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트럼프가 다시 온다? / 김만권

2020. 10. 2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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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ㅣ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도널드 트럼프 당선 확률 9%. 4년 전 10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뉴욕 타임스> <시엔엔>(CNN) 등 미국의 유력 언론이 보도했던 내용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 확률이 91%로 승부는 이미 기울었다는 보도였다. 그러나 11월 첫 화요일에 실시된 선거 결과는 이런 예상을 뒤엎어버렸다.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당선은 당시 세계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던 포퓰리즘의 열기에 불을 붙였다. 2018년을 기준으로 유럽연합 28개국 중 22곳에서 포퓰리즘을 표방한 정당들이 승리하거나 약진했다. 이탈리아·그리스·체코·헝가리·폴란드에선 포퓰리즘 정당이 권력을 획득했고 16개국에선 연정을 이루어냈다. 남미에선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던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좌파정권을 완전히 밀어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런 열기는 2020년 2월 보리스 존슨의 지휘 아래 영국이 브렉시트를 이루어내며 정점을 찍었다.

그렇다면 ‘포퓰리즘’이란 무엇일까? 포퓰리즘이 작동하는 기본원리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권력을 빼앗아 갔다. 그 권력을 다시 찾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당대의 좌파 포퓰리즘은 바로 이 원칙을 따라 충실히 움직인다. 권력에서 배제되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연대해야 하는 존재다. 반면 우파 포퓰리즘은 소수의 엘리트와 우리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제3의 집단을 설정한다. 여기엔 이민자, 외국인 노동자, 난민, 여성 등이 포함된다. 우파 포퓰리즘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자국 내 다수의 ‘우리 평범한 사람들’ 대신 이들 ‘제3의 집단에 더 많이 관심을 쏟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평범한 우리’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여론을 조장하여 지지자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이를 조직한다. 쉽게 말해 ‘더 배제된 자’를 이용해 ‘덜 배제된 자’를 동원하는 방식이다. 트럼프와 브렉시트가 바로 이런 우파 포퓰리즘의 작동 방식에 기댄 대표적 사례다.

트럼프와 브렉시트가 ‘디글로벌라이제이션’ 시대를 열어젖히면서, 민주정체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소수 엘리트의 지배를 비판하며 포퓰리즘을 지지하던 많은 지식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당대 포퓰리즘의 선봉엔 영국의 제러미 코빈과 미국의 버니 샌더스가 있었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확산된 불평등의 현실 앞에 기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양적 완화’를 외치며 엄청난 지지와 세계적 관심을 모았지만 결국엔 권력 획득에 실패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만들어놓은 좌파 포퓰리즘의 빈자리를 채운 이들은 혐오와 차별을 앞세운 트럼프와 존슨, 보우소나루와 같은 우파 포퓰리스트들이었다.

두번째 당황스러운 점은 코로나 시대에 드러난 포퓰리즘 정권의 제도적 무능이다. 트럼프, 보우소나루, 존슨 등은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보호를 약속하며 권력을 획득했지만 팬데믹 앞에 그들은 제대로 된 제도적 방어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2020년 10월 기준 코로나 사망자 수를 보면 미국 22만명, 영국 4만4천명, 브라질에선 15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 와중에 트럼프, 존슨, 보우소나루 모두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지도자가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등 공개적으로 방역수칙을 무시하며 자국민들에게 오도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2020년 11월, 트럼프가 재선에 도전한다. 지난 4년 트럼프는 세계의 무역질서를 뒤흔들고, 기후협약을 파괴하고, 자국의 이익과 상응하지 않는 각종 국제기구를 탈퇴하고, 동맹국들에 더 많은 군사비 부담을 강요하고, 이민자와 외국인들을 배척하고, 각종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에 눈감고, 자국민 일부에게 가해진 공권력의 폭력마저 옹호해왔다. 트럼프의 실체와 무능이 낱낱이 드러났으니 상식적으론 그가 당선될 일은 없어 보인다. 실제 일부 여론조사에선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의 승리 확률이 88%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대선만큼이나 극단적인 차이다. 안심해도 좋은 것일까? 한차례의 경험은 여전히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트럼프를 비롯해 세계를 휩쓸고 있는 우파 포퓰리즘 현상을 지켜보며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을 향해 제기한 오래된 질문을 다시금 떠올린다. “자발적으로 동원된 대규모 집단의 행위에 규범을 부여할 수 있는가?” ‘그렇다’와 ‘아니요’라는 대답이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갈림길을 만든다. 11월3일, 미국의 유권자들이 내릴 결정이 중요한 이유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4일 미국 위스콘신주 워케샤의 선거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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