐이다. 사실 포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기도 한데, 다른 팀에 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이 팀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건 다 한 걸로 만족한다. 은퇴식? 개인적으로 뭔가 기념하는 걸 안 좋아해서 그런지 은퇴식 같은 거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렇게 튀고 싶지도 않다.”

Q. 은퇴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얼마 전 이동국 선수가 은퇴한 만큼 K리그를 통틀어 최고참 선수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나이는 못 속이는 것 같다. 저 역시 나이를 못 속이면 은퇴할 것이다. 그래도 (이)동국이 형은 모든 걸 이룬 것 같다. 축구 선수로서 해볼 건 다 했으니까 말이다. 나와는 레벨이 다른 선수다. 행복한 생활을 했으면 한다.”

Q. 의미 없다고 말하지만, 포항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포항 클럽 최고참으로서 지금 포항 동료들, 그리고 앞으로 포항 후배들에게 남기고픈 말이 있을 듯하다.
“우리 어린 선수들, 그리고 2군 선수들 모두 성장했으면 좋겠다. 곁에서 지켜볼 때, 기회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그 친구들도 내년에도 함께 도전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유소년 팀 경기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데, 정말 수준 있는 선수들이 많더라. 이 선수들도 성장하면 더 크게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된다. 이들과 함께 성장한다면, 우리 포항이 네덜란드의 아약스 같은 클럽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랬으면 좋겠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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